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길은 ‘왕관을 피해 가는 십자가의 길’이었다. 요한복음 6장에는 주님께서 사랑으로 베푸신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온다. 보리떡 다섯과 작은 물고기 둘로 오천 명을 넉넉히 먹이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 그후의 일을 15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성경의 가장 유명한 기적이 일어난 지 약 이천년이 지난 오늘날, 그 주님의 길을 삶으로 따라가는 신실한 제자들이 있어 많은 크리스천들을 부끄럽게 한다.

오렌지 시 공원에서 주일예배
14년째 집없는 이웃들에게
사랑의 두끼 양식 제공하고
소망 위로 담은 메시지 전파

젊은 시절 평택서 농촌운동
미국으로 이민 온 후로는
스왑밋에서 상인들 섬기고
가난한 유학생 돕기에 진력

노숙인들을 섬기는 산상보훈교회 이충남·방영자 부부목사는 ““우리 신앙의 척도는 사랑의 실천이다. 선행을 하다 보니 우리가 행복해진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노숙인들을 섬기는 산상보훈교회 이충남·방영자 부부목사는 ““우리 신앙의 척도는 사랑의 실천이다. 선행을 하다 보니 우리가 행복해진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주일 아침 오렌지 시 셰이퍼공원의 미팅룸에서 모이는 ‘노숙인들의 작은 천국’인 산상보훈교회의 이충남·방영자 부부목사다. 동갑내기로 올해 73세인 이들은 지난 2002년부터 14년째 이 사역에 애오라지 매달리고 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평신도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늦깎이로 함께 신학을 공부하고 58세에 함께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저 교회 열심히 출석하고 새벽기도 나가고 열정적으로 찬양하는 것만이 신앙의 척도가 아니라는 깨달음이 동기가 되었지요. 그후로 이웃들을 작게 섬기고 있습니다. 저희에 대한 기사를 쓰시려는 건 아니지요? 신문에 내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어렵게 설득해 맥도널드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들 부부목사는 “보통 30~50명 정도가 모인다. 시정부에 1시간에 40달러의 사용료를 내고 방을 빌려 쓰고 있다. 장소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몇 달치를 선불한다”고 교회를 소개했다.

오전 9시에 시작되는 예배에서는 소망과 위로의 메시지가 선포되고 뜨거운 찬양과 기도가 흐른다. 한국어로도 노래한다. 모이는 사람들의 신앙수준은 한인 크리스천들의 중간치보다도 높다. 사역의 가장 큰 보람이다. 교회 측은 예배에 앞서 참석자들에게 햄버거, 치킨버거, 부리토 등을 커피와 함께 제공한다. 끝난 후에는 점심을 사먹을 수 있는 맥도널드 상품권을 나눠준다. 하지만 먹을 것만 주는 사역은 절대 하지 않는다.

“샌타애나 같은 곳에 가서 300명에게 빵을 휙 뿌려 주고 오면 쉽습니다. 하지만 영혼 구원이 무엇보다 소중하기에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늘 그들에게 ‘여기는 엄연한 교회다. 너희가 집이 없어서 햄버거를 주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데려올 때도 꼭 밥 먹으러 가자가 아니라 교회 가자고 말해야 한다’라고 가르칩니다.”

무엇보다 바른 정체성을 심어준다. “너희들은 홈리스가 아니다. 저 천국에 집이 없는 사람들이 진짜 홈리스다. 손에 성경책을 들면 너희들은 모두 순회 전도자다”라는 말로. 건강을 챙기지 못하는 부평초 인생이다 보니 여러 해를 함께 신앙생활하다 병으로 먼저 하나님 품으로 가는 사람들도 많다. 부부목사는 노숙인들이 대부분 악착스럽지 못하고 순수해 경쟁에서 밀린 언저리 인생이라고 믿기에 그들을 오롯이 예수 사랑으로 품는다.

