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자본과 화려한 장면으로 눈길을 끄는 대형 블록버스터들이 극장가를 점령한 요즘, 작지만 깊은 감동을 전해주는 소품과도 같은 영화 <천국의 속삭임>.

지난달 17일 시네큐브 광화문 등 적은 수의 영화관에서 개봉했지만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선전하고 있는 이 영화는 시각장애인이자 이탈리아 최고 음향감독 미르코 멘카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독립영화다.

자상한 부모님, 뛰어난 외모와 총명한 두뇌를 가진 세상에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한 소년 미르코(루카 카프리오티 역). 유난히 영화를 좋아했던 아이는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보는 시간이 제일 좋았다.

그러나 천정 꼭대기에 올려뒀던 엽총 한 자루가 모든 것을 빼앗아간다. 엽총에 잘못 손댔던 미르코는 사고로 시력을 잃고 평생 앞을 볼 수 없다는 진단을 받는다. 게다가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는 부모와 함께 살 수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다닐 수도 없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 <천국의 속삭임> 한 장면. 미르코와 친구들이 ‘사운드 시네마’를 제작하고 있다.

법에 따라 부모와 격리되어 특수학교에 들어가게 된 미르코가 낯선 환경 속에서 배우는 것이라곤 점자, 옷감짜기, 용접 뿐이다. 엄격한 규칙 속에서 미르코는 부모님과의 단란한 식사, 즐거운 친구들과의 놀이는 물론, 좋아하는 영화도 볼 수 없게 됐다.

축구선수도 되고 싶었고, 대통령도 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미르코는 한동안 절망 속에 갇혀 지낸다. 희망을 빼앗긴 미르코가 할 수 있던 일은 마음을 닫고 스스로 어둠 속에 갇히는 일이었을 뿐.

그에게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었던 특수학교 친구들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다가선다. “하늘을 본 적 있니? 태양은? 눈은? 어떤 느낌인지 말해줘.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싶어...”

미르코는 새로 사귀게 된 특수학교 친구들과 함께 프랑코와 치쵸가 나오는 영화를 ‘보러’ 가며, 우연히 발견한 오래된 녹음기로 목소리와 소음을 이용해 한편의 영화를 제작하기도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라디오를 발명하고, 창의력을 표현할 수 있게 된 셈.

비록 시력이 약해 앞을 볼 수 없지만 미르코는 그가 가진 재능으로 계절과 풍경, 인간의 희노애락을 소리로 표현한다. 샤워기를 통해 흐르는 물은 마른 땅을 적시는 빗물이 되고, 입술을 맞붙여 만들어 낸 떨리는 진동음은 향기로운 꽃을 찾는 꿀벌이 되고, 제철소 용광로의 웅장한 기계음은 동화 속 용이 내뿜는 거대한 불이 된다. 콘크리트 복도를 상상나라의 숲으로, 앞 못 보는 아이들은 마법에 걸린 왕자들로 변신시킨다.

영화 마지막 5분은 평생 아무것도 본 적 없는, 그렇지만 천사처럼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소년들과 미르코가 펼치는 ‘사운드 시네마’ 공연이 가득 채운다. 정상인을 흉내내는 반쪽짜리 학예회로 치러졌던 관례를 벗어나 관객이 된 학부모들은 모두 눈에 안대를 채우고, 미르코와 친구들이 만든 사운드 시네마를 감상하게 된 것.

앞을 볼 수 없기에 더 특별한 재능이 열리고, 그로 인해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날 수 있음을 알려주는 미르코의 공연은 모두에게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기적을 선사한 빛의 향연(饗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