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외모나 피부색, 지위, 재산으로 주류와 비주류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정부인 미국에서는 우리를 포함해 미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주류다. 다만, 미국에서 납세 등 국민의 의무를 다하면서도 마치 한국으로 돌아갈 여행자처럼 사는 한인 이민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비주류다. 주눅이 들어 뒤에 서기를 당연시하는 사람 역시 비주류다. 미국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좋은 이웃으로 커뮤니티의 성실한 일원이 되어 미국의 문제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민하면 당당한 주류다.”-박선근 본부장 <2010년 신년사> 중에서-

좋은이웃되기운동(Good Neighboring Campaign, 이하 GNC) 본부를 찾았다. 2000년에 설립된 GNC는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인들에게 성실한 ‘미국 시민’이 되라고 주문한다. 이를 위해 미국에 뿌리를 내리고 당당한 미국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어떤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가져야 하는지 다양한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박선근 본부장이 맨바닥에서 시작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자기영역을 구축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훌륭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인터뷰는 GNC 이상민 디렉터와 진행했다.(좋은이웃되기운동본부 www.goodneighboring.org)

-한동안 활발하게 활동하던 GNC가 한참 뜸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GNC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2000년도입니다. ‘좋은이웃되기’라고 하면 무슨 자선사업하고 재난 복구를 돕는 이미지가 큰데, 미주 한인들, 더 크게는 아시안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우리의 제 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사회에 ‘좋은 이웃’이 되자는 취지의 계몽운동입니다.

처음 시작해서 5-6년간 많은 일을 했습니다. 패트리엇포켓카드(Patriot Pocket Card)라고 미국 국가를 영어와 한국어 번역, 그리고 한국말로 표기된 영어로 만들어 지금까지 약 100만장 정도 뿌렸습니다. 또 기본적인 미국사회에서 에티켓과 매너를 정리한 종이를 한인들이 찾는 식당에 배포해 음식이 나올 때까지 볼 수 있도록 했고 각 교회와 단체를 다니면서 프리젠테이션하고 전국 포럼도 하고, 올해의 좋은이웃 선발, 2세들 대상 좋은이웃되기 에세이 대회 등을 했습니다.

▲2004년, 전문 매너강사가 각 교회 한글학교 교사들과 한국학교 교사 등을 대상으로 미국에 살면서 꼭 알아야 하는 매너에 대해 강의했다. GNC측은 이를 습득한 교사들이 각 단체에서 학생들에게 전문적인 매너를 전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박선근 본부장은 본인처럼 한인들도 미 주류사회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 좋겠다 생각하셨죠. 그런데 혼자 운동을 이끌어 가시면서 생각보다 진척이 없고 호응도 크지 않아 힘이 빠지셨어요. 그래서 2006년 이후 활동을 쉬다가 지난해 말 제가 영입되면서(이상민 디렉터)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하려고 합니다.”

-‘좋은 이웃’이 되자는 말 안에는 한인들이 미국사회에 아직은 좋은 이웃이 아니라는 의미 인가요
“신뢰할만한 통계를 들어 설명해드릴게요. 중국계 미국인 단체 100인회가 지난해 1월 주류 미국성인 1,42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여전히 남인가?(Still the ‘Other?’)’에 따르면 ‘미국이 중국과 군사적, 경제적 충돌이 있을 때 중국계 미국인들은 4명 중 3명이 미국을 지지할 것’이라고 답한 반면, 주류 미국인들은 56%만이 중국계 미국인들이 미국편을 들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는 미국인 상당수가 여전히 중국계 미국인들의 애국심(충성심)을 의심한다는 말입니다.

통계결과를 보고 혹자는 ‘중국계 미국인’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다수 주류 미국인들은 중국계, 한국계, 일본계 등을 구별하지 못하고 ‘아시안계 미국인’으로 묶어서 생각하곤 합니다. 보고서는 아시안계 미국인들이 ‘미국에 덜 애국적’이고 ‘배타적’이며 ‘끼리 끼리’라는 미국인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아시안계 미국인들이 정치, 지역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선과 기부활동을 늘리며 특히 정부에서 주목할만한 활동을 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조언했습니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분노한 미국 정부가 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재팬 타운을 형성하며 자리잡아 가던 일본인들을 모두 강제수용소에 보낸 사건이 있습니다. 일본인들의 미국에 대한 ‘애국심’을 믿지 못한 거죠. 이때 큰 교훈을 얻은 일본인들은 미 주류 사회 속에 녹아 들어가려고 노력했고, 재팬 타운을 적극적으로 형성하지 않습니다. 아시안계 미국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도 언제 같은 일을 당할지 모르죠.”

-GNC에서 주장하는 ‘좋은 이웃’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운동 시작 당시 정한 10개 강령에 보면 잘 나타납니다. ‘미국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미국을 위해 기도하자. 미국 국기를 계양하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암송하자. 미국인들과 섞여 살고 커뮤니티 행사에 참여하자. 법과 규칙을 지키자. 한국문화 유산을 미국 발전에 기여하자. 잘 웃고 좋은 외모를 갖자. 미국 역사와 영어를 배우자. 가게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영어 간판을 쓰자. 유권자 등록을 하고 투표하자. 미국 국가를 부르자.’ 한마디로 미국 사회에 적극적으로 녹아 들어가도록 하고 작고 적은 일부터 힘쓰자는 거죠. 그렇다고 한국을 버리자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인의 문화나 유산을 미국발전에 사용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겠죠.”

