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우리의 인생에서 칭찬 어록을 기록한다면 얼마나 많은 페이지를 장식할까? 엉뚱한 질문 같지만 수없이 만나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칭찬의 말을 들은 적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다. 물론 부족하고 어줍어 칭찬을 남들에 비해서 별로 많이 들어 보지 못했지만, 혹시 우리 문화가 칭찬에 인색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오히려 칭찬해 주면 교만해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배려 덕에 칭찬을 듣기가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칭찬에 인색하다는 공감이 들 만큼 칭찬에 참 인색했다는 문화적 정서는 살아온 삶의 흔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엄숙하고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살아온 삶의 무게만큼 칭찬하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만큼 깨어져야 하고 열려야 갰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무튼 좋게 말하면, 칭찬의 문화에 익숙해 있기 보단 수치심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깨우치고 반듯하게 세워 보려는 노력이 앞섰던 것 같다.

글쎄, 미국에 와서 느껴보는 것은 칭찬과 추켜세움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정서에 부러웠던 적이 있다. 물론 미국 사람들에겐 어색함을 피하려는 분위기에서 유모어를 잘 사용하는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다. 아울러 얼어붙은 분위기를 깨기 위한 아이스 블레이크(Ice Break)을 위해 사용하는 유모어는 어디서든 쉽게 발견하는 멘트 이기도 하다. 설교의 첫 마디에서, 연설의 첫 마디에서 이런 멘트는 쉽게 들어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유모의 능력과 연설, 또는 설교는 대중의 공감을 얻는데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칭찬과 유모어를 자주 사용할 줄 아는 유연성이 부럽기도 했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한국 사람에게도 유모어가 많아지고, 유연성이 많아 진 것 같다. 그만큼 열린사회가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경직된 분위기나 유연성에 있어선 많은 제고가 요구 될 것 같다. 과거가 그렇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관공서 분위기에서 나 볼 수 있는 경직된 정서의 뿌리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아울러 학창 시절을 지나면서 칭찬의 소리를 듣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든다. 매타작, 영화 ‘친구’에서 그렇게 표현했듯이 선생님들의 손찌검을 어렵지 않게 보아 왔던 터라, 군대 제대하기 직전 25세 초반 까지 매를 맞아야 했던 보통 한국 남자들이 갖는 굳어진 정서에서 남을 칭찬하기가 간단한 것 같지 않은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굳어진 자아를 깨고 유연한 자아가 되어서 남을 높이고, 또한 자기 자신의 가치를 발견함이 귀하리라 여겨본다.

가만히 보면,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 하나 다르게 창조하신 이유가 계신데, 지도자의 정치이념에 따른 집산주의 화된 교육제도라는 시스템이 사람들의 유연성을 많이도 무기력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여기게 된다. 답을 요구하는 학교의 분위기와 더불어 성공의 지름길이라 할 수 있는 좋은 대학가기의 경쟁을 통과해야 하고, 정글의 법칙 아래 누군가를 탈락시켜야 내가 산다는 생존 본능, 역시 유연함을 많이도 죽이는 주범들인 셈이다. 그래서 칭찬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어줍은 말이지만, 칭찬하게 되면 자존심이 상하는 것처럼 도식화 되어버린 정서를 깨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자기표현에 자유한 사람이 되는 것 남과 나를 위해 중요하리라 여겨본다.

사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을 구원하시고, 자유란 선물을 주셨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적용해 보면, 잘못된 세상 문화 안에 갇힌 구속된 인간의 정서를 해방하기 위해서 오셨음이 틀림없다. 인간 영혼의 고상함, 존재의 가치, 하나님이 주신 개성과 달란트의 활용과 창의적 사고와 삶으로 유연함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의 삶은 그 시대에 파격적 행보를 이어 가셨다. 유대주의나 율법의 요구, 또는 헬라주의의 무분별함에 묶이지 않으신 자유함을 스스로 보이셨다. 그렇지만 주님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셨다. 그러면서도 자유하셨다. 스스로 그렇게 말씀하셨듯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요구는 사람들에게 자유라는 유연함을 주시길 원하셨다. 그럼에도 인간의 문화나 제도는 인간을 구속하는 창조 질서에 어긋난 행보를 잘도 해왔다. 그래서 칭찬이 어렵고, 어려웠던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글쎄, 성도가 사람들에게 복음의 능력과 우월함을 보여주는 열매가 무엇일까? 그것은 복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유연함, 창의적 사고, 그리곤 칭찬하는 여유가 아닐까 기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