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빈 메타는 1936년 4월, 인도의 봄베이에서 태어난 인도인이지만 그의 어머니 테미나 메타는 유태계로서 그의 몸속에는 유대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의 아버지 메리메타는 일찍이 봄베이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있었고. 그후 미국으로 건너 가 커티스 현악 4중주단의 바이얼린 주자로 활동했던 만큼 주빈 메타는 음악적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라 났던 것이다. 그가 의학공부를 중도에 포기하고 빈 국립 음악 아카데미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전공하고 지휘 코스를 이수한 것도 이러한 배경이 크게 작용 한 것이다. 로스앤젤스필과 뉴욕 필의 지휘를 거쳐 1977년 이스라엘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을 맡은 이후, 1981년 종신 음악감독으로 있다.

그와 더불어 21세기에 쌍벽을 이루는 마에스트로인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Hon DMus)은 1942년 11월 15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8살의 어린 나이에 개인 연주회를 열었을 만큼 피아노의 신동이었다. 1952년 이스라엘로 이주한후 에트빈 피셔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이고르 마르케비치에게서 지휘를 사사하였다. 1967년 영국 런던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지휘자로도 데뷔한 이래로 지금까지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 두 사람은 유태계란 공통점외에 음악으로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 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출하다. 그들은 레너드 번스타인의 정신을 이어 받고 있다고 할 것이다.

주빈 메타는 세계 3대 테너인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와 여러차례 야외 공연을 주도하여 세계 음악 애호가들에게 행복을 선물하였다. 그는 걸프전이 한창인 1991년, 전쟁의 포화를 뚫고 이스라엘에서 이스라엘 필을 지휘하기도 했으며, 이스라엘 필을 이끌고 구소련에서 역사적인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이 같은 활동을 인정받아 1999년에는 UN의 '평화와 관용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뿐아니라 그의 동생 자린 메타는 뉴욕 필하모닉 사장으로서의 로린 마젤이 이끄는 뉴욕 필의 평양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던 것이다. 회색빛도시 평양에서 울려퍼진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나, 죠지 거쉬윈의 파리의 미국인이나, 바그너의 로엔그린 보다는 앙콜곡으로 울려퍼진 아리랑이 심원한 감동을 준 것은 나만의 감동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편 바랜보임은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를 서로 앙숙 관계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다른 아랍국가의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 창단하였다. 팔레스타인 출신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 와 함께 "서로 만나고, 대화하고, 이해하는 것이 '시작'"이라는 믿음으로 이 오케스트라를 출범 시켰던 것이다. 그들이 팔레스타인 라말라 지역에서 연주한 다큐 'Knowledge is the Beginning' 를 감동깊게 본 적이 있다. 이들이 전하는 평화의 메세지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We agree on disagreeing)였다. 그러한 그가 2011년 8월 15일 분단의 아픔을 반세기동안이나 겪고 있는 한국 임진각에서 평화 콘서트를 열었던 것이다. 그는 어떤 형식으로든 남북이 화해하고 평화를 가져오도록 그가 가진 음악을 통해 실천했던 것이다. 이에 자극을 받았는지 정명훈이 비록 평양에서 합동 공연을 지휘하지는 못했지만 지난 2월 사흘간 평양을 방문하고 북한 관현악단을 파리로 불러 지휘하였다. 드디어 레너드 번스타인, 쥬빈메타, 다니엘 바렌보임으로 이어지는 음악을 통한 평화의 노력이 한국에서도 시작된 청신호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