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의 기도- 박목월

당신의
목에 거신
십자가 목걸이의 무게를

오늘은
제 영혼의 흰 목덜미에
느끼게 하옵소서

박목월 시인
박목월 시인

이 시는 박목월의 시입니다. 박목월(본명 박영종)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왔던 <나그네>라는 시를 쓴 청록파 시인입니다. 목월은 아버지 박준필과 어머니 박인재 사이에서 2남2녀 중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당시 경주군 수리조합(지금의 토지개량조합) 이사였고 대구로 나가 중학교를 졸업한 당시로서는 신지식이었고 지방유지였습니다. 어머니는 목월이 보통학교 4학년 되던 해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기독교 초창기에 복음을 받아들인 어머니의 신앙은 박목월의 인생과 시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형기 선생은 자신이 편저한 <박목월>에서 박목월의 어머니의 대단한 신앙을 칭찬합니다. 아울러 며느리 신앙생활을 보장해 준 목월의 할아버지 박훈식의 관대함과 진취적인 마음 자세도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때까지 박씨네 집안에서 예수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며느리와 손자들의 신앙생활을 보장해 준 것입니다. 박목월의 할아버지도 어머니도 선각자였습니다. 이런 가풍에서 박목월은 성장했습니다.

   어머니는 걸어서 다니기에 좀 멀리 떨어진 교회를 잘 섬기기 위해서 교회 옆에 집을 지어 이사한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녀는 그만큼 뜨거운 신앙인었습니다. 어머니는 성경을 통해 한글을 깨우쳤고 신앙으로 자녀교육을 했습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그의 집엔 원근 각지에서 모여든 수십 명의 성도로 북적댔다고 합니다. 집이 멀어서 교회에 나오기 힘든 성도들이 그 집에서 하룻밤을 유숙하고 다음 날 주일예배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박목월은 어머니의 신앙생활을 존경했습니다. 박목월은 어머니의 신앙을 추모하는 여러 편의 시를 남겼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신앙을 심어준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효심이 가득 담겨 있는 시를 남겼습니다. 실제로 어머니는 아들의 신앙을 위해 박목월을 대구 기독교 학교인 계성학교에 유학을 보냈고,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신 어머니였습니다. 박목월은 그런 어머니 목에 걸린 십자가를 묵상하며 시를 썼습니다. “당신의 목에 거신 십자가 목걸이의 무게를 오늘은 제 영혼의 흰 목덜미에 느끼게 하옵소서.”

   이 시는 ≪어머니≫(1967년, 삼중당 펴냄)란 시와 에세이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어머니에의 기도>란 제목의 연작시 여덟 편 중 세 번째 시입니다. 아주 짧은 구성으로 하나님 앞에 어머니의 신앙을 유산으로 이어받기 위한 기도시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기도가 어머님께 드리는 기도인지, 하나님께 드린 기도인지 살짝 헷갈립니다. 여하간 박목월은 어머니의 신앙을 이어받는 것이 어머니가 지고 가신 십자가를 이어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빌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목에 거신 십자가 목걸이는 어머니 신앙을 대표합니다. 어머니가 감당하신 신앙의 무게를 십자가로 표현합니다. 어머니 목에 걸린 십자가는 작고 가볍지만, 그 안에 담긴 헌신과 희생을 느끼는 어머니는 십자가의 무게가 느끼셨습니다. 어머니의 신앙은 십자가의 무게를 느끼는 신앙이었습니다.

   십자가의 무게를 느끼는 어머니의 신앙을 흠모하며 시인은 그 십자가의 무게를 느끼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시인은 십자가를 시어로 활용하면서 신앙의 상징을 넘어 신앙이 전해지는 통로로 간주합니다. 시인에게 어머니의 십자가 목걸이는 장식품이 아니었습니다. 시인은 어머니 목에 걸려 있는 십자가에 걸맞은 삶을 위해 몸부림치시는 어머니의 삶의 무게를 보았던 것입니다.

   신앙이 깊을수록 사명감이 더해지듯이 신앙이 깊을수록 느끼는 십자가의 무게도 더해집니다. 십자가를 목에 걸면 엄숙하고 진지해지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십자가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신 어머님의 신앙을 느낀듯합니다. 시인은 십자가를 존중하며 십자가를 귀하게 여기는 어머니의 신앙을 흠모했습니다. 이제는 시인이 그 십자가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바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고대 앗수르, 바벨론, 헬라 그리고 로마 시대의 무서운 사형틀입니다. 악독한 적장의 사형을 집행할 때 사용한 형구였고, 사회적인 큰 죄를 범한 죄인들을 사형시키는 사형틀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인류의 죄를 보속하심으로 십자가는 우리 구원의 상징이요 우리를 위한 주님 희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소망과 영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영혼의 흰 목덜미”란 시구는 깨끗하지만 아직은 비어 있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흰 목덜미’란 깨끗한 이미지로 십자가 목걸이의 무게로 상징된 어머니의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아직은 어머니와 같은 신앙의 야성이 없는 흰 목덜미입니다. 어머니의 목에 대한 열등감과 어머니 목을 향한 존경심이 담긴 표현입니다.

   예수님 십자가를 묵상하며 이 시를 다시 읽습니다. 십자가 무게를 느끼기를 원하는 시인의 마음에 공감합니다. 사순절이나 고난 주간에 “십자가의 무게를 느끼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의 십자가 무게를 느끼고 그 십자가에 합당한 삶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의 무게를 느끼고 어머니가 감당하신 신앙의 무게를 느끼는 영성을 허락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 대표, 시인 수필가)
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 대표, 시인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