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욱 박사님이 본지에 '조직신학 에세이'라는 제목의 기고를 게재합니다. 정성욱 박사님은 세계적인 복음주의 신학자로,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학위(M.Div.)를, 영국 옥스퍼드 대학 신학부에서 알리스터 맥그래스 교수 지도 하에 조직신학 박사학위(D.Phil.)를 받았습니다. 현재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 신학대학원(Denver Seminary) 조직신학 교수이자 아시아 사역처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덴버신학대학원 정성욱 교수
덴버신학대학원 정성욱 교수

사도시대 이후 교회사 2천년 동안 구원과 선행의 관계에 대한 논쟁은 지속되어 왔다. 사실 이 논쟁은 끝났다기 보다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몰몬이나 여호와의 증인같은 역사적으로 오랜 이단들은 물론이고 최근에 새롭게 등장한 신천지나 하나님의교회 같은 이단들은 여전히 인간이 선행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런 율법주의적, 공로주의적 가르침은 정통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가르쳐지고 있고, 안타깝게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 오늘은 이 짧은 글을 통해서 이 문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분명하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은 모태로부터 죄가운데 잉태되어 죄를 타고난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인간 본성의 전적 타락" (the total depravity of human nature)이라고 부른다. 죄는 인간 본성의 모든 영역을 오염시켰다. 영혼과 육체, 지성과 감성과 의지, 그리고 관계성 등 인간 본성의 모든 영역은 죄로 물들게 되었다. 인간 본성의 전적타락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교리가 바로 인간 영혼의 죽음이다. 에베소서 2장 1절은 죄와 허물로 우리의 영혼이 죽어있다고 말씀한다. 모태로부터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그 영혼이 죽은 채로 태어난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채로 태어난다. 아니 성경은 더욱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로 태어난다고 말씀한다. 그 결과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 아래 있다.

둘째, 전적으로 타락한 본성을 가진 인간은 결코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선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차원, 수평적인 차원에서 소위 선한 일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모든 선행 조차 수직적인 차원 즉 하나님 앞에서는 "더러운 옷" (사 64:6)과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죄인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선행 즉 절대적으로 완전무결한 선행을 결코 행할 수 없다. 인간이 그 행위와 선행으로 하나님 앞에 용납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으려면 절대 완전한 선행, 완벽한 선행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선행은 위로 하나님을 완전하게 사랑하고, 아래로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완전하게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도 단 1초의 예외도 없이 매순간 그렇게 사랑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러나 이 땅에 태어나는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로마서 3장 12절은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선포한다.

셋째, 그러므로 어떤 인간도 선행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자 즉 선행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인정받을 수 있는 자는 없다. 따라서 선행은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다. 선행이라는 공로와 자격을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신 새로운 길 즉 오직 믿음 (sola fide)의 길이다.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의 모든 요구를 성취하시고,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하여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믿고 신뢰함으로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며,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신 주님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과 구주로 믿고 신뢰할 때에 우리는 영원한 죄사함을 얻으며, 우리의 영혼은 거듭나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며,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된다. 죄인의 구원은 결코 행위의 길이 아니라, 믿음의 길이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주로 믿고 의지하는 순간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며 성령은 우리 가운데 내주하시기 시작하신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혀주시고, 주님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킴으로 우리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의인이라고 칭해 주신다. 이것이 영단번에 일어나는 칭의의 사건이다. 동시에 그 칭의의 사건이 일어나는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하신다. 확정적 성화 (definitive sanctification)이다. 영단번의 성화이다. 의롭지 못한 우리가, 거룩하지 못한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완전히 의롭고 거룩하다고 여김을 받게 된다. 결국 연합과 칭의와 확정적 성화의 사건은 동시에 일어나게 된다.

다섯째, 하나님 앞에서 거듭남, 그리스도와의 연합, 성령내주, 칭의, 양자됨, 확정적 성화를 경험한 성도는 구원의 결과와 열매로서 선한 일에 열심하는 하나님의 친백성이 되어간다 (딛 2:14). 에베소서 2장 10절은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은 목적이 바로 선한 일을 하기 위함이라고 명백하게 말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선행은 결코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다. 도리어 선행은 구원의 목적이며, 결과이며, 열매이며, 증거이다. 그리고 우리가 선행을 행하도록 이끄시고 힘을 주시는 분은 우리 가운데 내주하시는 성령이시다. 바로 이런 분명하고 확실한 복음진리에 우리의 믿음을 세울 때에만 우리는 날마다 영적으로 자라나고 성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성욱 박사
美 덴버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저서 <티타임에 나누는 기독교 변증>, <10시간 만에 끝내는 스피드 조직신학>, <삶 속에 적용하는 LIFE 삼위일체 신학(이상 홍성사)>, <한눈에 보는 종교개혁 키워드>, <한눈에 보는 종교개혁 키워드>, <한눈에 보는 십자가 신학과 영성>, <정성욱 교수와 존 칼빈의 대화(이상 부흥과개혁사)>, <한국교회 이렇게 변해야 산다(큐리오스북스)>, <밝고 행복한 종말론(눈출판그룹)>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