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작살꾼의 일생": [유진 피터슨] (The Pastor: A Memoir) 에 대한 목회적 서평
(유진 피터슨 저, 양혜원 역, 한국 IVP, 2011), 총 501 쪽. 난이도: ****( 총 별5개 중).
*서론. 이 책의 특징과 내용 요약. 이 책은 말그대로, 현대 목회자의 멘토라고 할 수 있는 유진 피터슨의 자서전이다. 단순한 시대적 순서를 따라 가는 일방향적인 전기라기 보다, 보다 문학적인, 영적인 그러나 매우 목회적인 터치를 더한 일종의 모자이크적인, 혹은 인상주의적 이미지로 충만한 전기이다. (각 소제목마다에서, 하나의 중심 주제를 말하고, 그 주제어를 중심으로 전개한다. 예로, ‘몬태나’에서 ‘신성한 땅과 이야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글에서 피터슨이 평소에 그의 저서들에서 언급한 내용들, 특히 소명, 멘토들, 목회적 지혜를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으로 전개한다. 위대한 한 목회자의 인생이라기보다, 매우 ‘다정다감한 이웃집 아저씨’로서의 인생론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러나 결코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거나 함몰되지 않고,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던, 충성스런 한 성도이자 목회자이자 신학자로서의 인생론’을 통찰력있게 보여준다.
내용은 모두 4부로 전개된다. 1부, ‘하나님의 장소, 하나님의 시간’에서 몬태나에서의 자신의 출생과 가족 그리고, 뉴욕에서의 사역을 소개한다. 2부, ‘잉태의 순간’에선 한 목회자의 잉태와 사역에 대해 소개한다. 어머니의 스토리텔러 기질, 아버지의 정육점 주인 기질, 그리고 자기에게 영향을 준 주위 사람, 신학교와 아내 잰과의 결혼 이야기를 들려준다.3부, ‘열정 그리고 더욱 깊어지는 소명’에선, 자신의 신앙과 소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의 교회 개척과 사역,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과 멘토들, 그리고 자신의 소명과 목회론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마지막 4부, ‘좋은 죽음’에선 죽음과 부활에 대한 소감을 적고 있다.
I. 피터슨의 통찰과 나누고 싶은 내용.
1. ’들어가는 말’의 중요성. 서구의 책들엔 대체로, 결론은 사실 서론에 있듯이, 피터슨은 ‘들어가는 말’에서 이 책의 의도를 넌지시 지적한다. 그는 목사의 ‘기능적 존재보다, 관계적이고 애정’을 강조한다 (15). 무엇보다도 이 책의 탁월한 통찰은 그의 미국 문화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목회자의 방향성에 대한 진단일 것이다. 그는 말하길, 미국에서의 목회자들은 ‘소명을 안고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미 폐허가 된 길로 들어선 것이다’라고 극단적으로 미국 문화의 물질주의와 소비주의적 태도를 지적한다 (18). 그러면서 그는 소비적이고 비인격적인 문화 오염 속에서, 자신의 소명을 지키고, 무엇보다도 ‘내가 하는 일 모두가 하나님과 성경과 기도로 형성되기를 원한다’고 할 정도로,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기도 중심의 신앙/목회/신학의 핵심을 고백한다 (19). 아울러 그는 자서전에서 범하기 쉬운 자기 영웅주의를 경계하기 위해서, 이 책의 이야기는 하나의 ‘증언’이라고 강조하면서, ‘증인은 결코 중심에 서지 않는다’로 말하면서, 이 중심에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의 작용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행동과 계시다’라고 강조한다. 한마디로, 하나님 중심적인 자서전, 다른 말로, 한 목회자의 인생을 통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한다. 철저히 자기를 포기하는, 겸손한 목회자의 태도를 보여준다. 마치 세례 요한의 고백을 보는 것 같다 (요 3:30).
