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간증하고 싶은 교회
“어떤 분은 아이 때문에 교회를 왔는데 몇 개월 만에 본인도 믿지 못할 만큼 변화됐어요. ‘성경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실 것이라는 게 믿어진다’고 고백하시죠. 성령께서 각자의 마음을 여시고, 은혜를 주셔서 변화시켜 나가시는 걸 볼 때 정말 기쁘고 뿌듯하죠. 한 명 한 명이 뜨거운 간증이 있어요.”

2007년 개척을 시작해 4년 차인 큰사랑교회는 얼마 전 Pleasant Hill 선상의 예비하신 성전으로 입당하고 더 큰 사랑의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목회자가 하는 게 아니라 철저히 성령께서 하신다’고 밝힌 김성환 목사는 이렇게 변화된 이들이 자원해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성도들에게 ‘멘토’가 되어준다면서 기뻐했다.

한 겨울의 추위를 이겨낸 흔적이 나이태로 남듯 큰사랑교회의 내면에는 크고 작은 어려움과 목회적 위기가 오히려 ‘견고한 승리의 흔적’으로 남았다. 교회가 작을 때 어려움이 있어 잘 이겨낼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 성장하면서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김 목사는 감사했다.

한국과 아프리카, 유럽, 캐나다 그리고 미국에서 빚으시는 오묘한 손길
‘왜 목회자가 되기로 했는가?’라는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질문을 던지자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 이 자리에 있기 까지 그를 한국에서 아프리카로, 유럽에서 다시 캐나다와 미국으로 이끄신 전능자의 손길이 오묘했다.

“1988년 올림픽이 막 끝나고 외대 불문과를 졸업할 즘 ‘하나님께서 나에게 두신 뜻이 무엇일까’ 고민 하다가 지인의 소개로 불어권인 챠드를 알게 됐고, 예수를 믿은 지 얼마 안된 가정과 함께 떠났죠. 2년을 계획하고 갔는데 일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더 집중했어요(웃음). 가자마자 선교사님들 모임을 찾아가서, 평신도로 매주 그 모임에 나가면서 선교사님들의 삶을 가까이서 보고 그들의 삶에서 아름다움을 느꼈죠. 간절한 소망이 있었는데 저를 향한 소명을 확신하게 됐어요.”

김성환 목사는 스위스에서 불어로 신학을 공부했다. 유럽의 기독교가 많이 약화됐지만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스위스는 여전히 복음주의적 교회의 불씨가 살아있다고 했다. 그가 전도사로 사역한 교회도 벨기에 목사님이 시무하던 곳으로, 초교파였지만 뜨거운 성령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단순히 선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신학을 시작했는데, 어느 날 수업 중에 전광석화처럼 번뜩하게 고등학교 2학년 때 기도한 것이 생각났어요. ‘하나님 내 인생이 캔버스와 같은데 알다시피 전 미술을 못해서 제가 그리면 빵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의 작품으로 만들어 주시고, 주의 제자 사도바울처럼 복음 들고 사역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는 기도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걸 다시 들려주시는데 소스라치게 놀라우면서 눈물이 났어요. ‘아 주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불러 주셨는데 방황하고 헛짓하다 이렇게 왔구나!’ 그래서 목사가 되기로 결단했죠.”

신학을 마친 김성환 목사는 역시 불어권인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사역하다 미국 엘에이에서 교단과 교회 구조를 배울 수 있는 일을 했다. 유럽에서 공부하고 현지인 사역을 주로 해온 김 목사에게 한인 이민교회를 이해할 수 있는 틀이 잡힌 셈이다. 그리고 애틀랜타로 왔다. 이제 무엇이 그 앞에 펼쳐질 것인가?

▲최근 이전한 큰사랑교회 본당

제자 삼는 교회 향해 두 날개로 날아오르다
큰사랑교회는 2008년부터 한국 풍성한교회(담임 김성곤 목사)에서 시작된 ‘두 날개 양육시스템’을 도입해 성도들을 주의 군사와 제자로 세우는데 힘을 다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의 기본을 가르치는 양육반부터, 제자의 삶, 군사의 삶, 재생산의 삶, 제자대학과 전도를 위한 열린 모임 그리고 삶을 나누는 셀 모임까지 한주간 일정이 바쁘게 돌아간다. 치열하게 이민 생활하는 성도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미적지근한 신앙생활’, ‘세상과 교회에 양다리 걸치고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마음이 완전히 변화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고 김성환 목사는 밝혔다.

