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전 한국에서는 "솔로몬의 선택"이라는 교양프로그램이 한창 인기를 끌었었던 것을 기억한다. 임성훈씨가 진행을 맡고, 연예인 게스트들과 실제 변호사들이 출연해 생활에 밀착된 법률문제에 대한 재연과 나름의 해석을 통해 딱딱해 보이는 법을 씹어 먹을수 있을만큼 야들야들하게 전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솔로몬의 선택"은 분명 성경에서 따온 표현 일테고, 그것이 아이의 친어미를 가리는 솔로몬의 지혜로운 판결에 관한 이야기가 그 출처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 이야기에서 솔로몬은 더없이 지혜로워보였다. 온 이스라엘의 솔로몬의 판결을 듣고는 솔로몬을 두려워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왜일까? 하나님의 지혜가 선명하게 임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판결은 오고오는 세대에 가장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인 재판의 모델로 기억되고 있다. 주일학교 시절 솔로몬의 판결 이야기를 성극으로 무대에 올릴라치면 솔로몬 역할은 모든 남자아이들의 로망이었다. 나도 솔로몬이 너무 하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개척교회 담임전도사의 아들이라 그 역할을 내가 차지할 수는 없었다.

군병1을 했었는지, 군중을 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여하튼, 솔로몬은 꿈에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던 덕에 지혜에 더하여 전무후무한 부귀와 영광도 약속 받았다. 주일학교 시절의 성극은 여기에서 끝이 났었다. "잘 먹고, 잘 살았더라"로 끝나는 전형적인 동화적 엔딩이었다.

하지만, 실제 솔로몬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솔로몬은 20년동안 화려한 성전과 궁전을 지었고, 그 외에도 엄청난 토목공사들을 완성했다.
명성은 높아져 갔고, 각국에서 사절단을 보내왔고, 동맹을 맺었고, 정치적 외교적 유익을 공유하고자 몰려왔다.

솔로몬의 지혜는 그 때에 발휘되었어야 했다.
하나님의 지혜로 상황을 직시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판단을 했어야했다.
하지만, 후궁을 700명, 첩을 300명을 들였다. 그들이 자신들의 신을 섬기는 것을 금하지 않았다.
솔로몬은 하나님에게서 그 마음이 멀어져갔다. 여인들이 솔로몬의 눈을 멀게 하였다.
급기야 하나님은 솔로몬의 아들 대에와서 나라를 찢으신다.
지혜를 통해 부귀와 영광의 극치를 누렸던 솔로몬이 어리석은 판단을 통해 이스라엘 분열의 단초를 제공했던 것이다.

한국교회의 성장의 모델, 성공의 모델이 솔로몬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부귀와 영광과 명성과 인기가 축복의 모델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세속적인 성공, 세상적인 축복이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복을 훼손해서는 안될 것이다.
진정한 복은 바른 복음을 소유하는 것이다. 변함없는 진리를 소유하는 것이다.
자기보다 다음세대가 더 훌륭한 믿음의 세대로 세우는 것이다.
거기에 우리의 사활이 걸려있다. 한국교회의 미래가 걸려있다.

어쩌면, 다윗보다 솔로몬을 더 많이 닮아있을지 모를 한국교회가 포스트모던의 도도한 물결 앞에서 정말 지혜로운 "솔로몬의 선택"을 해 나갈 수 있기를, 그래서, 우리의 선택의 열매를 후손들이 기쁨으로 누리며, 감사의 고백을 할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사순절 기간에 김인집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