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직 어딜 가면 청년소릴 듣는데,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고 외치는 건 다소 부담스럽다. 내가 나를 포함하는 젊은 그룹의 성향을 분석해서 까발려야 하는데 대한 부담이다. 글이 다소 개인적이며 경험적일 수 있겠다. 신학적인 연구의 결과물이 아님을 밝혀둔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외침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그 썰물이 시작되었고, 점차 그 수위가 급격히 하강하고 있음을, 인정하기 싫지만 인지하고는 있을 터이다. 이민교회 한어권 청년부 사역을 한지 만 2년이 훌쩍 넘어간다. 한 때 교회를 떠들썩하게 할만큼 청년들이 북적거릴 때가 있었다.

교회의 웬만한 행사가 있으면 청년부에게 공이 마구마구 굴러왔고, 어쨌든 그것을 감당해 내었고, 인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숫자를 세기에도 민망할 수준으로 급감하였다. 그 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실..... 지난 2년여간 나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청년부 사역자의 잘 나고 못남이 큰 차이를 만들었던 것이 아니란 뜻이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담임목사님이 새로운 사역지로 청빙을 받아 떠나시는 상황일 것이었다. 식당으로 말하자면, 음식의 맛의 결정적 차이를 가져오던 주방장이 떠난 것이다. 그 주방장의 손맛을 그리워하는 고객들은 적잖이 실망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단골이라면 훌쩍 떠나기에는 쉬이 발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식당이 전통과 문화와 정신을 잘 유지하고 있다면, 고객들은 계속해서 지지를 보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음식의 맛과 청결과 영양은 주방에서 좌우되지만, 결국 주방장도 그 식당에 걸맞는 명인이 올 것이기에........

식당의 고객들로서는 음식 맛의 미묘한 차이에는 새롭게 적응할 수도 있고, 또 그것이 새로운 경험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고객들이 식당을 점점 떠나게 되는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다는 것인데...... 사실 그것은 주방의 변화가 큰 이유였다, 우리교회로서는..... 워낙 탁월한 주방장이었기에..... (그 분의 강해설교의 탁월함은 정평이 나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만 문제가 한정되지 않기에 일부러 딴지를 걸고 있는 것이다. 식당의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는 데에 그 문제의 핵심이 있다. 그렇게 되면 밥 맛은 둘째 문제가 되어버린다. 그 식당의 분위기와 문화가 고객을 끌 수 있는가가 쟁점이 된다.

왜냐구? 그 고객이 청년이라면........ 청년들은 더 이상 밥에 목숨을 거는 세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밥은 굶어도 문화를 소비하는 문화세대이기 때문이다. 고난주간에 밥 한두끼 굶는 것은 껌 씹듯이 하면서도, 셀폰, 인터넷, 게임, TV등 미디어 금식을 시키면 환장해 버리는.... 문화에 굶주린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식당은 더 이상 민생고의 해결장소가 아니라, 식탁을 중심으로 하는 생명공동체, 사랑과 나눔의 교제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청년들이 떠나는 이유를, 우리교회에서 청년들이 떠나는 이유에 비추어 살펴본다면..... 말씀을 얼마나 맛깔나게 전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기보다는...... 교회가 교회로서의 바른 정신과 문화를 구현하고 있느냐의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설교자의 부담을 경감시키고자하는 의도가 아니다. 오히려 더 중차대한 임무로 여기며 엄숙하게 소명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교회가 교회답지 못할 때, 그 구성원들이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 그리스도의 뜻이 왜곡되어 나타날 때...... 청년은 교회를 도망치듯이 빠져나간다.

가정에서의 청소년 가출문제와 비슷한 구도일지 모르겠다. 부모가 치고박고 싸운다거나, 냉랭한 기운이 감돈다거나, 지나치게 엄숙하기만 하다던가, 날라리 천국이든가..... 여튼, 부모가 자식과 교감하지 못하고, 자식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존경을 받지 못할 때..... 자식들은 감히..... 집을 나갈 꿈을 꾸게 되는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나 교회 떠났어. 우리 목사님 설교가 영~ 아니야....." 이러면서 떠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라는 것이다. 상처를 받고 교회를 "가출"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인간관계에서의 실패와 실망, 선배세대의 희망없음 때문이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무엇일까? 바로...... 그 아이의 엄마를 정성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다. 부부가 건강하고 굳은 결합을 보여주는 것이 자녀에게 부모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교회에서 청년들이 떠나는 이유는..... 목회자 간의 불신, 목회자와 당회의 불화, 당회와 집사그룹의 소원한 관계, 기신자의 새신자에 대한 무관심, 어른세대의 젊은세대와의 불통이 그 이유이다. 설교의 양념은 부차적인 것이다. 물론 바르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말씀을 준비하는 것이 기본이 된다는 것이 전제된 후의 일이다. 작금의 문제들이란 그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아 생겨진 문제들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양념정도에 지나지 않는 수사학적 기교에 지나치게 집중하려했다면.... 오히려 지금은 본질을 견지하면서, 전제적인 스피릿을 어떻게 유지하고 구가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교회에 실망하고 교회를 떠나고 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기독교에 대한 엄청난 반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너무나 의롭게 살았기 때문에 "성경적으로" 당하는 고난이 아닌..... 말씀대로 바르게 믿고 살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받아야 할" 징계를 불신자들을 통해서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비판하는 것은 쉽다. 신나게 비판하다보면.... 자신이 어느덧 비판받는 자리에 서 있게 된다. 386세대가 정치판에서 고전하는 것. 그 대부격인 노전대통령이 돌을 맞고 서 있는 것. 쉽게 지나칠 일이 아니다. 그들도 어느때엔가 혈기 왕성한 청년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를 비판하는 것, 더구나 한국의 젊은세대를 비판하는 것에서 나는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나에게 돌을 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돌멩이 몇 개 얻어맞고 정신이 번쩍 들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함께 정신이 번쩍 들어 벌떡벌떡 일어나면 좋겠다. 현학적인 말장난, 글장난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는 깊이 있는 신학의 실천이 요구되는 시절이다.

2009년 고난주간 Good Friday 김인집 목사 드림(2009-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