“샤워는커녕 손도 잘 씻지 않는 그들이 여름에 덥석 손을 잡으면 역한 냄새 때문에 토할 것 같지요.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을 주셨기에 순종하는 것이지요. 이 길에는 수백만 달러를 가져도 누릴 수 없는 기쁨과 감사가 있어요. 이 일을 하다 보니 우리가 행복해집니다. 선행은 궁극적으로 자기를 위한 것이지요.”

오렌지시 셰이퍼공원에서 주일예배 시작을 기다리는 노숙인들. 자신들을 자식처럼 품어주는 이충남 목사 부부가 있어 이들은 외롭지 않다.
오렌지 시 셰이퍼공원에서 주일예배 시작을 기다리는 노숙인들. 자신들을 자식처럼 품어주는 이충남 목사 부부가 있어 이들은 외롭지 않다.

한 때 큰 사업도 했다 실패하기도 한 이들은 집을 팔아 남은 에퀴티로 사역을 시작했다. 부인은 오래 전부터 거울을 보며 자기 머리칼을 자르고 남편까지 이발해 준다. 언론에 이름 내며 떠들썩하게 펼친 사역이 아니기에 후원자들도 손꼽을 정도다. 몇몇 친구, 후배, 고교동창, 한 대형교회 등이 도울 뿐이다. 다행히 자식 농사를 잘 지어 세 자녀들이 전체 경비의 절반 이상을 감당한다.

십자가를 짐 같은 고생이 될 법한 사역을 하는 이들에게 격려나 응원은 별로 없다. 오히려 오해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애초부터 사람을 보며 시작한 일이 아니기에 실망도, 후회도 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그리스도를 본받을 뿐이다.

이들이 목회자가 되면서 낮은 자리에 마음을 두기 시작한 것이 아니다. 서울대 축산학과와 이화여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엘리트지만 이들은 평택에서 농촌운동을 벌였다. 교회를 세우고 가난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가르쳤다. 농부들에게는 농업과 축산업 기술을 지도했다. 1981년 도미, 스왑밋을 하던 시절에는 빵을 준비해 아침을 못 먹고 장사하러 나온 상인들과 나눴다. 1983~1988년 5년간은 풀러신학교의 가난한 한인 유학생들을 힘든 줄 모르고 섬겼다. 유통기간 만료를 앞둔 빵과 과일, 채소를 도네이션 받아 배달해 주었다. 뒷좌석과 트렁크 가득 식료품을 싣고 다니다 자동차 스프링이 나가기도 했다.

그런 섬김과 나눔의 동심원이 계속 커져 이제는 예수님의 손이 되어 노숙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삶을 살고 있다.

“그들과는 달리 우리는 양식과 옷과 잠자리가 있지 않느냐.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이들 부부목사가 하는 말에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믿는 사람들이 너무 겁 없이 예수를 팔아요. 장로, 권사라는 이들이 우리 사역을 보고 ‘저런 일은 뭐하러 하는 거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구원 받은 자는 반드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선행은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곧 오신다는 진리를 날마다 자신에게 상기시키며 살아야 합니다.”

목사부부를 만나는 내내 하나님께서 당신의 찬송을 부르게 하시려고 하늘 백성을 지으셨다는 이사야 43장21절 말씀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 일생 소원이 늘 찬송하면서’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그런 노랫말도 떠올랐다. 삶으로 바치는 찬양이 진정한 찬양이라는 생각과 함께.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히스패닉 남성 하나가 들어와 펜 등이 달린 열쇠고리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저는 듣지를 못합니다. 생계를 위해서…’ 라고 적은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정말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이 목사는 선뜻 주머니에서 4달러를 꺼내 열쇠고리 두 개를 샀다. 하나는 기자에게 선물했다.

자신들이 믿는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의 친구’셨기에 환호하며 박수쳐 주는 사람 없어도 날마다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베푸신 보배로운 가르침을 삶으로 살아내며 ‘저 낮은 곳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가는 노부부. 천국에 가면 이들은 성심 다해 보듬고 구원한 영혼들과 허다한 증인들이 보는 앞에서 별처럼 빛나는 면류관을 주님께 받아 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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