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길로 들어서다
마음에서부터 현실로 펼쳐지는 돌 벽
중얼거리는 사람들의 기도 소리,
몸을 흔드는 사람도 보였다
광장에 몰 켜 모여, 흩어 선 사람들
이마 앞에는 옛날 성냥 곽 만 한 검정 곽 성경을
외우는 경전으로 매어달고
까만 각진 모자와 뺨 옆으로 까맣게 내려뜨린
정교한 머리카락
모두가 웅얼거림으로 주문을 외우고 서서
이국적인 現場 앞에서,
나는 무엇을 생각하여야 하는 가
나도 하여야 할 이야기는 참으로 많아,
지나 온 줄기줄기 이야기 엮어 끄집어내야 하는 것인데
깊이 맘 담긴 앞날의 向方도 아직은 희미하여,
어떻게든 찾아내서 중얼거려야 하는 것인데
꼭 그런 이야기를 하여야 하는 것인데
웅얼거릴 먹물 같은 이야기가 밀려 쌓여 있는데..
종 잡혀 지지 않는, 아직 그 사연
왜 그리도 많을까
벽 앞에 가득한 말 그래도 다 토해 내서 차라리
울음으로 작은 하얀 종이에 담아
돌 사이, 틈 사이에 끼어 넣어 두어야 해,
바닥은 까만 줄로 그, 그 옛 날 헤롯 때의 성전 벽을 자국 남겨 놓고
그 아래 돌들도 하나 같이 戰爭의 상처를 겪어 낸 사연의 咆哮
密度 가득 품 고 있을 터,
우린 모두 말투성이들 두루 감싸 안아서
차라리 웅얼거릴 묵묵한 말, 아예 소리 없이 안으로 삼켜진,
저 묵직한 돌 벽..
히브리 사람들의 생활방향은 아무리 민족뿌리 연구탐지가라고 해도, 그 향방의 나침판을 제대로 겨냥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구약에서도의 꼬불꼬불한 역사의 승패 계곡을 그리도 넘나들어 왔었지만, 여전히 저들의 인간 답습의 번뇌와 질고는 언제나 같은 써클을 맴돌아 왔습니다. 어쩔 수 없는 굴종과 불법의 난간을 넘나들어 왔기에, 여기 <통곡의 벽> 역시 말 그대로 통곡입니다. 이 역시 통곡과 회유의 반복의 통곡이겠기에 말입니다. 그 높다란 돌 벽 아래 녘에는 검정 줄을 처 놓았습니다. 아마도 이 자리에 세웠다던 솔로몬의 제일 성전, 느헤미아의 포로 생활에서 돌아 온 회복의 제이 성전, 그리고 대 헤롯의 웃기지 못할 걸작이었던 제3 성전.. 그리고 또 AD.70의 대로마 원정의 처절한 성벽 몰락의 성전 터를 상징하여, 금 그어 놓은 흔적이겠기에 말입니다. 수십 수백 번의 전화 화마가 훑어 간 자국투성이이기에, 통곡 통곡의 외마디를 아니 흘리려야 아니 흘릴 수 없는 회한에 사무친 돌 벽 아니었겠습니까. 아니 어쩐 일이기에, 자기네 말대로는 선택 되어진 백성이라고들 하는데도, 아직도 전화의 총소리는 끊일 사이가 없고, 원망과 분노의 반복과 피투성이와 총구 자국이, 성벽, 성문마다 지도를 그려놓고 있기에 말입니다. 성서적 결말도 아마겟돈이라는 인간 최후의 전화를 예외 없게 예고해 놓고 있으며, 우리 인간 누구나의 운명도 결국 그 자리에서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무저갱의 종말점으로 만나지게 되어야 하는 곡선, 3차원의 좌표가 되겠기에 말입니다. 연이나 우리의 앞날의 세계구도는 동, 서 세계를 막론하고 이 종착 좌표의 이정표로 향하는 길목으로 세워져 가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먹물이 입 한 가득 담겨 있어야 하는 숱하고 많은 질고의 이야기가 우리의 입 안에서 토해내 지지도 못하고, 웅얼거리고 있는 너와 나의 소리 없는 오늘의 세계 역사, 그 목 메임으로, 꽉 막혀 있는 웅얼거림이어서, 우리들 모두의 입안에 그 통곡을 한 가득이 물고 있어야 하는 현실이겠기 때문 입니다. 다만 얼마 우리의 몇 진리 지키는 사람들의 입으로부터, 미래 향한 몇 마디 진실로 간혹 씩 토해져 나오고 있기에, 우리 귀를 기우려, 복음의 희망의 힘을 한군데로 모아 펼쳐 열어가 볼 것입니다.