-이 운동이 1세뿐 아니라 2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이라 기대합니까?
“‘좋은이웃되기운동’은 어쩌면 1세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어요. 먹고 살기 바쁘고, 언어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장벽으로 점점 같은 처지에 있는 한인들끼리 모이게 합니다. 주류사회에 들어가지 않아도 문화적 필요나 욕구는 요즘 넘쳐나는 한국 드라마, 비디오, 책으로 채울 수 있고, 영어는 좀 불편하지만 자녀들 데리고 다니면서 통역 시키면 되고 또 한인타운이 발달될수록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으니 마음은 점점 한국과 가까워지죠.

반면 2세들은 미국에서 자라고 공부한 미국인들 입니다. 한국말을 할 수 있더라도 깊이 들어가보면 부모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무시하거나 부정하기도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들이 미국사회와 아예 담을 쌓고 살고, 자신들에게 통역을 시키면서 종종 탈세 등 불법을 저지르는 것을 보며 수치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실제 연방상하원 보좌관 중 똑똑한 한국계 미국인들이 많은데, 깊이 대화해보면 한국과 한인사회를 싫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군다나 경제가 어려워지면 마이너그룹인 이민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커집니다. 이럴수록 이민자들은 ‘나는 미국이 좋아서 왔고, 미국에 기여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걸 보여야 합니다.

더 큰 문제는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라고, 이런 부모의 모습을 자녀들이 닮아간다는 겁니다. 2세들이 미국에서 자라고 영어도 잘하고 좋은 대학 나와도 주류사회에 잘 못 들어 갑니다. 현재 캘리포니아 한인 가운데 선출직 공무원 중 최고위직인 캘리포니아 조세형평국 위원으로 활동하는 미쉘 박 스틸 위원은 “한인 2세들이 정계에 진출하려면 어릴 때부터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야 한다. 미국 사람들은 10대부터 정치인 선거실에서 편지도 붙이고 허드렛일도 하면서 인맥을 쌓지만, 1세들은 아예 그런 생각이 없으니 당연히 자녀들도 보내지 않는다”고 지적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잘났어도 다 커서 그때 정치계에 들어간다는 건 아주 어렵습니다. 1세들이 한국 정치와 사회에 관심을 갖는 것 2배 이상으로 미국 정치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2세들도 의식이 깨이도록 북돋아줘야 우리 자녀들이 이 나라의 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GNC에서 하는 활동 중에 ‘굿네이버링데이’라는 게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굿네이버링데이’는 지역 한인사회와 손잡고 펼치는 활동입니다. 한인교회 등 주요 한인조직과 함께 한국음식과 태권도 등 한국문화를 지역사회에 알리며 좋은이웃관계를 맺자는 프로그램이죠. 그동안 몇가지 프로그램으로 이뤄졌습니다. 먼저, ‘지역사회감사만찬’이라고 한인교회들이 지역경찰, 소방관 등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며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겁니다. 마리에타 임마누엘감리교회(신용철 목사)는 6년째 지역 경찰들을 초청해 대접하고 감사를 표하고 있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주방위군의 고등학교 중퇴생 갱생프로그램인 YCP(Youth Challenge Program)에 적극 참여한 것입니다. 한인교회 등과 더불어 그 청소년들에게 찾아가 한국음식과 태권도 등을 소개하며 격려하는 것이죠. 특히, 박 본부장은 숱한 고난을 이겨온 자신의 인생사를 들려주며 고등학교 중퇴로 한번 실패를 경험한 청소년들에게 ‘If Sunny can, I can’을 심어줍니다(박 본부장의 영어이름은 Sunny Park이다). 지금까지 9800명 정도가 박 본부장의 이 간증을 들었는데 그 중에는 고맙다고 액자를 만들어 보내기도 하고, AJC 등 주류 언론에 수 차례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YCP에서 강연하는 박선근 본부장.

한국 성동구와 캅 카운티가 자매결연을 맺고 교류활동을 이어오는데도 많은 역할을 했는데요 이처럼 한인들이 어떻게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 크고 작은 일을 저희가 코디네이터 합니다.”

-앞으로는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있습니까?
“일단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계속하면서 보강하려고 합니다. 제가 합류하면서 계획하는 것이 ‘케이아메리칸포스트(KAmerican Post)’라는 홈페이지 운영입니다.(www.KAmerican.com)

이전에 박 본부장이 발행했던 ‘이스트웨스트 모니터’를 강화하는 겁니다. 한인들이 미국의 주요 뉴스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물론 한국 언론에서 파견해 외신을 번역하거나 취재하는 기자가 있지만, 미국 사람이 아닌 제 3의 시각, 즉, 남의 나라 일로 쓰기 때문에 피부에 와 닿지 않습니다. 케이아메리칸포스트는 미국 언론에 나온 기사 중 한인들이 알아야 하고 꼭 필요한 내용들을 번역하고, 의회의 중요한 법안을 알려주며, 미국 역사 및 매너, 미국 내 자랑스런 한인들을 발굴해 알리는 ‘통신사’ 역할을 할 것입니다.

특히, 한인사회의 여론이나 한인들의 생각에 큰 영향력을 미치시는 한인교회 목사님들께서 설교예화에 이용하실 수 있는 소스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밖에 자랑스런 아시안계 미국인들의 얼굴과 활동을 담은 포스터를 만들어 배포하고, 한인들의 정체성을 생각해보는 한인사회 포럼, 주일학교 교사에게 미국식 예절강사 자격증을 부여하는 예절학교 등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20년 30년 넘게 살아온 삶의 양식을 바꾸는 것은 어렵습니다. 당장 ‘나’를 위해서는 못하더라도 ‘자녀’와 ‘미래’를 위해 조금은 불편하지만 의식을 바꾸고 생각을 넓히는 것, 그리고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