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독일 낭만파 가곡의 왕 슈만과 피아노의 시인이라 일컫는 쇼팽 탄생 2백주년이 되는 해이다.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은 1810년에 태어나 1856년에 죽었으니 불과 46년의 짧은 생애를 살았던 불세출의 음악가이다.

그러나 그의 짧은 생애는 간난고초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률을 배우다가 뒤에 음악으로 바꾸어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당시 뛰어난 피아노 교사 비크의 문하에 들어가서 집요하게 연습에 매달렸었는데, 너무 무리한 연습이 오히려 화가 되어 손에 마비증상이 오고 말았다.

선생 비크에게는 클라라는 딸이 있었는데, 슈만은 이 피아노의 요정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클라라는 아홉 살되던 해에 공식 연주회를 가졌고, 이후 국외연주회만 38회에 이르는 당대에도 손꼽히는 명피아니스트였을 뿐 아니라 문호 괴테, 바이올린 마스터 파가니니, 멘델스존, 피아노의 귀재 리스트 등 많은 예술가들이 클라라의 피아노를 극찬하였다 하니 아버지 비크의 입장에서는 이 자랑스러운 딸을 무명 청년 슈만에게 절대로 내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1840년 클라라의 나이 18세, 슈만27세 때 비크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여 잠시 안정된 생활가운데 수많은 가곡을 작곡하였다. 그러나 곧 정신 이상으로 라인 강에 투신자살을 기도하는 등 다시 작곡생활을 하지 못한체 엔데니히 정신 병원에서 죽은 비운의 음악가이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클라라를 짝 사랑해서 평생 홀로 지냈던 브람스의 연정을 알지못한체 세상을 떠난것이다. 브람스는 그의 음악적 대부였던 슈만의 가족을 열심히 돌보았고 클라라를 위한 4개의 곡을 작곡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등학교 시절 집시들의 자유분방한 삶을 그린 슈만의 합창곡 「유랑의 무리」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너도 밤나무 그늘에서 축하연이 무르익었다 이들은 유랑의 무리 눈빛 반짝이고 머리칼이 예쁘도다 붉게 타는 모닥불 언저리에서 연인들도 술잔을 주고 받는구나 노래하고 떠드는 그 속에 남국의 사랑이 있도다 재앙을 물리치는 기도를 하는 노파 춤을 추는 귀여운 소녀 정든 고향을 잃고 꿈의 땅은 찾는 우리」

문제는 이 곡을 많은 교회의 성가대들이 부른다는 것이다. 이 노래는 아름다울찌라도 그 내용은 상기한바와 같이 매우 세속적이며 비탄적이다. 이 세상은 유랑의 무리로 사는자와 신앙의 순례자로 사는 자로 나뉜다. 고상하게 살던 비천하게 살던 유랑의 무리는 집시처럼 허망한 것이다. 신앙인은 유랑의 무리가 아니라 천성을 향하여 가는 순례자이다.

슈만이나 브람스가 유랑의 무리가 아니라 신앙의 순례자임을 깨달았다면 아마도 유랑의 무리와 같은 명작이 탄생하지는 못했을지라도 분명히 “순례자 아브라함”같은 대작 오라토리오를 남기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