2. 목회자의 관심 영역과 지역성. 그는 목사로서 하는 일이란 ‘하나님과 영혼과 관계’에 집중한다고 지적한다 (24). 아울러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 즉 지역성을 강조한다. 아울러 영원의 시간, 카이로스에 집중하고자 한다 (24). 즉 목회자는 지역성과 함께 카이로스적인 초월성의 균형을 가져야한다는 것. 그 예로, 몬태나에서 평생동안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준 신성한 땅을 경험한다 (34). 아울러 뉴욕에선 신학교에서,소명을 발견한 과정을 증거한다. 여기서 그는 ‘소명은 반드시 사회의 소수자들에게서 나온다’는 인식하게 된다. 그러면서 목회자로의 부르심을, 자신이 평생동안 멘토로 여긴 밧모섬의 요한 사도을 통해서 확신하게 된다 (46).
3. 좋은 책과의 만남과 그 기능. 그는 친구의 추천으로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를 읽게 된다. 그러면서 좋은 책과의 만남의 중요성을 카프카의 말을 통해서 비유적으로 강조한다. 카프카는 말하길, ‘우리가 읽고 있는 책이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마치 우리의 두개골을 내리치는 주먹처럼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왜 그것을 읽는단 말인가?.... 책은 우리 안에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얼음 도끼와 같아야 한다’고 했다 (145). 바르트의 책은 그에게 만난 최초의 ‘얼음 도끼’같은 책이었다.
4. 건강한 교회론과 사도행전. 제16장 ‘카타콤 장로교회’는 자신의 개척 교회의 과정과 특히 교회에 대한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무엇보다도, 현대 미국 사회에서 소비주의적,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의 교회와 목사의 소명에 대한 ‘축소와 부패’에 대해 지적한다 (180-1). 이런 본질에서의 왜곡을 회복시키는 텍스트가 바로 ‘사도행전’이라는 확신이다 (182). 교회란 ‘재생산되는 프랜차이즈가 아니다’ (191).하나님의 교회는 ‘은유법’처럼 서서히 빛난다. 그러나 이 ‘은유엔 이빨이 있다’ 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회의 작은 시작이나 위대한 결말을 지적한다 (207).
5. 동역의 중요성. 18장 ‘동료 목사회’에선 16명의 목회자들이 매주 모이는 모임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그는 다양한 교단의 목회자들이 서로 교제와 격려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피터슨은 여기서, 암에 가까운 ‘교회 성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면서, 미국 교회가 탐욕으로 침투되어 한 명의 동료가 떠나는 것을 보게 된다 (253).
6. 안식의 중요성. 저자는 아브라함 헤셀 (A. Heschel)의 [안식]이란 책을 소개받고 몇 번을 읽고 깊은 도전을 받는다. 그리고 그는 월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아내와 함께, 예수의 음성을 듣는 ‘엠마오의 산책’ 을 한다. 이를 위해, 주위에 있는 강가에 있는 숲에서 3시간 가량을 걷고 때론 나무밑에서 기도하며 지내곤한다 (348-9).
7. 멘토들과 목회지 선정의 태도. 피터슨의 멘토는 존 헨리 뉴먼, 알렉산더 화이트, 프레더릭 폰 휘겔이다. 특히 존 뉴먼은, 옥스퍼드의 탁월한 지성이었지만, 만년에 옥스퍼드를 떠나, 친구들의 간절한 만류를 무릎쓰고 노동자들이 가득한 잉글랜드의 당시 버밍행으로 간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버밍행의 사람들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고백이다 (353). 다시 말해서, 피터슨은 사역지를 결정할 때,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닌,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일지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이면 가야한다는 것을 바로,이 뉴먼을 통해서 배운다. 아울러 영혼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진 아빌라의 테레사와 십자가의 요한을 통해서, 각각 현실적 영성, 감각적인 시를 통한 영성을 배운다 (362).
8. 기도로서의 달리기. 저자에겐 달리기는 ‘하나의 의식’으로, 특히 장거리 달리기는 ‘기도’와 같다 (369). 마치 전설적인 달리기 선수 에릭 리델처럼.
9. 밧모섬의 요한 사도처럼: 평생의 멘토 요한. 피터슨은 중요한 책에서, 늘 사도요한의 밧모섬에서의 사역이 바로 자신의 목사의 소명과 정체성에 결정적이었음을 강조한다( 375). 무엇보다도,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읽깨운다. 한마디로, 목사는 영적인 작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창조적인 작가이다. 단순한 받아쓰는 사람이 아니라.
