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성결교회 김종민 목사.
(Photo : ) 애틀랜타성결교회 김종민 목사.

지금 보다 더 나은 삶을 바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이 기대에 이름을 붙인다면, 성공이라는 거창한 말보다는 오히려 꿈이라는 소박한 말이 더 적당할 듯 하다.

 

사람은 꿈이 있어야 그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고, 삶의 방향을 잡을 수 있다. 꿈을 이루는 과정 속에서 성취감을 맛볼 수도 있고, 좌절 가운데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선현들은 지금 우리의 삶에 만족하라고 가르쳤다. 그렇지만 이 말씀이 그저 되는대로 대충 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또한 스스로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것과 그것을 구조적으로 강요 당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익을 침해 당하지 않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고통과 불편을 숙명으로 강요한다면, 그에 맞서지 않고 순응하는 것 또한 자신을 속이는 것이 될 것이다.

현실에 만족하며 살라는 말씀은 꿈이 욕망이 되는 순간, 자신과 이웃의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끝없는 영혼의 고통을 경고하는 말씀일 것이다.

꿈과 욕망의 차이는 내가 필요한 것 이상을 바라느냐 아니냐 하는 데 있다. 꿈은 만족할 줄 안다. 절제를 고통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는 스스로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을 기뻐하기도 한다.

그러나 욕망은 밑 빠진 독처럼 아무리 많이 채워 넣어도 끝이 없다. 욕망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원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잃을지 모른 다는 불안감, 또한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과 비교하는 고통은 현재 누리고 있는 풍성한 삶에서 평안을 빼앗아 간다. 욕망을 따라가는 삶은 남들이 볼 때는 부러운 삶이지만, 자신에게는 만족함이 없는 삶이다.

욕망과 꿈이 다르듯이, 공상과 꿈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꿈을 꾸고 어떤 사람은 공상을 한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공상을 꿈으로 생각하고 이루어지지 않음에 좌절한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공상은 힘이 들지 않는다. 방바닥을 뒹굴면서도 얼마든지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다. 나는 가만히 있고, 그저 어쩌다가 혹은 누가 그 꿈을 이루어 주었으면 하고 기대만 하고 있다면, 생각할 때는 잠시 행복할지 몰라도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일 뿐이다.

그러나, 꿈은 그것을 품는 순간 노동의 대가를 요구한다. 만약 꿈을 향해 땀 흘리지 않고 있다면, 그것이 옳든지 그르든지 상관없이 그저 공상일 뿐이다.

우리가 품은 소망이 욕망도 아니고 공상도 아니라면 그 꿈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사람들은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론을 찾기에 바쁘다.텔레비전에서, 책에서 성공비법을 얻기 위하여 자신의 시간과 지갑을 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그 방법대로 했더니 된다고 뛸 듯이 기뻐하고, 어떤 사람은 사기꾼의 헛소리에 또 당했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왜 같은 것을 배우고 다른 결과를 낼까? 그것은 지속성과 인내심에 있다. 세상에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 끝까지 참는 사람은 드물다. 꿈을 이루는 사람은 끝까지 간다.

실패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는 만큼의 고생만 하고 또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선다.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결정하고, 나도 할 만큼 했다고 자기를 위로한다. 꿈을 원망으로 바꿔 먹고 평생을 분하고 억울하게 살아간다.

성공은 인내심의 열매다. 내가 가는 길을 사람들이 비웃을 때, 주저앉고 포기하면 그냥 끝이다. 그 동안의 고생은 보상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음에 대한 증거일 뿐이다. 그러나 남들의 비웃음을 다른 모양의 격려로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한 발짝씩 더 내 디디면 결국은 이루어 진다.

꿈은 머리가 좋은 사람,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이루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열심히 하는 사람이 이룬다. 포기가 빠르면 인생을 쉽게 산다.포기 하지 않으면 고생은 해도 꿈은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