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아내가 소돔과 고모라, 롯의 타락, 수치스러운 죄 등에 관하여 설교하고 있는 창세기 강해설교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설교에 대해서는 저를 존중하기에 워낙 이야기를 하지 않는 아내인데 읽기조차 민망한 구절들, 또한 그것에 대해 설교하는 저를 보면서 참 부담(?)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목사인 저로서도 그런 본문들은 뛰어넘어가고 싶은 유혹들이 많습니다. 늘 설교할때마다 지치고 힘든 이민 생활 속에서 우리 성도들에게 힘을 불어 넣는 그런 말씀을 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내에게 대답하였습니다. “여보, 그 본문을 전하는 나는 어떻겠소! 하지만 내 좋아하는 것만 전한다면 정말 내가 하나님이 원하는 목회자일까!”

금주에도 어떤 목사님이 저에게 자신의 교회에 와서 설교를 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분에게 조심스럽게 사양을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를 놓아두고 다른 데에 가서 설교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도 있습니다만 또한 어느 교회를 가든지 그 주에 전한 말씀을 똑같이 전하는 설교 스타일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위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는 과거의 설교(?)를 골라서 전할 수도 있는데 저에게는 이것이 잘 안됩니다. 잘했건 못했건 우리 성도들을 뜨겁게 사랑하며 준비하고 전한 말씀이 좋은 설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 전하는 이 설교는 지난주 우리 예원교회에 설교한 내용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전한 말씀이 여러분들에게도 그대로 살아서 전달되길 바랍니다”라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과거 설교를 잘한다는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쭉 듣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처음에는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수년 듣다 보니까 주제가 반복되면서 비전, 꿈, 성공, 도전 등 같은 단어들로 이루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죄, 회개, 말세, 돈 등 성도들이 부담스러워 하는 것에 대하여 설교를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런 것들이 설교자에게 큰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설교자가 좋아하는 주제와 성경본문을 택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제설교도 좋아하지만 성경본문이 주어진 강해 설교를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 설교자의 관심 여부에 상관없이 그 주에 주시는 본문을 통하여 다양한 주제를 골고루 다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늘 설교를 준비하면서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며 강단에 섭니다. “하나님, 주님이 꼭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할 수 있도록 제 입을 사용해 주십시오” 설교가 설교자의 취향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어렵지만 그래도 설교에서 하나님의 말씀만이 온전히 들려지길 소원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본문보다는 하나님이 들려주시고 싶은 말씀을 통하여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스피커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