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없이 살 수는 없을까! 만일 있다면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그 길을 찾아가리라. 내 일생에 늘 따르던 숙제를 히브리서에서 명괘하게 해결했다. 내용인즉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도 세상에서 심하게 통곡을 하며 살았다는 내용이다. (히5:7) 맞다. 평범한 내가 눈물 없이, 고통도 없이 살겠다는 마음은 처음부터 삶에 대한 잘못된 생각임을 깨닫게 되고 따라서 생각을 바꾸었다. 즉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고통을 벗어나려는 생각보다는 잘 활용해서 내 삶에 도움이 되고 또 다른 이에게 보탬이 되는 기회로 삼자는 전략이다.

인간이 지닌 고통 중에는 질병으로 인한 경우가 많다. 어떤 이는 심지어 태어나면서부터 몸이 약해 일생 병과 싸우기도 한다. 그러나 강한 정신력이 있으면 육체의 약한 면을 이길 수 있다. 전 유럽을 정복하고 천년 로마 제국의 틀을 마련한 시저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 사람 구실을 못할 것으로 사람들은 생각했다. 더욱 흉칙하게도 간질병이 있어 자주 어디에서나 쓰러졌다. 사람들은 그를 피했고 그 자신도 그것을 알기에 외롭게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약점을 극복했다. 외로울 때는 산에 올라가 소나무들을 사람처럼 여기고 큰 소리로 자기의 속사정을 털어놓으면서 뚝심을 키우고 웅변가로 변신하게 되었다. 그의 열변과 뜩심은 후일에 사람들을 끌어모아 강한 군대를 이끄는 장군이 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는 약한 육체를 강한 정신력으로 정복하고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자기의 목표를 이루는 위대한 지도자가 된 것이다. 약한 사람 또는 간질병을 가진 사람이 누구나 시저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얼마만큼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해서 그 약점을 장점이 옮겨놓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또 다른 고통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이다. 사람은 운명적으로 다른 사람과 같이 살게 되어있다. 부모, 형제, 자녀, 친구, 부부가 있게 마련이고 또 사회적으로도 동료가 생기면서 그 관계가 좋을수도 있지만 때로는 경쟁, 사랑과 배신, 질투, 증오가 섞여 돌아가고 원수가 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 고통은 따르기 마련이다. 성자 바울은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한 적이 없으나 그를 미워하고 죽이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었다. 심지어 그를 죽기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는 사람들이 40명이나 집합하여 그가 지나가는 길에 숨어 있기도했다. 이것이 사람 사는 현실이다.

심지어 모든 욕심을 버리고 깊은 산 속에 들어가 하늘을 지붕 삼고 흐르는 물 소리를 들으며 논 밭을 벗삼아 자급자족하며 많은 시간을 묵상중에 사는 수도사들에게는 고통이 없을까? 그 곳에도 다른 면으로 고통이 있다.

문제는 고통을 이기는 방법을 찾는 것이 지혜자의 길이다. 그것은 만사를 사랑하되 심지어 원수 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이다. 나는 근래 새로운 경험을 했다. 창문이 밝아오면 아내와 같이 계곡을 따라 산책을 하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다. 그 길에서 만나는 주인을 따라 나온 개들은 대부분 순해서 처음 만나도 꼬리를 흔들며 쓰다듬어주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유난히 한 마리는 나를 보면 짖다 못해 이빨을 들어내고 당장 물을 듯한 태도를 취한다. 그것도 매일 처럼... 나는 한 가지 방법을 취했다. 개가 좋아하는 과자를 준비했다가 만날 때마다 주었더니 이제는 주인보다 나를 더 좋아하며 따른다. 사람도 같은 원리다.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고 또한 내 고통을 승화시킬 수 있다. 보라! 조개가 입을 벌리고 있는데 침입자 모래알이 속으로 들어오면 그 아픈 상처 부위를 눈물로 쌓고 또 쌓기를 수백번 하여 모래알이 진주로 바뀐다. 모래알이 준 아픈 고통을 통해서 조개는 귀한 보석을 만든 것이다. 인간도 숙명처럼 따르는 고통을 잘 활용하면 자신이 행복해질뿐만 아니라 삶의 가치를 찾고 또한 세상을 밝히는 둥불이 된다. 고통은 필요악인 동시에 잘 활용하면 자신을 성숙하게 하는 도구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