10. ‘한 방향으로 순종하기’. 니이체는 ‘하늘과 땅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은…한 방향으로 꾸준히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391 재인용). 즉 목사로서의 사역은 곧 ‘한 방향으로 꾸준히 순종하는’ 존재와 같다는 것이다 (391). 이것은 현대 개인주의적 미국의 영성에 거스리는 단어인, ‘순종’의 존재이다.
11. 참된 예배란. 저자는 현대 미국의 예배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예배는 오락이 되어버리고, 공동체에서의 인격이 제거되고 프로그램이 전부가 되어 버렸다’ (400).그는 ‘프로그램이 많은수록 인격은 사라진다’고 여기고 ‘교회가 인격적인 관계와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401).
12. 참된 목사의 초상-작살꾼처럼. 저자는 미국 소설가인 허먼 멜빌의 [백경]을 평소 좋아했든데, 거기서 배운 통찰은, 고래를 잡는 포경선에서 작살꾼은 바쁘지 않다는 것이다. ‘작살을 가장 효율적으로 꽂으려면, …왔다갔다 할 것이 아니라 무심히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던져야 한다’ (466 재인용). 즉 참된 목사는 ‘바쁘지 않은 목사’이어야 한다. 참된 목사는, 결정적인 순간에 작살을 던지는 작살꾼처럼, 침묵 중에 결정적인 순간에 집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영적인 작살꾼으로서.' 한마디로, 너무도 분주한 현대 목회자들에 대한 일침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에 대신해서. 유진 피터슨은 자신의 일생을 한마디로, 본질에 집중한 목회자로 증언한다.현대 소비주의적이고 표피적이고 비즈니스적인 영성의 시대 조류를 과감히 벗어나서, 인격적인 목회,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의 목회와 신앙을 회복하려고 경주했다. 무엇보다도 분주하지 않은 ‘영적 작살꾼’으로서… 바라기는 나와 우리 동역자들 모두가, 다시 한번, 이 시대의 지혜로운 멘토인 피터슨의 지혜와 통찰에 주목하여, 우리들의 신앙과 목회와 사역이 주 안에서 행복하고,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돌리길 간절히 소원한다. ‘영적인 작살꾼들이 되어서….’
(유진 피터슨 저, 양혜원 역, 한국 IVP, 2011), 총 501 쪽. 난이도: ****( 총 별5개 중).
*서론. 이 책의 특징과 내용 요약. 이 책은 말그대로, 현대 목회자의 멘토라고 할 수 있는 유진 피터슨의 자서전이다. 단순한 시대적 순서를 따라 가는 일방향적인 전기라기 보다, 보다 문학적인, 영적인 그러나 매우 목회적인 터치를 더한 일종의 모자이크적인, 혹은 인상주의적 이미지로 충만한 전기이다. (각 소제목마다에서, 하나의 중심 주제를 말하고, 그 주제어를 중심으로 전개한다. 예로, ‘몬태나’에서 ‘신성한 땅과 이야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글에서 피터슨이 평소에 그의 저서들에서 언급한 내용들, 특히 소명, 멘토들, 목회적 지혜를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으로 전개한다. 위대한 한 목회자의 인생이라기보다, 매우 ‘다정다감한 이웃집 아저씨’로서의 인생론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러나 결코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거나 함몰되지 않고,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던, 충성스런 한 성도이자 목회자이자 신학자로서의 인생론’을 통찰력있게 보여준다.
내용은 모두 4부로 전개된다. 1부, ‘하나님의 장소, 하나님의 시간’에서 몬태나에서의 자신의 출생과 가족 그리고, 뉴욕에서의 사역을 소개한다. 2부, ‘잉태의 순간’에선 한 목회자의 잉태와 사역에 대해 소개한다. 어머니의 스토리텔러 기질, 아버지의 정육점 주인 기질, 그리고 자기에게 영향을 준 주위 사람, 신학교와 아내 잰과의 결혼 이야기를 들려준다.3부, ‘열정 그리고 더욱 깊어지는 소명’에선, 자신의 신앙과 소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의 교회 개척과 사역,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과 멘토들, 그리고 자신의 소명과 목회론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마지막 4부, ‘좋은 죽음’에선 죽음과 부활에 대한 소감을 적고 있다.
