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은 당대에 스스로 사업을 일으켜 성공한 ‘기업가’를 누구보다 존경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각광받는 사람으로 “벤처기업 3대 왕”이 있다. IT업계를 넘어 일본 대표 기업으로 우뚝 선 손 마사요시(손정의) 소프트 방크 회장, 인재 파견과 농업을 결합해 일본 경제의 재도약을 이끄는 난부 야스유키 파소나 그룹 회장, 그리고 1980년 일본 최초의 가격 파괴형 항공권 판매회사를 세워 ‘반값 해외여행’ 꿈을 현실로 만든 사와다 히데오 HIC그룹 회장이다. 손대는 사업마다 연전연승하는 사와다 회장의 성공 방정식은 '기존 발상을 깬다, 도전한다, 스피드와 현장을 중시한다'로 압축된다. 여기에다 태생적인 반골(反骨) 또는 괴짜 기질이 전략가적 승부사로 활동하는 DNA로 작용했다.
오사카 과자가게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고교 졸업 후 당시 대부분의 젊은이가 가던 미국•영국행 대신 독일로 유학 간 데 대해 그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반골 기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특성은 그의 32년 비즈니스 행보에 투영된다. 업계 관행을 깨고 홀로 반값 해외항공권을 파는 회사를 차리고, 일본 최초의 저가항공사를 세운 게 그렇다. 기존 항공업계가 "일본은 물가가 비싸서 항공권 할인은 불가능하다"며 끝내 거절하자, 사와다 회장 특유의 청개구리 기질이 발동해 직접 회사를 세운 것이다. 사와다 회장의 또 다른 이름은 ‘혁명가’ ‘도전자’이다. 일본 제1호 가격 파괴 해외여행사를 시작으로 최초의 저비용 항공사 설립, 교리쓰 증권 인수, 몽골 AG은행 인수, 구마모토 버스회사 경영 정상화등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스피디한 경영인이다.
21세기 기업 사무라이(侍)의 표본으로 불리는 그는 '전략 경영'의 고수(高手)이다. 그 원동력은 1980년 신주쿠에 여행사를 차려놓고 손님이 없을 때 읽은 '란체스터(Lanchester) 전략'이다. 영국 항공 엔지니어인 란체스터가 제1차 세계대전 때 항공기 대전을 분석해 정립한 란체스터 전략은 '전력이 우세할 때는 총력전으로 단기간에 승부하고, 약세일 때는 개별전으로 끈질기게 버텨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그는 "당시 나는 기존 여행업계의 빈틈을 노려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란체스터 전략이 무척 유용했다"고 말했다. 반값 여행사를 차린지 6개월은 손님이 거의 없었다. 값이 싼 것을 오히려 의심했던 것이다. 망할 것같은 불안이 엄습해 왔다. 한 동안 사업을 접을까하는 갈등도 있었지만 마음을 고쳐 먹고 좀더 긴안목으로 미래를 연구하며 견디기로 했다.
HIC에서는 사원들이 서로 전화를 받으려고 한다. 연공서열 급여체계가 아니라 판매고에 의한 능률급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객관리를 잘함으로써 많은 매출을 올리게 되면 당사자도 회사도 잘되는 것이다. 신규 지점을 확장할 때도 돌격 방식으로 사원을 파견했다. 수시로 점검하여 ‘어떤 일이 있어도 완수한다’는 의지와 근성을 심어준다. 일본 최초 저가 항공사를 세웠을때도 기존의 항공사와 여행사의 핍박이 극심했지만 그들은 ‘우리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이 흔들리지 않았다. 좋은 퀄리티를 싸게 제공한다는 것은 분명히 옳은 일이요 옳은 일은 반드시 승리한다고 믿었다. 고객이 만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절대로 속이거나 요령을 피우지 않았다. 고통이 따랐지만 인내한 결과 고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상대방보다 전력이 열세인 상황에서 생존과 승리를 향한 고심(苦心)의 연속이었으나 배낭여행자들이 주로 묵는 해외 숙소에 가서 회사 홍보 포스터를 붙여주면 항공권 요금을 5000엔 깎아주는 핀 포인트 마케팅을 비롯해 경유코스를 통한 가격의 파격화등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이 히트하기 시작했다. 회사 설립 다음해인 1981년에 3억엔 매출을 올렸고 89년에는 매출이 164억엔으로 치솟았다. 20대 초반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50개국을 여행하고 그돈을 밑천으로 사업을 시작한 사와다 회장은 별난데가 있는사람이다. 1993년 당시 일본 여행업계가 지역 밀착형 초미니 점포 개발에 열을 올릴 때, 초대형 여행 백화점을 연 것도 사와다 회장 특유의 거꾸로 가는 '역발상 전략'에서다.
