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어린이들을 해외 임시 고아원으로 옮기려던 미국 교인들이 아이티 당국에 의해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해, 국제적 이슈로 대두된 아이티 지진 고아 문제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침례교회 소속인 교인 10명은 지난 29일 아이티 어린이 33명을 데리고 국경을 넘어 도미니카공화국으로 가려다 아이티 경찰에 의해 어린이 인신매매 혐의로 체포됐으며, 현재 당국에 억류된 상태다.

대부분이 미국 아이다호 주 센트럴 밸리 처치 소속인 이들은 이번 지진으로 고아가 된 아이티 어린이 100명을 모아 도미니카공화국에 고아원을 설립하는 아이티 고아 구조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아이티 현지 목사에게서 어린이들을 소개 받았다고 밝혔다.

체포 당시 이들과 함께 있던 어린이들은 2개월에서 12세까지의 어린이들로, 고아원 건축이 완공되기 전까지 도미니카공화국의 한 호텔에 마련한 임시 보호소로 옮겨져 의료 서비스를 받게 될 계획이었다.

현재 센트럴 밸리 처치측은 “인신매매는 사악한 범죄”라며 “우리 교인들은 다만 어린이들을 구조하려고 애썼을 뿐”이라고 인신매매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체포된 교인 중 한 명인 로라 사일스비 역시 “혼란의 와중에서 다만 옳은 일을 하려고 했을 뿐”이라고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국경을 넘어 데려 가려던 어린이 33명에 대한 적절한 입양 서류를 갖추지 않았으며, 어린이 중 일부는 부모 또는 다른 가족이 살아남은 상태였다는 데 있다.

아이티 주재 국제탁아소장인 패트리샤 바르가스는 “미국 교인들이 데려 가려던 33명의 아이티 어린이들 대부분이 지진에서 살아남은 가족이 있다”고 31일 확인했다. 그에 따르면 7세 이상 어린이들 중 일부는 부모가 생존해 있었고, 몇 명은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 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지진 이전에도 아이티에서는 어린이를 유괴해 국제 입양 시장이나 아동 노예 시장에 내다 파는 어린이 인신매매가 심각한 사회 문제였으며, 따라서 아이티 정부는 이번 지진으로 인한 혼란을 틈타 어린이 인신매매가 기승을 부릴 것을 우려해 왔다.

또한 이번 지진으로 발생한 고아들에 대해 세계 각국에서 서둘러 입양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키워 줄 부모나 친척이 없는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해외로 보내지는 사례가 속출해, 아이티 정부는 사전 허가 없이 이뤄지는 어린이 해외 출국을 금지한 상황이었다.

아이티 정부는 이번 사건 발생 즉시 “미국 교인들의 지진 고아 입양이 호의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적법 절차에 따르지 않는다면 입양이 아닌 납치”라며 유감을 표시했다. 어린이 인신매매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사건에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것이 아이티 정부의 입장이다.

체포된 10명은 현재 아직 정식으로 기소되지는 않은 상태로, 미국과 아이티 당국은 이들에 대해 미국에서 정식으로 재판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어린이들을 어떤 경로로 모집했는지, 또 10명 가운데 금전적 이유로 일해 온 입양 알선업자는 없는지 등이 양국 수사당국에 의해 조사되고 있다.

한편, 아이티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지진 전에 이미 절차를 개시한 입양을 제외하고는 해외 입양을 일단 중지했으며, 해외 입양과 관련해서 막스 벨레리브 총리의 직접 서명을 받도록 특별 조치를 취했다.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 세이브더칠드런 등 세계 각국의 국제 아동 구호단체들은 “지금 단계에서 아이티 어린이를 외국으로 보내는 것은 너무 성급한 일”이라며 “이는 아이들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라고 지진 발생 직후 잇따른 세계 각국의 아이티 지진 고아 입양 움직임에 반대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