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렬 교수
이장렬 교수와 함께 하는 사순절 묵상
이장렬 교수는 서울대학교(B.M.)를 졸업하고 서든침례신학대학원(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M. Div.를, 영국 에딘버러대학교(University of Edinburgh) 신약학 박사학위(Ph.D.)를 취득했다. 2010년부터 캔자스시티에 소재한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미드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Mid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약학 교수로 다양한 과목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Ph.D. 논문을 지도하고 있다. <Christological Rereading of the Shema in Mark's Gospel>, <바디매오 이야기> 등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억울하게 매도 당할 때

 

오늘의 본문: 누가복음 23:1-5


1.      온 무리가 모두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 (저자 주① ) 에게 끌고 갔습니다.
2.      그리고 예수에 대한 고소가 시작됐습니다. "이 사람이 우리 민족을 어지럽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가이사께 세금을 바치는 것을 반대하며 자칭 그리스도 곧 왕 (저자 주②) 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3.      그러자 빌라도가 예수께 물었습니다. "네가 유대 사람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말하고 있다."
4.      그러자 빌라도는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겠다."
5.      그러나 그들은 주장했습니다. "저 사람이 갈릴리에서 시작해 여기 예루살렘까지 유대 온 땅에서 가르치며 백성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저자 해설 및 묵상>

 

예수님을 제외한 모든 인간은 죄를 짓습니다. 예수를 믿는 이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영광스러운 성화의 과정(예수님을 닮아가는 훈련, 변화의 과정)을 밟고 있으나 그 가운데 예수 믿기 전의 모습의 잔재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그 모습이 너무 진하게 나타나곤 합니다. 그 가운데 여전히 죄를 짓고 실수하며, 남에게 상처를 주고, 해선 안 될 일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저자 주③)   

그런데 우리가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욕을 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하지도 않은 일로 인해 비난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정말 억울하고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릅니다. 자다가도 잠이 깨고, 일하다가도 갑자기 화가 역류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일을 겪는 유일한 인간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일을 당하셨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오도한 일이 없으셨고, 황제에게 내는 세금을 반대한 일(로마 정부의 관점에서 볼 때, 황제에 대한 반역으로 여겨질 일)도 없으셨습니다(20:22-25 참조).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요 유대인의 왕이심을 인정하셨지만(22:67; 23:3), 민족주의적이고 정치적인 뜻에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의도적으로 예수님의 주장을 왜곡하고 그를 모함했습니다. 이방인이었던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의 결백을 금새 간파합니다. 예수님이 로마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무장 혁명을 주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예수님의 사역이 정치적인 것이 아님을 간파했습니다(3-4절, 14절, 20절, 22절; 요18:28-38 참조). 유대 문화와 사상에 그리 친숙하지 않았던 빌라도가 그렇게 금새 알아차린 것을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몰랐을 리 만무합니다.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가 빨리 간파한 것을 그들 종교지도자들이 알아채지 못했을 리 없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에 대한 종교 지도자들의 고소는 오해에 기반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의도적 왜곡에 의한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백성을 오도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실은 예수님이 아니라 성전 지도자들이 동료 유대인들을 오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 거짓말까지 마구 일삼았습니다(23:1-2, 5, 10 참조). 그리고 예수님은 이들의 모함과 선동으로 십자가형을 구형 받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은 로마인의 관점으로 보면 극악하고 위험한 정치범으로 분류되어 가장 잔인하고 혹독한 방식으로 처형된다는 뜻입니다.

유대인의 관점에서 십자가형은 -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는 신명기 21장 말씀대로 - 여호와 하나님께 저주받았다는 뜻입니다(신 21:21-23; 갈3:13 참조).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셨지만, 종교지도자들의 거짓 비난으로 인해 참혹하고 저주스러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게 됩니다.