이순(耳順 60세)의 나이를 한 해 앞둔 2010년 시와다 회장은 18년간이나 연속 적자로 소생이 불가능했던 테마파크 ‘하우스텐보스(Huis Ten Bosch 일본 규슈 나가사키현 사세보시)’의 최고 경영자를 맡아 취임 첫 해에 사상 첫 흑자로 만드는 마법같은 기적을 연출했다. 테마파크 ‘하우스텐보스(Huis Ten Bosch)’는 일본 속의 네덜란드를 테마로 1992년 개장했다. 하우스텐보스는 네덜란드어로 ‘숲속의 집’이란 뜻이다. ”압력이 내 점심시간이며 문제는 저녁이다”라고 말하는 사와다 회장은 늘 엄청난 사업 스트레스와 고민에 직면하지만 항상 웃는 얼굴로 절대 이를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도전과 스피디한 경영으로 정면 돌파한다. 적자 기업을 흑자로 반전시키는데 능숙한 그는 "요코나라비(옆으로 나란히 줄 서기)는 문제가 많습니다. 일본 경제와 사회가 정체된 것은 전부 남들과 똑같이 해야 한다는 요코나라비 탓이 큽니다. 남과 달리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이 늘어나야 합니다."라고 강조한다.
그는 한번 붙잡은 사업은 여간해서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배짱과 도전정신도 대단하다. 전문 경영인들의 '무덤'으로 소문난 테마파크 '하우스텐보스' 사장에 부임한 게 그 절정이다. 사와다 회장은 말했다. "손 드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그럼 내가 한번 해보지'라고 생각했지"라고. 30년 넘게 맨주먹으로 사업을 일궈온 사와다 회장은 의외로 찌든 느낌이 전혀 없고, 밝고 즐겁고 웃는 표정이 가득하다. 그의 성공 비결은 간단하다. “간절히, 아주 간절히 성공을 원했고 그것을 행동에 옮겼다. 미래의 비전을 품고 ‘기도한다’는 강한 의지를 가질때 큰 힘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간절히 아주 간절히 원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의지를 불태울 때 성공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2-13)
오사카 과자가게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고교 졸업 후 당시 대부분의 젊은이가 가던 미국•영국행 대신 독일로 유학 간 데 대해 그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반골 기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특성은 그의 32년 비즈니스 행보에 투영된다. 업계 관행을 깨고 홀로 반값 해외항공권을 파는 회사를 차리고, 일본 최초의 저가항공사를 세운 게 그렇다. 기존 항공업계가 "일본은 물가가 비싸서 항공권 할인은 불가능하다"며 끝내 거절하자, 사와다 회장 특유의 청개구리 기질이 발동해 직접 회사를 세운 것이다. 사와다 회장의 또 다른 이름은 ‘혁명가’ ‘도전자’이다. 일본 제1호 가격 파괴 해외여행사를 시작으로 최초의 저비용 항공사 설립, 교리쓰 증권 인수, 몽골 AG은행 인수, 구마모토 버스회사 경영 정상화등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스피디한 경영인이다.
21세기 기업 사무라이(侍)의 표본으로 불리는 그는 '전략 경영'의 고수(高手)이다. 그 원동력은 1980년 신주쿠에 여행사를 차려놓고 손님이 없을 때 읽은 '란체스터(Lanchester) 전략'이다. 영국 항공 엔지니어인 란체스터가 제1차 세계대전 때 항공기 대전을 분석해 정립한 란체스터 전략은 '전력이 우세할 때는 총력전으로 단기간에 승부하고, 약세일 때는 개별전으로 끈질기게 버텨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그는 "당시 나는 기존 여행업계의 빈틈을 노려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란체스터 전략이 무척 유용했다"고 말했다. 반값 여행사를 차린지 6개월은 손님이 거의 없었다. 값이 싼 것을 오히려 의심했던 것이다. 망할 것같은 불안이 엄습해 왔다. 한 동안 사업을 접을까하는 갈등도 있었지만 마음을 고쳐 먹고 좀더 긴안목으로 미래를 연구하며 견디기로 했다.
