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은 정신 못 차릴 정도의 몇 가지 떠들썩한 일들로 야단법석이다. 콜로라도주 오로라에서는 영화를 흉내 낸 방식으로 70여명의 사상자를 낸 일이 최근에 일어나 많은 사람들을 충격의 도가니로 집어 넣었다. 이 뿐만이 아니라, 광적인 팬들을 몰고 다니는 대학풋볼의 명문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은 학교 풋볼팀 코치였던 제리 샌더스키의 미성년자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 6천만불이라는 미 대학 스포츠 역사상 최대 규모의 벌금 폭탄을 맞았다. 이에 더하여 지난 14년간의 모든 성적이 무효화 되었으며, 앞으로 4년간 포스트게임에 나가지 못하게 되는 등, 어느 풋볼해설가의 말대로 죽음보다도 더 처절한 철퇴를 맞은 것이다.

이 사건을 바라보면서, 나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기독교상담학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목회상담학자로서의 관점에서 몇 가지 느낀 점을 나누고 싶다. 먼저, 인간의 탐욕과 어두운 욕망은 제어할 수 있을 때 잡아야지, 그 순간을 놓치고 나면, 영영 그 구렁텅이로 계속 빠질 수 밖에 없는 상태로 전락하고야 만다는 사실이다. 샌더스키는 어쩌면, 어린 아이를 화장실에서 성폭행했을 당시, 그 장면을 목격한 증인이 패터노 감독에게 알렸을 때가 자신의 잘못을 깊이 인식할 수 있는 기회였을 지도 모른다. 학교 당국과 감독이 학교 명예의 실추를 두려워한 나머지, 그저 경고 차원에서 그친 것이 오히려 그에게는 더러운 행동과 충동에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도록 부채질한 셈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잘못된 충동으로 발생하는 반복된 행동들로 인해 더 이상 돌이키기 힘든 상태에까지 이른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 그 누군가가 “상담 한 번 받아보면 어떨까요?”라고 물어왔다면, 어쩌면 바로 그 순간이 자신의 행동과 삶을 다시 점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펜실베이니아 주립대나 샌더스키의 경우처럼,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혹은, 주체할 수 없는 자신의 욕정에 사로 잡힌 채, 어두움에서 벗어날 용기를 팽개쳐 버리고 마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추악한 얼굴은 곧 세상에 드러나게 되어 있다. 쥐도 새도 모르게 감쪽같이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은, “네 동생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신경질적으로 답한다.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자니이까?” 그 때, 하나님은 “네 동생의 피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한다”고 말한다. 신약성경에는 “저들이 잠잠하면 이 돌들이 소리지를 것이다”고 말한 예수님의 경고가 나온다. 한 번 자신에게 찾아온 뉘우침의 기회를 타인에 의해서 그리고 자발적으로 놓쳐버린 샌더스키는 계속 성추행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15년 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아이들을 괴롭혀 왔던 것이다.

그는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어떻게 아무도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적어도 샌더스키 자신과 추행 당한 아이, 이 두 사람은 알고 있지 않은 가. 자신의 행동이 드러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 인간의 어리석음과 달콤한 유혹의 짙은 중독성은 오늘도 우리들 곁에서 날카로운 혓바닥을 낼름 거리고 있다. 그러나, 해 아래에서 그 무엇을 영원히 감출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다름 아닌,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기에 괜찮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을 억지로 그렇다고 치더라도, 자기 자신만큼은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한 때는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던 대학 풋볼의 명장 패터노 감독.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그가 자신의 동상이 철거되는 수모를 본다면, 어떤 느낌일 까. 아마도 뿌리칠 수 없을 만큼 강렬했던 명예와 성공 앞에서 진실을 외면하고야 말았던, 바로 그 날 밤, 자신의 모습을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인간이 하나님의 정의와 진실을 말하고, 그를 위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패터노 감독은 우리에게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행동하는 신앙>의 모습일 것이다.

장보철 목사, 워싱턴침례대학교 기독교상담학과 교수/ bcchang@wbcs.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