“두 날개 양육으로 초신자들은 체계적으로 신앙을 배워가면서 왜 헌신해야 하는지, 주님을 따르는 삶이 무엇인지 하나 하나 체계적으로 배우게 됩니다. 기신자들도 다시금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죠. 그래서 큰사랑교회는 젊으면서 다이나믹합니다. 성도님들 모두가 사명을 갖고 교회에 헌신하고 있어요. 보통 개척하고 2-3년 지나면 개척멤버가 한번 물갈이 된다고 하잖아요? 우리교회는 지금까지 그 멤버 그대로 첫 마음을 잃지 않고 코어(core)멤버로 활동하고 있어요.”

2세 위한 백마디 말보다 한 명의 사역자 청빙이 더 큰 사랑
교회 규모에 비해 큰사랑교회는 사역자 밀도가 ‘높다’. 김성환 담임목사를 비롯해 개척 초기부터 사역해온 교육부 목사, 그리고 중고등부 전도사까지 탄탄한 목회팀이다. ‘아이들이 교회의 미래’라는 생각으로 시작부터 자라나는 세대를 준비시키기 위한 과감한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김 목사가 유럽에서 공부하면서 한때 기독교 국가라 자처했던 유럽 여러 나라들이 오히려 ‘선교지’로 전락한 이유를 직접 봤기 때문이다.

“유럽은 지금 기독교가 완전히 죽다시피 했어요. 존 웨슬리는 ‘우리에게 지금 부흥이 있습니까? 그러나 만일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 부흥은 우리 나이까지만 갈 것입니다’라고 경고했지만 유럽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요. 개척하면서부터 교육부 목사님을 청빙 했어요. 뼈를 깎는 것처럼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지금은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초등학생이던 애들이 3-4년 지나 초등학생이 됐고, 초등학생들은 중학생들이 됐는데 신앙적으로도 많이 성장했죠. 아이들에 대한 투자는 앞으로도 아끼지 않을 겁니다. 백마디 말보다 한 명의 전문 사역자가 아이들에겐 더 큰 사랑입니다.”

큰사랑교회에 오는 새신자들은 대부분 20-30대 젊은 부부들로 장년들은 치열한 삶 속에서도 제자 훈련에 열심을 다하고 있고, 30명이 넘는 아이들 역시 어린 나이지만 주님과의 뜨거운 만남은 어른 못지 않다. 후에 성장해 성전을 건축할 때 역시 교육부 시설에 투자를 아끼지 않을 계획도 세워놨다.

예수님 담고, 제자 삼는 교회 비전으로
큰사랑교회 비전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에 김성환 목사는 먼저 교회 공동체로 나갈 방향 네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신앙공동체, 둘째는 가족공동체, 셋째는 사역공동체, 넷째는 생명공동체가 되자는 것이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자기분열로 재생산이 끊임없이 이뤄지듯, 건강한 생명공동체까지 성장해 가면 교회성장은 자연스레 이뤄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특별히 불어권 선교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

“처음 교회를 시작할 때 5년에 교회를 하나씩 개척하자고 기도했어요. 제가 불어권에서 은혜를 받았고 신학도 공부한 만큼 불어권 선교에 대한 마음도 있어요. 현실적으로는 어려울 수 있지만 이 마음을 잃지 않고 가면 언젠가 기회를 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님과의 새로운 만남’ ‘신앙인격의 진정한 성숙’ ‘사역을 통한 온전한 헌신’을 향해 뜨거운 기도와 헌신으로 삶의 주도권을 성령께 드리기 원하는 성도들의 모임인 큰사랑교회의 문을 두드려보자.

큰사랑교회는 4181 Pleasant Hill Rd., Duluth, GA 30096에 위치해있으며 주일 오전 9시 30분 1부 예배, 오전 11시 2부 예배를 드린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5시 30분에 열리는 새벽기도회는 다른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도 자유롭게 와서 기도할 수 있도록 문을 열고 있으며, 각종 성경공부 모임과 훈련이 주중에 이어진다. 또한 GLC 유스 오케스트라 연습이 금요일 오후 8시에 있다. 문의 (678) 584-9844, (404) 918-7773 skimca@hotmail.com 홈페이지 www.glsb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