HIC에서는 사원들이 서로 전화를 받으려고 한다. 연공서열 급여체계가 아니라 판매고에 의한 능률급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객관리를 잘함으로써 많은 매출을 올리게 되면 당사자도 회사도 잘되는 것이다. 신규 지점을 확장할 때도 돌격 방식으로 사원을 파견했다. 수시로 점검하여 ‘어떤 일이 있어도 완수한다’는 의지와 근성을 심어준다. 일본 최초 저가 항공사를 세웠을때도 기존의 항공사와 여행사의 핍박이 극심했지만 그들은 ‘우리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이 흔들리지 않았다. 좋은 퀄리티를 싸게 제공한다는 것은 분명히 옳은 일이요 옳은 일은 반드시 승리한다고 믿었다. 고객이 만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절대로 속이거나 요령을 피우지 않았다. 고통이 따랐지만 인내한 결과 고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상대방보다 전력이 열세인 상황에서 생존과 승리를 향한 고심(苦心)의 연속이었으나 배낭여행자들이 주로 묵는 해외 숙소에 가서 회사 홍보 포스터를 붙여주면 항공권 요금을 5000엔 깎아주는 핀 포인트 마케팅을 비롯해 경유코스를 통한 가격의 파격화등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이 히트하기 시작했다. 회사 설립 다음해인 1981년에 3억엔 매출을 올렸고 89년에는 매출이 164억엔으로 치솟았다. 20대 초반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50개국을 여행하고 그돈을 밑천으로 사업을 시작한 사와다 회장은 별난데가 있는사람이다. 1993년 당시 일본 여행업계가 지역 밀착형 초미니 점포 개발에 열을 올릴 때, 초대형 여행 백화점을 연 것도 사와다 회장 특유의 거꾸로 가는 '역발상 전략'에서다.
이순(耳順 60세)의 나이를 한 해 앞둔 2010년 시와다 회장은 18년간이나 연속 적자로 소생이 불가능했던 테마파크 ‘하우스텐보스(Huis Ten Bosch 일본 규슈 나가사키현 사세보시)’의 최고 경영자를 맡아 취임 첫 해에 사상 첫 흑자로 만드는 마법같은 기적을 연출했다. 테마파크 ‘하우스텐보스(Huis Ten Bosch)’는 일본 속의 네덜란드를 테마로 1992년 개장했다. 하우스텐보스는 네덜란드어로 ‘숲속의 집’이란 뜻이다. ”압력이 내 점심시간이며 문제는 저녁이다”라고 말하는 사와다 회장은 늘 엄청난 사업 스트레스와 고민에 직면하지만 항상 웃는 얼굴로 절대 이를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도전과 스피디한 경영으로 정면 돌파한다. 적자 기업을 흑자로 반전시키는데 능숙한 그는 "요코나라비(옆으로 나란히 줄 서기)는 문제가 많습니다. 일본 경제와 사회가 정체된 것은 전부 남들과 똑같이 해야 한다는 요코나라비 탓이 큽니다. 남과 달리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이 늘어나야 합니다."라고 강조한다.
그는 한번 붙잡은 사업은 여간해서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배짱과 도전정신도 대단하다. 전문 경영인들의 '무덤'으로 소문난 테마파크 '하우스텐보스' 사장에 부임한 게 그 절정이다. 사와다 회장은 말했다. "손 드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그럼 내가 한번 해보지'라고 생각했지"라고. 30년 넘게 맨주먹으로 사업을 일궈온 사와다 회장은 의외로 찌든 느낌이 전혀 없고, 밝고 즐겁고 웃는 표정이 가득하다. 그의 성공 비결은 간단하다. “간절히, 아주 간절히 성공을 원했고 그것을 행동에 옮겼다. 미래의 비전을 품고 ‘기도한다’는 강한 의지를 가질때 큰 힘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간절히 아주 간절히 원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의지를 불태울 때 성공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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