I. 피터슨의 통찰과 나누고 싶은 내용.
1. ’들어가는 말’의 중요성. 서구의 책들엔 대체로, 결론은 사실 서론에 있듯이, 피터슨은 ‘들어가는 말’에서 이 책의 의도를 넌지시 지적한다. 그는 목사의 ‘기능적 존재보다, 관계적이고 애정’을 강조한다 (15). 무엇보다도 이 책의 탁월한 통찰은 그의 미국 문화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목회자의 방향성에 대한 진단일 것이다. 그는 말하길, 미국에서의 목회자들은 ‘소명을 안고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미 폐허가 된 길로 들어선 것이다’라고 극단적으로 미국 문화의 물질주의와 소비주의적 태도를 지적한다 (18). 그러면서 그는 소비적이고 비인격적인 문화 오염 속에서, 자신의 소명을 지키고, 무엇보다도 ‘내가 하는 일 모두가 하나님과 성경과 기도로 형성되기를 원한다’고 할 정도로,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기도 중심의 신앙/목회/신학의 핵심을 고백한다 (19). 아울러 그는 자서전에서 범하기 쉬운 자기 영웅주의를 경계하기 위해서, 이 책의 이야기는 하나의 ‘증언’이라고 강조하면서, ‘증인은 결코 중심에 서지 않는다’로 말하면서, 이 중심에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의 작용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행동과 계시다’라고 강조한다. 한마디로, 하나님 중심적인 자서전, 다른 말로, 한 목회자의 인생을 통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한다. 철저히 자기를 포기하는, 겸손한 목회자의 태도를 보여준다. 마치 세례 요한의 고백을 보는 것 같다 (요 3:30).
2. 목회자의 관심 영역과 지역성. 그는 목사로서 하는 일이란 ‘하나님과 영혼과 관계’에 집중한다고 지적한다 (24). 아울러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 즉 지역성을 강조한다. 아울러 영원의 시간, 카이로스에 집중하고자 한다 (24). 즉 목회자는 지역성과 함께 카이로스적인 초월성의 균형을 가져야한다는 것. 그 예로, 몬태나에서 평생동안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준 신성한 땅을 경험한다 (34). 아울러 뉴욕에선 신학교에서,소명을 발견한 과정을 증거한다. 여기서 그는 ‘소명은 반드시 사회의 소수자들에게서 나온다’는 인식하게 된다. 그러면서 목회자로의 부르심을, 자신이 평생동안 멘토로 여긴 밧모섬의 요한 사도을 통해서 확신하게 된다 (46).
3. 좋은 책과의 만남과 그 기능. 그는 친구의 추천으로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를 읽게 된다. 그러면서 좋은 책과의 만남의 중요성을 카프카의 말을 통해서 비유적으로 강조한다. 카프카는 말하길, ‘우리가 읽고 있는 책이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마치 우리의 두개골을 내리치는 주먹처럼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왜 그것을 읽는단 말인가?.... 책은 우리 안에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얼음 도끼와 같아야 한다’고 했다 (145). 바르트의 책은 그에게 만난 최초의 ‘얼음 도끼’같은 책이었다.
4. 건강한 교회론과 사도행전. 제16장 ‘카타콤 장로교회’는 자신의 개척 교회의 과정과 특히 교회에 대한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무엇보다도, 현대 미국 사회에서 소비주의적,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의 교회와 목사의 소명에 대한 ‘축소와 부패’에 대해 지적한다 (180-1). 이런 본질에서의 왜곡을 회복시키는 텍스트가 바로 ‘사도행전’이라는 확신이다 (182). 교회란 ‘재생산되는 프랜차이즈가 아니다’ (191).하나님의 교회는 ‘은유법’처럼 서서히 빛난다. 그러나 이 ‘은유엔 이빨이 있다’ 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회의 작은 시작이나 위대한 결말을 지적한다 (207).
5. 동역의 중요성. 18장 ‘동료 목사회’에선 16명의 목회자들이 매주 모이는 모임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그는 다양한 교단의 목회자들이 서로 교제와 격려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피터슨은 여기서, 암에 가까운 ‘교회 성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면서, 미국 교회가 탐욕으로 침투되어 한 명의 동료가 떠나는 것을 보게 된다 (253).
