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를 만나 거의 죽음에 이른 자를 발견하고 측은한 마음을 품었다. 우선 급한대로 응급처치를 하고 가까운 여관으로 데리고 갔다. 자신 역시 여행 중에 있던터라 여관주인에게 돈을 건네며 뒷 일을 부탁한다. 이 때 그가 주인에게 한 말이 있다. ‘이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한 부류는 자신 만을 돌아 보는 사람들이고 또 한 부류는 이웃을 제 자신처럼 돌아보는 사람들이다. ‘자신만을 애지중지 돌보는 사람들은 언제나 이치를 따저서 사리분별이 분명한 사람들일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들은 관계속에서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킨다. 무언가 제대로 보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그들은 실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그러니 제대로된 판단은 물론 내리지 못하려니와 그 행동은 이기주의 산물이 될수 밖에 없다. 오랜 목회를 통해 경험한 바는 이런 류의 사람들은 결국 삶의 종장에서 이웃들로부터 따뜻한 돌봄을 받지 못한체 쓸쓸한 최후를 맞이 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인생 선배된자는 반드시 그 후배들을 돌봐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나 몰라라 하면서 자신의 유익과 영달을 위해서 후배들을 이용하는 자의 말로는 참으로 비참한 것이다. 기회가 주어질때마다 돌봄애 참예하는 자가 복이 있다. 이제 자신처럼 남을 돌보는 자를 생각해보자!

‘돌보다’는 것은 말그대로 몸을 돌려서 그 대상을 봐 주는 것이다. 돌봄의 미덕은 결코 모든것이 갖추어진 완벽한 상황이나 조건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선한 사마리아인은 갈길이 바쁜 비지니스맨이었다. 그에게 시간은 곧 돈이지만 그의 시간을 희생해서 이웃을 돌보았다. 어찌보면 그에게 있어 이익창출은 삶의 목표였을 것이며 한병의 포도주나 한병의 기름 그리고 두데나리온은 그의 사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종자돈 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이웃을 위해 기꺼이 투자하였다. 이 강도만난자에게 이만한 Seed Money을 투자하고 건질 이익은 난망이었지만 그처럼 계산 빠른 사람이 계산도 하지 않고 무조건 투자해버렸던 것이다.

세상에는 이와같은 일들이 종종 일어나서 아직 살만한 것이다. 부자가 자신의 것을 통크게 이웃을 위하여 선뜻 내놓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그의 기부정신은 마땅히 돌봄의 사표가 되기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가진것이 없는 자가 자신의 것을 선뜻 나누어 이웃을 돌보는 일이야 말로 돌봄의 스피릿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돌봄은 결코 세상에 희자 되는 일이 없이 묻히고 말지만 이런 돌봄을 통하여 무수한 이웃들이 새생명을 얻는다.

라브라디도종 안내견인 총명이란 개가 일급 시각장애인을 십년동안이나 돌보는 다큐를 감동깊게 보았다. 더 이상 기력이 없어 은퇴할때 그 주인과 헤어짐을 완강히 거부하는 이별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기에 족한 것이었다. 총명이는 십년동안이나 주인의 눈과 발이되어 그림자처럼 돌아 본것이다. 전주천변의 한 고층아파트 다용도실에 원앙새가 12개 알을 낳고 3개월동안 금지옥엽으로 돌보는 다큐도 있다. 알에서 부화된 새끼들이 높은 고층아파트에서 낙하 착지하여 개천으로 이소하는 광경은 가히 돌봄의 대 작전이 아닐수 없다. 드디어 천변에 원앙 가족들이 헤험치는 아름다운 광경으로 이 다큐는 끝을 맺는다.

사랑은 돌봄이다. 필요에 처한 사람을 돌아 보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 뒤를 기꺼이 봐주는 것이 사랑이다. 세상은 점점더 많은 선한 사마리아인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기하급수적으로 돌아봐야 할 사람들이 늘어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