마음에서부터 현실로 펼쳐지는 돌 벽
중얼거리는 사람들의 기도 소리,
몸을 흔드는 사람도 보였다
광장에 몰 켜 모여, 흩어 선 사람들
이마 앞에는 옛날 성냥 곽 만 한 검정 곽 성경을
외우는 경전으로 매어달고
까만 각진 모자와 뺨 옆으로 까맣게 내려뜨린
정교한 머리카락
모두가 웅얼거림으로 주문을 외우고 서서
이국적인 現場 앞에서,
나는 무엇을 생각하여야 하는 가
나도 하여야 할 이야기는 참으로 많아,
지나 온 줄기줄기 이야기 엮어 끄집어내야 하는 것인데
깊이 맘 담긴 앞날의 向方도 아직은 희미하여,
어떻게든 찾아내서 중얼거려야 하는 것인데
꼭 그런 이야기를 하여야 하는 것인데
웅얼거릴 먹물 같은 이야기가 밀려 쌓여 있는데..
종 잡혀 지지 않는, 아직 그 사연
왜 그리도 많을까
벽 앞에 가득한 말 그래도 다 토해 내서 차라리
울음으로 작은 하얀 종이에 담아
돌 사이, 틈 사이에 끼어 넣어 두어야 해,
바닥은 까만 줄로 그, 그 옛 날 헤롯 때의 성전 벽을 자국 남겨 놓고
그 아래 돌들도 하나 같이 戰爭의 상처를 겪어 낸 사연의 咆哮
密度 가득 품 고 있을 터,
우린 모두 말투성이들 두루 감싸 안아서
차라리 웅얼거릴 묵묵한 말, 아예 소리 없이 안으로 삼켜진,
저 묵직한 돌 벽..
히브리 사람들의 생활방향은 아무리 민족뿌리 연구탐지가라고 해도, 그 향방의 나침판을 제대로 겨냥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구약에서도의 꼬불꼬불한 역사의 승패 계곡을 그리도 넘나들어 왔었지만, 여전히 저들의 인간 답습의 번뇌와 질고는 언제나 같은 써클을 맴돌아 왔습니다. 어쩔 수 없는 굴종과 불법의 난간을 넘나들어 왔기에, 여기 <통곡의 벽> 역시 말 그대로 통곡입니다. 이 역시 통곡과 회유의 반복의 통곡이겠기에 말입니다. 그 높다란 돌 벽 아래 녘에는 검정 줄을 처 놓았습니다. 아마도 이 자리에 세웠다던 솔로몬의 제일 성전, 느헤미아의 포로 생활에서 돌아 온 회복의 제이 성전, 그리고 대 헤롯의 웃기지 못할 걸작이었던 제3 성전.. 그리고 또 AD.70의 대로마 원정의 처절한 성벽 몰락의 성전 터를 상징하여, 금 그어 놓은 흔적이겠기에 말입니다. 수십 수백 번의 전화 화마가 훑어 간 자국투성이이기에, 통곡 통곡의 외마디를 아니 흘리려야 아니 흘릴 수 없는 회한에 사무친 돌 벽 아니었겠습니까. 아니 어쩐 일이기에, 자기네 말대로는 선택 되어진 백성이라고들 하는데도, 아직도 전화의 총소리는 끊일 사이가 없고, 원망과 분노의 반복과 피투성이와 총구 자국이, 성벽, 성문마다 지도를 그려놓고 있기에 말입니다. 성서적 결말도 아마겟돈이라는 인간 최후의 전화를 예외 없게 예고해 놓고 있으며, 우리 인간 누구나의 운명도 결국 그 자리에서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무저갱의 종말점으로 만나지게 되어야 하는 곡선, 3차원의 좌표가 되겠기에 말입니다. 연이나 우리의 앞날의 세계구도는 동, 서 세계를 막론하고 이 종착 좌표의 이정표로 향하는 길목으로 세워져 가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먹물이 입 한 가득 담겨 있어야 하는 숱하고 많은 질고의 이야기가 우리의 입 안에서 토해내 지지도 못하고, 웅얼거리고 있는 너와 나의 소리 없는 오늘의 세계 역사, 그 목 메임으로, 꽉 막혀 있는 웅얼거림이어서, 우리들 모두의 입안에 그 통곡을 한 가득이 물고 있어야 하는 현실이겠기 때문 입니다. 다만 얼마 우리의 몇 진리 지키는 사람들의 입으로부터, 미래 향한 몇 마디 진실로 간혹 씩 토해져 나오고 있기에, 우리 귀를 기우려, 복음의 희망의 힘을 한군데로 모아 펼쳐 열어가 볼 것입니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