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엔 때가 있는 법. 기쁠 때가 있고 슬플 때가 있으며, 취할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 은혜받을 만한 때가 있고 꿈꾸는 때가 있다. 2010년 새로운 해를 맞이한 지금, 더없이 꿈꾸기 좋은 때다. 기독미술의 부흥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 척박한 기독문화 가운데 가장 메마르고 황폐한 땅이라 할 수 있는 기독미술이 새파란 움을 틔우고, 꽃처럼 피어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이들을 만나본다.

지난 6일 오전 강남역 부근에 위치한 아름다운땅이라는 작은 갤러리카페에서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다. 사랑의교회 미술인선교회(회장 정해숙)가 주최하는 신년기획 젊은작가초대전이 열린 것. ‘오벳은 이새를 낳고’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전시회에는 김종한, 김현석, 김지혜, 안령, 전신혜 등 촉망받는 청년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됐다. ‘The Illusion’이라는 타이틀로 도자기를 출품한 양지운 작가(30)도 그 중 한 명.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박사과정 1년차인 양 작가는 석사학위청구전을 겸한 개인전을 얼마 전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최한 신진작가다.

이번 전시회에 당초(唐草)무늬로 장식한 주전자와 컵 도자기세트를 선보인 양 작가의 작품은 언뜻 보면 기독교작품인지 금방 감이 잡히지 않는다. 십자가나 기도 등 전형적인 기독미술의 이미지를 탈피한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식기였기 때문.

“당초라는 식물은 상상의 식물이에요. 여러 가지 덩굴이 끝없이 이어가는 모양이죠. 저는 이 소재를 선택하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무슨 일이든 쉽게 한계를 짓거나 판단을 내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지시는 것 같았어요.”

도예를 전공한 양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기독교적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오히려 스트레스로 작용했다고 한다. 작품의 시작이 힘들고 두렵게 다가왔을 정도라고. ‘도자기를 만드는 작업이 무슨 의미가 있나’, ‘왜 미술이라는 달란트를 주셨나’라는 물음을 붙들고 오랜 기간 고민에 빠져들었다.

미술적 재능이라는 달란트가 하나님의 선교에 어떻게 쓰임받을 수 있을지 방향성이 잡히지 않자 작품활동에 용기와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이러한 마음은 모태신앙이었던 믿음까지 뒤흔들어 하나님에 대한 의심의 마음으로 확대돼 방황 아닌 방황을 해야했다.

그러나 위기는 오히려 기회였다. 고민 끝에 우연히 사미선(사랑의교회 미술인선교회)를 만나게 됐고, 그간의 괴로웠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동안 제 작품을 교인들과 나눠본 기회는 없었어요. 그런데 사미선을 만나 작품을 교회에 전시하면서 미술이라는 달란트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통로를 찾게 됐습니다.”

양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교인들에게 설명하면서 은혜를 받고, 교인들은 양 작가의 작품에 대해 조언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신앙에 대한 의견을 서로 나누기도 하면서 교인들과 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또 팔린 작품의 수익금은 자연스럽게 불우이웃에게 기부하거나 선교헌금으로 내어놓았다.

“제 스스로 기독미술과 일반미술의 경계를 그어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저는 순수하게 성경의 메시지를 붙들고 이 주전자를 만들었지만 작품 자체에 성경적인 이미지가 도드라지지는 않죠. 그러나 제 작품을 보시는 분들이 이 작품을 왜 만들었을까 생각하면서 제 신앙의 고백을 느낄 수 있지 않나 해요.” 작가의 내면이 작품에 묻어난다는 뜻일 테다. 그렇기에 양 작가는 자신의 신앙과 삶이 일치해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감을 갖고 항상 ‘내가 과연 크리스천답게 살고 있는가’ 자문해 본다고 한다.

양 작가에게 2010년은 어떤 해일까? “’The Illusion’이라는 작품 타이틀은 방황했던 한때, 하나님께서 주신 환상과도 같은 음성을 토대로 지었어요. 현실은 힘들고 괴롭지만 저에게 주신 미술작가라는 ‘소명’을 통해 사막과 같은 이 땅에 샘이 넘치게 하실 것이라는 비전을 주셨거든요. 2010년 그 비전을 어떻게 이루어가실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