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 자라가고, 나이를 먹고, 많은 일들을 대하고,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 사람들은 추억과 사연들이 생기기도 하며, 때로는 그러한 추억과 사연들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이러한 추억과 사연들은 좋은 것일 수도 있지만 아픈 것일 수도 있고, 기억 하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타인에게 말하고 싶지 않거나, 아픈 추억이거나, 수치스러운 과거사일 경우에 일반적으로 사연이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사연을 표현하기를 산전, 수전, 공중전, 지하전 이라고도 한다. 안 겪은 일 없이 별일을 다 겪었다는 표현들이다. 이러한 사연은 나이가 들 수록, 인생을 살아갈 수록 많아지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나 사연들을 들어 보면 어렸을 때 혹은 풍성한 사랑을 받고 살아야 할 때에 그렇지 못하고 마음고생, 생활고, 육체적 고생, 인간관계의 실패에서 경험하게 되는 고통과 아픔 때문에 생기는 것이 사연들이다.

이러한 사연들은 자라고, 성장하면서 삐뚤어진 자화상을 형성하도록 하며,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됨으로 써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다 주는 존재가 되어 버리기 일쑤다. 사연이 많은 사람들은 생각과 감정이 참으로 독특한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의견 일치가 어려울 뿐 아니라 타인을 의심하고 경계하는 통에 마음의 문을 열기 어렵고 마음을 주고 받기가 참으로 쉽지 않음을 경험하게 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사연 없는 인생이 없다. 나름대로 사연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만이 사연이 있고, 그 시대의 희생양이라는 생각을 갖곤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삐뚤어진 자화상과 상처된 감정에 대하여 후한 점수를 주려고 하며, 모든 책임을 타인과 사회에로 돌리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록 삐뚤어진 자화상이 고쳐지지 않으며, 상처 난 감정은 치유되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되고, 원망과 불만으로 굳어지는 인생이 되어 버리고 말 것 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시험을 지나, 역경을 딛고, 환란을 통과하여 사연을 간증으로 뒤바꾸는 역전의 인생이 바로 우리인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가 구원을 하나님께로 부 터 얻었고, 받았다고 말하면서도 사연을 간증으로, 사연 보다는 간증을 고백할 수 없다는 그것은 문제인 것이다.

사실 사연은 고생한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고, 간증은 고생과 환란과 역경 속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고백하는 것이다. 사연은 고생만 남고, 아픈 추억만이 남겠지만, 간증은 아름다운 열매의 결과들이 남으며, 아름다운 은혜의 추억이 남는 것이다. 또한 사연은 상한 감정과 상처의 아픔만이 남겠지만, 간증은 마음의 회복과 심령의 치유가 있었기에 감사와 기쁨이 남는 것이다. 더욱이 사연은 인생을 후퇴하도록 만드는 인생의 튼 장애물 역할을 감당했으나, 간증은 풍랑으로 인해 배가 더 빨리 가듯이 천성을 향해 가는 나그네의 길에 오히려 성장과 성숙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임을 감사하게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려움과 환란과 역경으로 인하여 사연을 만들어가는 어리석은 자가 되기 보다는 주 앞에 간증을 만들어 내는 멎진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