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서울에서 발행되는 모 일간지 기자가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이며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한 추기경이신 정진석 추기경을 인터뷰한 기사가 실려서 보게 되었는데, 이유는 인터뷰 기사의 제목, “예수님의 부활은 눈에 보이는 육신의 부활이 아닙니다”였습니다. 기자는 부활절을 맞아 우리나라 캐톨릭 교계의 어르신이신 정 추기경에게 ‘죽음’과‘부활’에 담긴 뜻을 물었고, 정 추기경은 교리적 해석이 아니라 묵상으로 몸소 길어 올린 울림을 통해 ‘예수의 죽음, 예수의 부활’에 답을 하셨다는 전제와 함께 인터뷰 내용을 실었습니다.

예수의 부활이 육신의 부활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이 지금도 계속되는 세상을 향해 정 추기경은 “육신은 물질입니다. 흙으로 돌아가죠. 그러나 부활한 영혼의 육신은 비물질입니다. 현세의 육신과는 다른 차원이죠”라고 말했다며 인터뷰의 서두를 시작하면서, 이와 같은 정 추기경의 발언은 적지 않은 천주교인과 개신교인이 예수의 부활을 육신의 부활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데 추기경의 이 한 마디는 굉장한 ‘파격’이고, ‘외침’이며, 그 외침은 그리스도의 참 생명이 과연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했다는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기자는 예수가 체포되기 전날 밤부터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는 날까지, 그 이틀을 통해 ‘죽음과 부활의 열쇠’를 찾고 싶었기 때문에 정추기경에게 “이틀”이나 물었다고 합니다.

그날 부활에 대한 정 추기경의 말씀,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추기경과의 인터뷰 내용을 담은 글은, 그 글을 쓴 기자의 표현대로 제게도 파격적인 외침으로 들렸습니다. 제게 파격적이란 말은 기자의 말대로라면 우리나라 천주교인과 개신교인중 적지 않은 이들이 예수의 부활을 육신의 부활로 믿고 있다는 것이 마치 믿지 말아야할 것을 믿고 있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고백해야할 부활 신앙은 육신의 부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적지 않은 교인들이 주님의 부활은 물론이고 그를 믿는 성도들의 부활을 육신의 부활로 믿지 않고 소위 ‘영적인 부활’, 또는 더 나아가서‘ 영혼불멸’을 부활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에 관한 성경의 증언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육신에 있다가 죽는 순간 우리의 영혼은 육신을 떠나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희랍사상중의 하나인 이원론, 즉, 이 세상에 보이는 모든 물질(육신 또는 형상)은 그 본래적인 것의 그림자(형상)이며 그것의 본질은 현상과는 달리 존재한다는 이원론에 근거하여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같은 초기 희랍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육신이 본질이 아니고 육신은 우리의 본질에 다만 보이는 현상이며, 죽음은 우리로 이러한 우리의 보이는 육신(비본질)에서 벗어나 우리의 본래의 모습(영혼;본질)으로 돌아간다고 보는 영혼불멸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을 영혼불멸로 증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의 본래적 모습(본질)으로 지으셨으며, 이러한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보시기에 온전하였고, 하나님은 그런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기를 원하셨지만 사탄의 유혹으로 인해 죄를 범함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죽는다는 것입니다.

곧 성경은 우리를 비본질(육신)적인 것과 본질(영혼)적인 것으로 구분하고, 죽음은 우리가 비본질적인 모습(육신)에서부터 벗어나 본질적인 모습(영혼)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죽음은 죄로 인해 벌어진 하나님과 우리와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우리를 단절시키는 죄로 인한 죽음으로 우리와의 관계가 끝나게 하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죄에서부터 자유롭게 하시고, 이 증거로 주님을 죽음에서 부활하게 하셨으며, 이를 믿는 이는 누구든지 그와 같이 부활하리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활의 첫 열매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모습을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 주심으로 부활의 우리의 모습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여 주시므로 당신임을 나타내시기도 하셨고, 동시에 그들이 무서워 문을 잠근 방에 나타나시기도 하신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즉, 부활하신 주님의 육신은 죽음이전의 육신과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같은 모습이며, 장차 부활할 우리의 모습도 이와 같다는 것을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부활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고, 그것은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덧입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덧입힘이란 있는 것을 없애고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다가 새로운 것을 덧입히는 것을 말합니다.

죽음이란 썩어질 육신에서 영혼을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완전히 썩게 만드는 죄의 값이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썩어질 것에 썩지 아니할 것을 덧입혀 다시 살게 하시는 증거로 주님을 부활케 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