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어머니가 없는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의 존재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어머니는 지금 살아계시든지 아니면 이미 세상을 떠나셨든지 상관없이 우리 삶의 영원한 동행자가 되셔서 우리의 삶을 보다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학교에서 돌아와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먼저 불렀던“엄마!”는 지금도 외롭고 허전할 때면 먼저 찾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어머니!”하고 부르노라면 가까이 느껴지는 어머니의 온기로 외로움이 사라지곤 한다. 어릴 적 뛰놀다 넘어지면 으례히 울며 불러댔던 “엄마!”는 지금도 넘어지고 실패한 자리에 앉아 남 부끄러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웠어도 여전히 찾아 부를 수 있는 이름이다. 언제든지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감싸주셨던 어머니, 그 이름을 부르며 잔잔한 위로와 격려를 얻는다.

인생이 바쁘고 고달파 기쁨이 사라질 때, 나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는 어머니와의 추억이 있다. 시카고에서의 대학생 시절, 나는 한동안 어머니와 함께 아침 전철을 타고 어머니는 공장으로, 나는 학교로 향했던 기간이 있었다. 그날도 전철역 프랫폼에 올라가 전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미시간 호수변의 한 고층 아프트에서 불이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높은 층의 한 아파트 방에서 연기가 치솟고 불길이 일고 있었다. 어머니와 나는 돌아서 전철을 등지고 불구경을 하기 시작하였다. 얼마 안되어 불길이 잡혔고 연기도 점점 사라져 불구경은 잠시만에 끝났다. 우리가 전철쪽으로 다시 향했을 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불구경을 재미있게 했는지 전철이 도착하여 기다리던 다른 사람들을 다 태우고 떠나도록 우리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어머니와 나는 서로 마주보며 어처구니 없는 웃음을 한참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어머니를 만나 그 때 일을 얘기하면 어머니는 그때와 다름없는 순진한 어린이와 같이 웃으신다.

어머니의 웃음은 오늘도 나의 삶에 기쁨과 활력을 회복시켜준다. 당시 어머니는 공장에 나가 일하시면서도 매일 출근하시기 전 남편과 네 자녀의 아침식사와 점심 도시락까지 다 준비해 놓으셨다. 언제나 풍성한 밥상을 차리셨고, 주말이면 빨래기계가 없어 욕조에 쭈그리고 앉아 손빨래로 다 해내셨고, 절약하시느라 배추상자를 사다 직접 김치를 몇병씩 담곤 하셨다. 그러면서도 교회 여선교회회장을 5년이나 맡아 섬기셨다. 점심샌드위치와 함께 꼭 grapefruit을 하나씩 챙기셨는데 그 이유는 영어가 안되 말한마디 못하며 일하다보면 오후쯤에는 입에서 단내가 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렇게도 힘들고 피곤한 생활 속에서도 잃지 않으셨던 어머니의 웃음, 나는 그 웃음의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어머니는 아무리 피곤하여도 새벽 4시 30분이면 일어나셔서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어머니는 육신과 마음의 모든 무거운 짐을 하나님 앞에 내려 놓으셨고, 주님께서는 어머니의 심령에 하늘의 위로와 평화로 채워 주시는 기도의 교제가 매일 이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어려운 암 치료를 받으시면서도 새벽기도를 거르지 않고 계시는 어머니, 평생 기도의 무릎으로 살아오신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한없이 행복해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