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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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성경의 글들을 제외하면 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문서가 <클레멘트 제1 서신>이다. 저자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이 문서는 로마의 클레멘트가 이 편지를 고린도 교회를 위해 썼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그러나 좀 더 세밀하게 살피면 로마 교회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다. 로마 교회가 고린도 교회에 보낸 익명의 서신인데 당시 고린도 교회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교훈과 책망이 담겨 있다.

<클레멘트 제1 서신>은 고대 교회가 아주 귀하게 여긴 자료다. 시리아와 이집트 교회에서는 한동안 성경의 일부분으로 인정을 받았다. 오래된 교회 전통에 의하면 로마의 세 번째 감독이었던 클레멘트가 기록했던 문서라는 것이다. 학자들은 <클레멘트 제1 서신>이 주후 96년 혹은 97년에 기록된 문서로 보는데 큰 이견(異見)이 없다.

<클레멘트 제1 서신>은 초기 기독교 교회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담고 있다. 이 서신은 초대교회의 문제, 초대교회의 구조, 그리고 초대교회의 체제를 보여준다. 나아가 이 서신은 구약에 대한 초대교회의 이해, 신약에 대한 초대교회의 이해를 유추하게 하는 자료다. 아울러 이 서신은 초대교회 지도자의 범 교회적 리더쉽과 교회간의 관계를 보여준다.

속 사도 교부들은 문서와 자료를 통해 교회 간의 끈끈한 유대와 교회 지도자의 범교회적 지도력을 보여준다.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서머나의 폴리갑, 고린도의 디오니시우스 등은 자신들의 삶과 기록을 통해서 초대교회에서 범 교회적 리더쉽이 행사되었음을 보여준다. 범교회적 리더쉽이란 특정한 교회 지도자가 다른 교회 회중에게 권고와 훈계로 리더쉽을 보여준다.

이런 범 교회적 리더쉽이 행사된 대표적인 경우는 사도바울이었다. 그는 바울 서신을 통하여 자신이 세웠던 교회들이나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교회들에 영적 리더쉽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수형자가 되어 로마로 압송되던 이그나티우스가 6개 교회에 보낸 서신들은 사도바울을 닮은 모습이다. 이그나티우스는 각 교회 성도들에게 세세한 훈계와 조언을 보냈다.

범 교회적 지도력은 특정한 교회(모 교회)가 이웃 교회를 향한 지도력을 행사하는 것도 포함한다. 폴리갑이나 이그나티우스 같은 지도력을 가진 감독이 있는 교회가 이웃 교회들을 지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클레멘트 제1 서신>은 로마 교회가 고린도 교회 내부 문제를 간섭하고 개입하는 것을 자신들의 의무라고 간주하고 있다(63장).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교회 대표들을 파견하였다(65장).

이런 현상은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보편 교회(Catholic Church)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각 지역 교회는 독립적이고 자치권이 있는 단일체로 이해하지 않았다. 교회들은 보편적인 교회의 부분으로 간주했다. 그들은 다른 교회 회중에 발생하는 문제들에 무관심하지 않았고, 아울러 자신의 교회 문제에 대한 이웃 교회 지도자나 이웃 교회의 간섭을 수용했었다.

<클레멘트 제 1서신>의 저자는 불확실하다. 이 서신이 로마 교회의 이름으로 쓰였으며 클레멘트의 이름은 없다. 그러나 교회는 처음부터 이 서신의 저자가 클레멘트라고 인정했다. 주후 170년에 고린도의 디오니시우스가 공식적으로 이 서신을 가리켜 클레멘트를 통해서 우리(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전해진 서신이요, 매주 주일마다 공적으로 낭독되었다고 밝힌다.

그러면 누가 이 클레멘트일까? 당시 클레멘트는 흔한 이름이었다. 초대교회에 클레멘트가 몇 사람 등장한다. 그리고 초대교회는 클레멘트가 누구인가를 설명을 시도했다. 먼저 오리겐이나 유세비우스는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언급한 클레멘트라고 보았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 지도자가 로마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논리는 근거가 없다. 은혜로운 추측으로 보는 것이 옳다.

둘째는 로마 정부의 유력한 집안에서 해방된 노예로 보는 경우다. 라이트푸트는 티투스 플라비우스 클레멘트(Titus Flavius Clement)로마 집정관 가문의 해방된 노예가 <클레멘트 제1서신> 기록자라고 주장한다. 로마 집정관 티투스 플라비우스 클레멘트는 디온 카시우스 황제에 의해 무신론자(황제 숭배 거부자)로 처형당했는데, 그가 기독교 신앙 때문에 처형당한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그의 아내가 독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서론과 65장 502절로 구성된 이 서신은 비교적 긴 서신이다. 이 서신은 고린도 교회에서 발생한 분열이 계기가 되었다. 1장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불화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문제는 과거 바울 시대에 고린도 고린도 교회를 흔들었던 당파의 싹이 되살아 난 상황이었다. 3장에서 고린도 교회의 갈등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이 갈등은 고린도 교회 몇몇 젊은이들이 연장자들에게 대항했던 분쟁이다. 이런 갈등을 일으킨 것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저버린 일이었고, 신앙에 대한 우둔함과 하나님의 가르침에 대한 경솔함을 나타낸 것’으로 3장에서 설명한다.

이 서신이 기록된 시기를 알아볼 수 있는 단서들이 있다. 본 서신 5장과 6장에 네로 황제의 박해가 언급되고 사도들이 장로로 임명한 인물들이 생존해 있는 그런 시대(44장)에 기록되었다. 그런데 이 시대의 교회는 또 다른 재난이 있었다고 언급한다. 이 재난은 무도하고 변덕스러운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황제의 박해로 보는 것이 옳다.

이 서신의 저자는 구약에 정통했고 바울 서신도 충분히 이해했다. 빈번한 구약 인용(70인역)과 구약 인물의 행동에서 기독교적 신앙의 교훈을 찾는다. 구약의 영웅들은 9장에서 에녹과 아브라함의 순종, 12장에서 기생 라합의 믿음과 환대, 18장에서 다윗의 충성과 순종을 언급하며 바른 신앙을 가질 것을 계속 촉구한다.

본 서신의 저자는 복음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무지한 것으로 보인다. 아주 기본적인 말씀만 인용하고 있다. 반면에 본 서신은 바울 서신을 자주 언급한다. 바울 서신중에서도 고린도 전서를 자주 언급하면서 과거 고린도 교회의 갈등을 반추하면서 현재 교회 갈등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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