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엘리트가 아니라 지도자가 필요한 시대다. 사회 안정도가 낮을 경우 전쟁이나 쿠데타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난 후 세상은 지도자가 아니라 엘리트에 의해 움직이기 쉽다.

겪변의 세월을 많이 보냈던 한국 사회도 관직은 일류대학 출신 엘리트가, 경제는 재벌 엘리트가, 정치는 군부나 가문 좋은 엘리트가 일방적으로 지배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이나 자녀가 엘리트가 되기 원하고 남보다 좋은 환경이나 배경을 가지려고 애쓴다.

물론 엘리트 집단 중요성과 역할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엘리트는 탁월한 전문성을 가지고 많은 대중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차별화된 사람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다 잘되는 것은 아니다. 엘리트 집단 때문에 많은 위기를 극복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부작용도 수반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엘리트 의식은 자기 출신을 선호한다. 서울대학 출신은 서울대학 출신을 선호하고, 경상도나 전라도, 충청도 출신은 각각 그들 지역 출신을 선호 한다. 그래서 개인적 엘리트는 집단적인 엘리트로 변하고 그 집단적인 엘리트는 서로 이익을 보호하고 상호 보완 하므로 자신 위치를 확고하게 하는 파워 엘리트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서로 간의 갈등과 반목은 해결되기는 커녕 골이 깊어지기 마련이다.

엘리트 집단은 그 속성상 섬김이나 희생이나 헌신 개념이 존재 하지 않거나 약할수 밖에 없다. 공의를 말하면서도 남을 위한 자기 책임은 회피하고, 변화를 부르짖으면서 실상은 높은 정상 자리를 찾는데 마음이 가 있다.

그러나 지도자는 그렇지 않다. 진정한 지도자는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다.

지도자는 사람 위에 서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며, 모든 것을 가지려는 사람이 아니라 베푸는 사람이다. 또한 뒤에서 조종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앞장서 본이 되는 사람이고 분명한 사명감으로 일하기 때문에 쉽게 상처받거나 시험에 들지 않는 사람이다. 또한 지도자는 지치거나 좌절하지 않으며 과거 일에 연연해하지 않으며 내일의 거룩한 꿈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마침내 그 꿈을 이뤄내는 사람이다.

두 세 사람이 모이는 곳에도 이러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가정에서도 필요하고, 사업에도 필요하고, 이 사회에도 필요하다. 특별히 교회에서 이러한 지도자가 더욱 필요하다.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변화일수록 선한 사람이 모든 힘을 모아 일어서야 한다. 이제 교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있는 그 자리에서 부름 받은 지도자라는 확신을 가지고 작은 일로부터 행동하는 믿음이 돼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