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9년 2월, 일본 국회의 예산심의 위원회 회의실에서 질문에 나선 공명당의 오쿠보 의원이 난데없이 뭔가를 꺼내 읽기 시작합니다. 예산 심의로 여러 날 동안 국회 내 여당과 야당 사이에, 그리고 정부와 국회사이의 의견 대립이 심각하던 때인지라 그의 돌연한 행동을 그 자리에 있던 장관들과 의원들은 모두 의아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쿠보 의원이 글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여기저기에서 눈물을 훌쩍이며 손수건을 꺼내는 사람들이 생기더니 글을 다 읽을 즈음 장내는 온통 울음바다를 이루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팽팽하게 맞선 정책대립과 여당과 야당이란 정당의 차이, 그리고 정부와 국회라는 입장의 차이는 사라지고, 장관이건 방청객이건, 여당이건 야당이건 편을 가를 것 없이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그가 읽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일본 국회를 울리고, 거리를 울리고, 학교를 울리고 결국은 나라 전체를 울린 이야기는 바로 구리 료헤이가 쓴 ‘우동 한 그릇'이란 이야기입니다. 아마 여러 분들 중에도 이미 읽으신 분들이 많이 계실 줄 알고 저도 몇 년 전 읽으면서 마음에 찡한 감동을 느낀 기억이 아직도 새로운데 지난 주간 어떤 분이 이메일로 보내줘서 다시 읽으면서 송년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과 이 ’우동 한 그릇‘의 이야기를 요약하여 나누려는 이유는 이 이야기에 나오는 우동집 주인이 건네던 인사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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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그믐날이었다. 일본 삿포로에 있는 우동집<북해정>에 마지막 손님이 떠난 후 주인이 가게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어떤 여자가 두 아이를 데리고 와서 아주 미안해하며 ‘우동 1인분만 시켜도 좋으냐’고 묻는다. 그들의 차림새로 보아 우동을 한 그릇밖에 시킬 수 없는 딱한 처지임을 안 주인은 그들을 반가이 맞이하곤 우동 한 그릇에 일인분양보다 많은 반인분을 더 넣어 끓어준다. 우동 한 그릇을 셋이서 맛있게 먹고 돌아가는 그들을 향해, 주인 내외는 “고맙습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하고 큰소리를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일년 뒤, 다시 섣달그뭄날 거의 같은 시각에 그들이 또 다시 우동집엘 왔다. 그리고 그들은 또 우동 한 그릇을 미안해하면서 시켰다. 지난해처럼 반갑게 맞이한 주인 내외는 주문한 우동 한 그릇분인 1인분에다 반인분을 더 넣었다. 그해에도 우동 한 그릇을 맛있게 먹고 가는 그들을 향해 주인 내외는 다시“고맙습니다. 새해에 복많이 받으세요”하고 큰소리를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그 다음해 섣달 그믐날이 되자, 우동집 주인 내외는 그들이 오면 앉았던 2번 테이블에 예약석이란 팻말을 붙여놓고 메뉴에 그 해부터 오른 우동값 대신 작년과 같은 값으로 고쳐놓고 그들을 기다린다. 예년과 비슷한 시간에 세 사람은 와서 우동을 주문하는데 이번에는 우동 두 그릇을 시킨다. 물론 주인은 거기에 1인분을 더해서 우동을 만든다. 그리고 그날 어머니는 두 아들에게 그동안 진 빚을 모두 갚았다고 하면서 그동안 어려운 형편에 신문배달을 한 큰 아들과 집안일을 거들어준 작은아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던 형이 동생이 써서 학교에서 상을 받은 글인 ‘우동 한 그릇‘이란 글을 엄마에게 읽어준다. 엄마와 형과 함께 섣달 그믐날 우동이 너무 먹고 싶은 자기들을 위해 우동집에 데리고 와서 우동 한 그릇만 시켜서 먹는데, 셋이 와서 우동 한 그릇만 시키는 자기들을 귀찮아하지 않고 오히려 항상,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하는 주인 내외의 인사를 들으며, 그 인사가 마치 자기들에게 '지지 마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라고 들리는 것 같았다고 하면서 자기도 커서 그런 우동집 주인이 되고 싶다는 내용이다.

형이 읽는 동생의 글, ‘우동 한 그릇’을 들으면서 엄마는 물론 우동집 주인내외도 가슴이 뭉클해 한다. 그리고 그날도 우동집 주인 내외는 우동을 다 먹고 가는 그들을 향해 “고맙습니다. 새해에 복많이 받으세요”하고 큰소리를 인사를 건넨다.

그러나 그 뒤론 섣달 그믐날이 되어도 세모자는 우동집엘 오지 않았다. 우동 집은 날로 번창하여 가게안의 식탁들을 새것으로 바꾸면서도 그 세모자가 앉았던 2번 테이블 만은 그대로 놔두고, 해마다 섣달 그믐날이 되면 어김없이 ‘예약석’이란 팻말을 놓고,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비워두었다. 그리고 왜 그러는지를 묻는 이들에게 주인 내외는 우동 한 그릇 시킨 손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해 섣달 그믐날, 많은 사람들로 가득한 우동집 안에 세 명의 손님이 들어온다. 처음엔 그들이 누구인지 몰라 ‘자리가 없다’고 말을 하려는 주인에게, “우동 3인분만 시켜도 되나요?”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주인과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들이 바로 그 세모자인줄을 알게 된다. 그들은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덕에 두 아들 모두 잘 성장해서 어머니를 모시며 잘 살게 되었고, 옛날 우동 한 그릇 먹던 우동집에 우동 세 그릇을 먹으러 다시 찾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