6. 안식의 중요성. 저자는 아브라함 헤셀 (A. Heschel)의 [안식]이란 책을 소개받고 몇 번을 읽고 깊은 도전을 받는다. 그리고 그는 월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아내와 함께, 예수의 음성을 듣는 ‘엠마오의 산책’ 을 한다. 이를 위해, 주위에 있는 강가에 있는 숲에서 3시간 가량을 걷고 때론 나무밑에서 기도하며 지내곤한다 (348-9).
7. 멘토들과 목회지 선정의 태도. 피터슨의 멘토는 존 헨리 뉴먼, 알렉산더 화이트, 프레더릭 폰 휘겔이다. 특히 존 뉴먼은, 옥스퍼드의 탁월한 지성이었지만, 만년에 옥스퍼드를 떠나, 친구들의 간절한 만류를 무릎쓰고 노동자들이 가득한 잉글랜드의 당시 버밍행으로 간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버밍행의 사람들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고백이다 (353). 다시 말해서, 피터슨은 사역지를 결정할 때,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닌,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일지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이면 가야한다는 것을 바로,이 뉴먼을 통해서 배운다. 아울러 영혼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진 아빌라의 테레사와 십자가의 요한을 통해서, 각각 현실적 영성, 감각적인 시를 통한 영성을 배운다 (362).
8. 기도로서의 달리기. 저자에겐 달리기는 ‘하나의 의식’으로, 특히 장거리 달리기는 ‘기도’와 같다 (369). 마치 전설적인 달리기 선수 에릭 리델처럼.
9. 밧모섬의 요한 사도처럼: 평생의 멘토 요한. 피터슨은 중요한 책에서, 늘 사도요한의 밧모섬에서의 사역이 바로 자신의 목사의 소명과 정체성에 결정적이었음을 강조한다( 375). 무엇보다도,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읽깨운다. 한마디로, 목사는 영적인 작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창조적인 작가이다. 단순한 받아쓰는 사람이 아니라.
10. ‘한 방향으로 순종하기’. 니이체는 ‘하늘과 땅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은…한 방향으로 꾸준히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391 재인용). 즉 목사로서의 사역은 곧 ‘한 방향으로 꾸준히 순종하는’ 존재와 같다는 것이다 (391). 이것은 현대 개인주의적 미국의 영성에 거스리는 단어인, ‘순종’의 존재이다.
11. 참된 예배란. 저자는 현대 미국의 예배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예배는 오락이 되어버리고, 공동체에서의 인격이 제거되고 프로그램이 전부가 되어 버렸다’ (400).그는 ‘프로그램이 많은수록 인격은 사라진다’고 여기고 ‘교회가 인격적인 관계와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401).
12. 참된 목사의 초상-작살꾼처럼. 저자는 미국 소설가인 허먼 멜빌의 [백경]을 평소 좋아했든데, 거기서 배운 통찰은, 고래를 잡는 포경선에서 작살꾼은 바쁘지 않다는 것이다. ‘작살을 가장 효율적으로 꽂으려면, …왔다갔다 할 것이 아니라 무심히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던져야 한다’ (466 재인용). 즉 참된 목사는 ‘바쁘지 않은 목사’이어야 한다. 참된 목사는, 결정적인 순간에 작살을 던지는 작살꾼처럼, 침묵 중에 결정적인 순간에 집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영적인 작살꾼으로서.' 한마디로, 너무도 분주한 현대 목회자들에 대한 일침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에 대신해서. 유진 피터슨은 자신의 일생을 한마디로, 본질에 집중한 목회자로 증언한다.현대 소비주의적이고 표피적이고 비즈니스적인 영성의 시대 조류를 과감히 벗어나서, 인격적인 목회,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의 목회와 신앙을 회복하려고 경주했다. 무엇보다도 분주하지 않은 ‘영적 작살꾼’으로서… 바라기는 나와 우리 동역자들 모두가, 다시 한번, 이 시대의 지혜로운 멘토인 피터슨의 지혜와 통찰에 주목하여, 우리들의 신앙과 목회와 사역이 주 안에서 행복하고,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돌리길 간절히 소원한다. ‘영적인 작살꾼들이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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