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은 비폭력 무저항운동을 통해 인류화합을 도모했던 흑인 인권운동가이자 사상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1929-1968)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마틴 루터 킹은 1954년 앨라바마주(州) 몽고메리의 침례교회 목사로 취임한 후 1955년 12월, 시내버스의 흑인 차별대우에 반대해 5만 흑인 시민이 벌인,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투쟁을 이끌어 1년 후인 1956년 12월에 승리를 거뒀다.

그후 킹 목사는 흑인지도자로써 두각을 나타내면서 남부 그리스도교도 지도회의(SCLC : Southern Christian Leadership Conference)를 결성, 1968년 4월 테네시주 멤피스시에서 흑인 청소부 파업을 지원하다가 암살당하기까지(1968.4.4), 비폭력주의에 입각해 흑인이 백인과 동등한 시민권을 얻기 위한 ‘공민권 운동’(1963년 워싱턴 대행진 등) 지도자로 활약했다. 1964년에는 이런 공로가 인정돼 35세 최연소 나이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일찍이 간디 사상에 영향을 받았던 킹 목사는 “폭력을 사용해선 안 된다. 원수를 사랑하고 어떤 고난과 차별을 당해도 사랑해야한다. 그들의 죄를 용서하자” 라는 비폭력 무저항주의 사상을 호소해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부각됐다. 그 후 인종화합을 위한 인권운동으로 30여 차례나 체포됐지만 비폭력 무저항운동에 대한 신념을 꺽지 못했다.

한편, 그는 60년대 월남전 반대 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당시 미국의 지도층은 정치적 생명 때문에 반전 운동에 몸을 사렸지만 킹 목사는 ‘불필요한 젊은이 희생을 줄여야 한다’라며 월남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킹 목사의 평등과 사랑을 위한 외침은 이후 유색인종 차별의 벽을 무너뜨린 계기를 만들었고, 흑인 인권운동의 여파로 동양인 인종차별법도 철폐되는 결과를 가져와 해외 이민사의 새로운 길을 여는데 공헌 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미국의 국부(國父)라 불리는 조지 워싱턴을 제외하고 탄생일을 공휴일로 지정된 인물은 마틴 루터킹이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