한국 기독교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다. 복음이 전파된지 130여년만에 전 국민의 1/3이 개신교 신자이며, 전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세계선교강국이 됐다. 믿음이나 열정에 있어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신앙이 성숙해가는 것과는 달리 성경은 여전하다. 1백여년 전 빌려 썼던 중국 어휘가 그대로 살아있어 모르는 단어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가끔은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평생 구약을 공부한 최의원 박사가 순 우리말로 된 성경을 다시 내놓는다. 한국에서 '새 즈믄 우리말 구약정경' 초판을 내어 놓은지 꼭 2년만이다. 2005년 초판도 8년간 준비한 것이다. 여기에 2년을 더 작업했으니 10년동안의 결실이 담긴 책이다. 초판본에서 아쉬웠던 점을 보완한만큼 전 편보다 우리말을 더 많이 썼다. 성경 각 권의 이름도 한글로 다 바꿨다.

그는 풀러신학교와 드랍시대학교에서 구약학을 전공하고 한국에서 40년동안 후학들을 가르쳐 온 구약통이다. 그동안 공동번역, 표준새번역, 개역개정 등 대한성서공회 성경 개정 작업에 빠짐 없이 참여했다. 하지만 공동으로 작업하는 일이라 그의 마음 속에는 늘 아쉬움이 남았다.

"중국 성경을 번역한 것이라 우리가 모르는 중국말이 수두룩 합니다. 단어와 표현이 우리말로 되어있지 않죠. 성경을 늘 보면서 중국을 답습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작업하면서 중국어와 영어를 최대한 배제했죠"

최 박사는 강단에서 물러난 후 미국으로 건너와 개정 작업을 시작했다. 신학자들의 의견과 평생 구약을 연구했던 노고를 담아 히브리어, 한글 사전을 뒤져가며 수정했다. 단어 하나도 당시 시대 정황과 현재를 고려해 가장 적합한 것으로 골랐다. 그는 "객관적인 기준에 입각해서 새로이 본 것"이라며 "신학의 발전과 한자 변화 등에 따라 과거의 뜻과 다른 것을 과감히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번역 작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일까? 그는 "4천여년 전 사회와 문화를 갖고오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구약성경은 시대와 지리, 민족, 모든 것이 현재 우리와는 다르고 당대의 문학, 역사, 의학, 천문학, 법학적인 내용까지 아우르고 있다. 구체적으로 서술하려다보니 생길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었다.

"특히 건축 현장을 서술하거나 광석, 식물, 동물 등의 고유명사를 옮길 때 가장 힘들었죠. 외국어를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래도 안되는 것은 그대로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때로는 '번제' 등 국어 사전이 아닌 주석책에서만 볼 수 있는 단어들도 고칠 때 난감했지요."

일흔이 넘어 시작한 작업인데다 한참 집중할 때 평생 인생의 동반자였던 부인이 치매에 걸렸다. 게다가 최 박사 자신도 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관절과 근육이 굳을까봐 특별히 높은 책상을 만들어 내내 서서 작업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매일같이 오전에는 4시간씩 집필하고 오후에는 원고를 정리했다. 한국에서 보내온 갱지 원고지를 총 60권(8천매 분량)를 쓰고도 모자라 미국서 구입한 노트에 집필을 계속 해나갔다. 개정판은 초판을 한글자씩 보고 또 보며 고쳐나갔다.

"원고지를 비롯해 출판사와 교열을 보며 작업한 노트만 해도 몇 박스가 되지요. 제 서재에 모두 보관되어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말이 중국말과 달라서,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중략) 새로 스물 여덟 글자를 만들어 내놓으니,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깨우쳐 날로 씀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과학적이라고 칭송받는 한글은 세종대왕의 염원이 담겨진 창제물이다. 또한 우리 나라가 신앙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시발점은 한글로 된 성경의 번역과 반포였다. 최의원 박사, 그의 평생 소망과 업적을 담은 '새 즈믄 우리말 구약정경'을 통해 한국인들이 성경을 쉽게 읽고 이해해 한국 교회를 변화시키고 다시 한 번 부흥을 일으킬 수 있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직접 원고지에 써가며 작업한 그는 서재에 모든 작업본을 소장해놓고 있다. 수정 작업을 거친 원고 원본(위)과 정오표(아래)

▲초판 출간 시 수정했던 제본된 원고(위)와 출판사에서 받은 인쇄 전 원고(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