예수님의 예언하신대로 후에 돌이켜 회개하고 성도들을 굳세게 하는 일에 쓰임 받는 사도 베드로(눅22:32)는 이 일을 다음과 같이 회상합니다.:

21. 여러분은 이것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여러분에게 본을 남겨 주심으로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셨습니다.
22. 그분은 죄를 지으신 일도 없고 그 입에는 거짓이 없었으며
23. 그분은 모욕을 당하셨으나 모욕으로 갚지 않으셨고 고난을 당하셨으나 위협하지 않으셨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에게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24. 그분이 친히 나무에 달려 자기 몸으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으니 이는 우리가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여러분이 나음을 얻었습니다(벧전2:21-24).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하시지도 않은 일에 대해 거짓된 비난을 받고 십자가에 처형당하시면서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하나님 아버지)에게 자신을 부탁"하셨다고 기록합니다(23절). 우리 삶에서 정당한 법적 절차를 밟는 일이 의미 없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필요한 법적 해명을 정직하게 제시하는 일이 의미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항상 완전한 정의를 가져다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가끔이라도 뉴스를 보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는 사람이라면, 필자의 말에 쉽게 동의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사법체제가 부패하고 타락한 양상을 드러낼 때에도 그리고 우리의 정당한 해명이 묵살될 때에도 완전히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결국 모든 일을, 그리고 모든 개인과 공동체를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좌절 너머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와 예수 그리스도의 공의가 완전히 이뤄지는 그 날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억울하게 비난 받을 때, 우리 사정을 다 헤아리시고 체휼하시는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히4:14-16, 5:7-8 참조).

근거 없는 비난과 억울한 매도로 인해 마음이 힘들고 괴롭다면, 그 일을 우리 앞서 경험하신 예수님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부활을 통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신원(vindicate)해 주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삶 가운데 특별히 우리가 억울하게 비난하고 모함 받을 때, 이 일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한 줄 기도>

억울한 비난 가운데도 예수님처럼 인내케 하시고, 주님이 베푸실 공의를 바라보게 하소서.

편집자 주) 본 묵상 내용은 이장렬,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에 대한 40일간의 묵상』(요단출판사, 2019)에서 발췌하여 개정했습니다. 해당 내용은 요단출판사와 저자의 동의를 얻어 사용합니다. 이 책에 대한 추가 정보는 다음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mall.godpeople.com/?G=9788935017379  

 

(저자 주① ) 빌라도는 로마 황제로부터 파견 받아 사마리아 및 유대의 총독으로 AD 26-36에 걸쳐 활동했다. 그는 주로 가이사랴에 머물렀으나 유대인들의 명절에는 예루살렘에 와 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로마 제국의 입장에서 보면, 유대 땅은 통치하기에 가장 골치 아픈 지역 중 하나였다. 유대인의 공회(산헤드린)는 일반적으로 사형을 언도, 집행할 권한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끌고 간 것이다.
(저자 주②) "그리스도 곧 왕"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메시아)"와 "왕"을 동일하고 있는데, 이러한 이해는 1세기 당시 많은 유대인이 갖고 있었던 다윗적 메시아(Davidic Messiah)관을 반영해 준다. 이들은 다윗 가문의 메시아-왕이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물론 눅23:2에서 예수님을 고소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비방하고 또 그를 정치범으로 몰아가는 맥락에서 이 표현("그리스도 곧 왕")을 오용한다.  
(저자 주③)    물론 그렇다고 그것을 당연히 여기면서 살아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예를 들어, 로마서 12:1-2, 엡4-6장을 보라.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 뜻대로 사는 일에 헌신해야 함을 이런 구절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그와 같은 구절들은 신, 구약성경 전체를 관통한다. 

 

이장렬 교수와 함께 하는 <사순절 묵상 ①>
이장렬 교수와 함께 하는 <사순절 묵상 ② >
이장렬 교수와 함께 하는 <사순절 묵상 ③>
이장렬 교수와 함께 하는 <사순절 묵상 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