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 간다. 저물어 가는 한 해의 끝자락에서 지나온 한 해의 시간들을 되돌아 본다. 참으로 힘든 한 해였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불경기로 시달리는 가정들을 보면서 함께 힘들어 했던 가슴 아픔이 지금도 계속된다.

이민 와서 정착해 보려고 몸부림치다가 결국 자리잡지 못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나의 아픔으로 남아있다. 이제 겨우 이곳 학교에 막 적응이 되어 신나 하던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다른 길이 없을까 하며 함께 고민하고 기도했던 시간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건강보험이 없어 그리고 언어문제, 신분문제로 쉽사리 병원에 가지 못하는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참고 참다가 결국 병을 치료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신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함을 감출 수 없다. 세계적인 경기불황이 최고조에 달한 금년에는 참으로 여러 가정들이 고국으로 돌아갔고, 오랫동안 함께 기쁨과 아픔을 나눈 이들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우리의 곁을 떠나가는 일들이 있어서 무거운 마음이 가득한 한 해였다. 함께 주의 일을 하며 웃고 울고 때로는 부닥치면서 어우러져 온 시간들이 아름다운 기억들로 마음에 남아 가끔 생각나면 어디에 가 있든지 이 곳에서의 믿음생활 보다 더 나은 믿음생활을 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에게 기도함으로 마음을 달래본다.

참으로 2009년 한 해는 힘든 한 해였다. 그러나 이렇게 힘든 한 해였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서도 계속 나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영성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부족함과 연약함으로 살아온 한 해였기에 후회함이 많고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많은, 그래서 하나님 앞에 죄송스러운 마음이 큼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내 심령 가운데 넘치고 있다. 돌아보니 정말 그렇다. 내가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살 수 있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한 해를 뒤돌아 보며 이 글을 쓰면서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바닷가를 거니는 꿈을 꾸었다. 두 발자국이 해변가 모래 사장에 선명하게 나 있었다. 하나는 자신의 발자국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 자신과 함께 걸어 주신 발자국이었다. 그런데 걷기가 힘든 돌 짝 밭을 지날 때나 가시덤불이 있는 곳을 지날 때는 발자국이 하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주님에게 울면서 호소했다. “주님 왜 이렇게 힘들고 괴로울 때에는 나 혼자 걷게 하셨습니까?” 그렇게 울며 호소하는 그 성도에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그것은 너 혼자의 발자국이 아니라 너를 업고 걸은 내 발자국이니라.” 이 이야기처럼 돌이켜 보면 우리의 삶에는 순간 순간이 은혜가 아닌 것이 없다. 평안할 때에도 함께 하셨고 고난의 때에는 더욱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찬송가 356장 4절을 불러보자 “만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탈무드에는 다음과 같은 은혜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어떤 랍비가 나귀를 타고 닭 한 마리와 등불과 천막을 싣고 여행을 떠났다. 가도가도 집은 없고, 해는 저물어 하는 수 없이 길 옆에다 천막을 치고 나귀와 닭을 천막에다 묶었다. 닭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꼬끼오’ 하고 아침을 알려 주는 알람 시계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랍비가 천막 속에서 등불을 켜고 성경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등잔대가 넘어지고 그만 불이 꺼져 버렸다. 할 수 없이 성경을 덮어 놓고 기도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사이 맹수들에게 나귀와 닭이 죽고 없어졌다. 그는 찢어진 천막을 챙겨서 주위를 살펴보니 자기가 바로 동네 가까이에서 잤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동네에 들어갔더니 온 동네가 야단법석이 났다. 어제 밤에 강도 떼가 이 동네를 쳐들어와 사람들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고 그야 말로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 때 랍비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만약 등불이 켜 있었거나, 닭이나 나귀가 살아서 울었더라면 자기도 틀림없이 강도들에게 죽음을 당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랍비는 이 세가지를 미리 잃어 버렸기 때문에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랍비는 잃어버린 것이 있었지만 잃어 버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얻었기에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여 감사했다.

우리도 때로는 역경에 처하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온 날들이었다고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