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겨울은 2월부터 시작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상춘(常春)기대를 시샘하듯 폭설이 내려 예쁘게 올라온 수선촉들을 눈밭에 사정없이 가두어 버렸다. 소복 소복내리는 눈이야 동설(冬雪)이든 춘설(春雪)이든 가릴바 없으나 하늘을 가리고 쏟아붓는 폭설(暴雪)에 이르서는 시심(詩心)도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 눈 내리는 정도를 표현하는 말들이 많다. 대설 폭설 강설 잔설 편설 그런데 엊그제 내린 눈은 이 모든 단어들 중에 맞는 말이 없다. 순수한 한글로 가늘고 성기게 내리는 눈을 포슬눈이라 하고 굵고 탐스럽게 내리는 눈을 함박눈이라 한다. 그 외에도 마른눈, 소나기눈, 도둑눈, 풋눈 등과 같이 아름다운 말이 있다.

그중에 한 자 깊이로 온 잣눈이란 말이 있으나 30인치가 넘는 눈앞에서는 잣눈이란 문자 그대로 잣과 같은 눈에 불과하다. 그래 이 참에 신조어(新造語) 하나를 탄생시킬까 한다. 이른바 마설(魔雪)이다. 오바마대통령이 이번 눈사태를 '눈(snow)'과 지구종말의 대혼란 '아마겟돈(armageddon)'을 합성한 '스노마겟돈(snowmageddon)'에 비유했다니, 이미 이 사람들은 마설에 걸맞는 단어를 상비하고 있었나 보다.

하루종일 쏟아붓는 눈발을 보면서 가랑눈이나 자국눈정도에도 드라이브웨이를 치우기 싫어 툴툴거리던 성정이 매우 모자란 것임을 실감케 한다. 뉴욕에 사는 친구가 안부를 전하면서 눈 많기로 유명한 그곳이 웬일로 깔끔하다하니 살기좋은 워싱턴이 졸지에 변방이 되고 만 셈이다. 폭설로 거의 모든 도로와 철도가 차단되고, 공항의 비행기 이ㆍ착륙은 대부분 취소되고, 시내버스마저도 멈춰 서고 때마침 주일이라 거의 모든 교회가 예배를 취소하게 되니 마설대란이 아닐 수 없다.

하기는 디시(D.C) 사람들이 백설이 난분분한 가운데도 스노우볼 싸움을 즐겼다 하니 이 사람들에게는 마설이 아니라 희설(喜雪)이 되는 셈인가? 문제는 앞으로도 이만한 눈들이 계속 내리고 또 내린다하니 동장군(冬將軍)도 마설앞에서는 필패일 수 밖에 없다.

눈이란 “수증기를 포함하고 있는 습한 대기에 있는 미세한 물질들이 생성하여 생기는 현상이라 한다. 미세한 핵에 달라붙은 수증기가 얼면서 눈 알갱이가 되고 주변의 수증기들이 계속 달라붙어 결정이 커지게 된다.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눈을 생성하는 빙핵의 대부분은 박테리아라고 한다.” 하니 될 수 있는대로 눈을 맞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이문세가 노래한 광화문연가에 되풀이 나오는 가사 “이제 모두 세월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에 아직 남아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저 눈길에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힌 조그만 교회가.. 향긋한 오월에 꽃향기는 가슴 깊히 그리워 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힘박눈 내린 정동길이나 광화문을 걸었던 일은 옛 동화가 되고 만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