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주전 워싱턴목회연구원에서는 “효과적인 목회를 위해”(발제자:윤정태 목사)라는 주제 강의를 통해 숙련된 목회란 무엇인가?하는 진지한 토의가 있었다. 런던성서대학 교수인 Derek Tidball 교수의 ‘Skilful Shepherds‘라는 책을 토대로 그가 말하는 'Skilful'의 의미가 성경적 목회의 범위를 넘지 않는 것이라는 발제자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저자 의도외에 숙련이란 의미의 목회적 고민이 분출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현대목회 특히 한국교회가 피터 와그너의 교회성장론을 여과없이 받아 드린 결과 나타난 숙련목회의 의미가 성경적인 범주를 벗어나 다분히 목회 기술의 의미로 전락하였기 때문이다. 교회성장 세미나라 하면 그것이 누구에 의한 것이든 또 어떤 장르이든 관계없이 구름처럼 몰려다니는 목회자들로 만원인, 그래서 소위 성공한 목회자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주고 허상의 바벨탑을 한층 더 올리는데 기여하고 있는 터이다. 내가 만난 성공한 목사들 대부분이 자의든 타의든 거드름을 피우며 성장이 자신의 전유물인양 갈급한 목사들을 질타할 때 보면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다짐하고는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열풍들이 쉽게 가라않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나가서 성경적 목회에 최선울 다하나 교회성장이 더딘 목회자들을 가차없이 유혹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성장을 이루지 못한 목사들이 ’이유없이‘란 자학증상을 쉽게 토로하는 것은 정말 아찔한 일이다. 그래 교회성장을 이루지 못하면 이유없다는 딱지를 마치 집달리가 빨간딱지 부치듯 부쳐도 좋다는 말인가?

목회의 뿌리는 신학이다. 무슨 신학의 뿌리인가에 따라 그 목회는 결정된다. 최근 신학계에는 번영신학(繁榮神學)이 논란의 대상이다. 숭실대의 김영한 교수 같은 분은 번영신학을 ’마지막 트랙을 돌고 있는 세대‘의 전유물이라 특징지었다. 합신의 김수흥 교수는 ‘번영신학은 성경 중심이 아니다’고 일침을 놓았으며 이에 놀랐는지 한세대의 배현성 교수는 ‘조용기신학은 번영신학이 아니다’라고 서둘러 강변하였다.

‘번영신학’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로버트 슐러 목사의 영적 적자(嫡子)라 할 수 있는 ‘조엘 오스틴’ 에게 이르러서 번영신학은 최정점에 다달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크리스천 리서치 연구소(Christian Research Institute)의 대표이고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 매일 방송되고 있는 바이블 앤서 맨(Bible Answer Man)의 방송 진행자인 ‘행크 해네그래프(Hank Hanegraaff)’가 쓴 ‘Christianity in Crisis’를 ‘바벨탑에 같힌 복음’이라고 번역본 제목으로 달았는데 적절한 표현이다. 그래서 번영신학은 바벨탑신학이라고 명명해도 좋을 것이다.

로버트 슐러나 조엘 오스틴 번영목회의 신학적 지주(支柱)인 ‘피터 와그너’의 공과(功過)를 놓고 볼 때 바벨의 번영신학의 과(過)가 크다 하겠다. 당장의 목회 현실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과 ‘위탁 받은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책임 물으심’을 생각해 ‘번영신학’의 유혹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나라고 후배 목회자들에게 감히 충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