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전쟁 중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아직도 전쟁을 하고 있고 이 전쟁들은 911 테러 후 계속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 범주 하에 들어있다.

이 전쟁의 상대, 즉 미국의 주적은 누구일까? 부시 행정부 때까지는 ‘폭력적 이슬람 극단주의’(violent Islamist Extremism)였다. 2006년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NSS) 보고서에 따르면 “이슬람 종교를 폭력적 정치적 비전에 이용하는 초국가적 테러리스트”를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911 테러가 이슬람 테러단체인 알 카에다에 의해 자행되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알 카에다와 같은 단체를 만드는 ‘폭력적인 이슬람 극단주의’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러와의 전쟁은 이념(ideology)전쟁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의 적의 개념이 변했다. 지난 5월 나온 2010년 미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주적은 ‘폭력적 극단주의’(violent extremism)다. ‘이슬람’이라는 단어가 빠졌다.

조셉 리버만 상원의원은 지난 6월 15일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를 지적하며 미국의 주적은 ‘폭력적 극단주의’가 아니라 ‘폭력적 이슬람 극단주의’라고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버만 상원의원은 손자병법에도 전쟁 승리의 첫째 원칙은 적을 바로 아는 것이라고 했다며 ‘폭력적 극단주의’는 미국 내 백인 우월주의자나 아프리카 사하라 남부 인종청소 무장세력들에게도 해당되는 애매한 개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2010년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 적을 ‘알카에다’ ‘알카에다와 관련 단체’ ‘알카에다 영향받은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한 것도 정확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알카에다라는 단체가 없어진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슬림들을 이렇게 만드는 폭력적 이슬람 극단주의가 없어져야 끝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 내 일부가 우리의 적을 ‘폭력적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하면 서구가 이슬람과 전쟁하는 것이라는 적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둔다고 말하지만 일반 무슬림들은 그들의 신앙과 이슬람을 이용한 테러리스트들의 이념적 차이를 잘 알기 때문에 말이 안된다고 비판했다.

리버만 의원은 미국은 이슬람과 전쟁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 이슬람극단주의자들과 전쟁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비폭력적인 온건 무슬림들이 무고한 무슬림을 죽이는 폭력적 이슬람극단주의자들에 맞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이슬람’이라는 단어가 빠진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2월 이슬람회의기구(OIC) 미국 특사로 임명한 리샤드 후세인의 영향이 크다.

인도계 무슬림인 후세인은 2009년 1월 백악관 자문실에 영입되어 국가안보 특히, 오바마 행정부의 이슬람 관련 이슈들을 자문해왔다.

그는 2008년 8월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공동으로 발표한 “이념 전쟁 재구성:반테정책에서 이슬람의 역할 이해(Reformulating the Battle of Ideas: Understanding the Role of Islam in Counterterrorism Policy)”라는 보고서에서 테러와 이슬람은 별개이며 오히려 이슬람을 장려해 테러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테러전쟁에서 소위 ‘이슬람의 평화적 가르침’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를 위해 반테러활동을 ‘자유민주주의 對 테러’라는 구도 대신 ‘무슬림 세계의 테러 對 이슬람’으로 바꾸고 ‘이슬람 테러’, ‘이슬람 극단주의’라는 말 대신 ‘알카에다 테러’로 대체하자고 제안했다.

더 나아가 미국은 주류 이슬람의 목소리를 인정하고 주류 무슬림 단체와 연구 조직의 발전을 격려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의 테러가 폭력적 이슬람 극단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으로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제거하려는 목적이라고 비판받았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대통령 연설 등에서 이슬람 테러, 이슬람 극단주의라는 말은 사라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카이로 선언에서 “미국은 이슬람과 전쟁하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그러나 우리는 폭력적 극단주의자(violent extremists)들과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리버만 상원의원이 문제삼은 2010년 미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의 주적 개념도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다.

적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싸우는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이슬람 옹호를 이유로 적의 개념을 계속 흐려놓는다면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패배로 끝날 가능성이 짙다.

케이아메리칸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