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종기 목사
(Photo : )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목사)

I. 목민신학의 외연 국제정치

   김진홍 목사의 비전과 리더십으로 시작된 두레 운동은 많은 목회자와 성도의 참여를 통하여 두레마을, 두레 공동체, 두레 목회, 두레 선교, 두레 장학회, 두레 출판 운동과 두레 수도원 운동 등으로 오랫동안 그 운동의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더구나 이 운동은 성서 한국, 통일 한국, 선교 한국의 비전과 함께 개교회주의를 넘어서는 보다 큰 공적 신앙의 담론을 제시하였다. 특히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에서 제시한 “목민”(牧民)이라는 개념의 신학적 성찰은 “목민신학”이라는 비판 신학 혹은 대안 신학으로서 신앙과 신학의 사사화(私事化)를 극복하는 관점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다산의 목민심서가 남긴 저술의 깊이와 방대한 지평, 국내외의 기록을 통한 목민관의 사례 제시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갈등 및 전쟁과 평화에 대한 언급의 부족은 목민의 범위를 “심서”(心書)의 개인적 지평이나 국정의 내치(內治) 부분으로 한정시키는 인상을 준다. 따라서 목민신학이 치우칠 수 있는 구조-기능주의적 접근, 혹은 윤리적 접근을 극복하고, “갈등-해소”(conflict-consensus)의 역동성을 불러일으키는 갈등론적 접근방법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성경의 선지서를 참고할 때, 우리는 목민신학의 역동성을 개척할 수 있는 보다 큰 가능성을 얻는다. 그 이유는 선지자들의 “목민” 개념은 국내 문제뿐 아니라, 국제질서 속에서 국제관계에 대한 조언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민신학의 국제적 외연(外延)은 제사장 나라의 율법 법전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선지서의 통찰력을 통하여 충분히 확보될 수 있다. “목민신학”은 선교 한국의 견지에서 보면, 지구적 관점(global perspective)을 가지고 있다. 열방의 하나님이란 관점에서 조망하면, “목민”의 대상을 국제관계와 세계 속으로 확장하게 된다. 선지자들 역시 국내정치와 함께 국제정치를 자신의 관심사에서 제외하지 않았다. 아모스의 주변 열국에 대한 언급,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국제정치에 대한 언급과 하박국의 바벨론 제국주의에 대한 저주, 그리고 다니엘, 요나, 요엘, 오바댜 등의 관심과 선포는 이미 국내정치적 관심사를 넘어서고 있다. 따라서 성경의 관점을 따른다면, 목민신학의 외연으로 국제정치를 제외할 수 없다는 것이 이 글의 반복적인 주장이다. 더구나 이사야서는 국제정치를 빼놓고는 거론할 수 없는 책이다. 이사야는 앗시리아(사 1-39장), 바벨론(40-55장)과 페르시아(56-66장)라는 제국을 배경으로 해서 주어진 계시로서 하나님 나라인 유다왕국의 대응을 기대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한다. 우리는 여기서 목민신학의 국제정치적 외연 확장을 위한 잔도(棧道)를 놓아보도록 하자.

II. 앗시리아 제국과 이사야의 조언[1]: 아하스 시대의 국제관계.

   하나님은 영원토록 다스리신다.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셔서 열방을 통치하시고 자신의 기름 부은 종들을 통하여 다스리신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출애굽 시대의 선지자 정치, 여호수아 시대의 군인정치, 사사시대의 정치, 왕정에 이르기까지 그 통치의 양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신정정치(神政, theocracy)를 포기하신 적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을 숭배하던 아하스왕을 향하여, 하나님 통치의 뜻과 경륜을 전하는 것은 유대왕국과 언약 관계에 있던 하나님 여호와께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웃시야로부터,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의 시대를 걸쳐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하던 왕족 출신의 이사야에게 국제정치적 자문과 하나님의 뜻의 전달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 아하스 왕이 마주한 국제관계의 소용돌이.

   앗시리아 제국에 대한 하나님의 신정적 통치의 증거는 요나와 나훔을 빼놓을 수 없다. 요나서와 나훔서 전체는 앗시리아의 수도인 니느웨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제국으로서의 영광과 권세를 자랑하는 수도 니느웨를 향해 두 선지서는 공통적으로 멸망의 경고를 보낸다. 선지자 요나의 임박한 심판에 대한 계시로 니느웨 도성 전체가 철저히 회개하며 생존에 이르게 된다. 요나서에 의하면 앗시리아 제국은 하나님의 명령을 청종하여, 왕으로부터 짐승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금식과 회개에 이르렀고, 하나님의 자비는 국가의 운명을 이어가는 결과를 낳는다. 나훔은 한 세기 이후에 심판이 확정된 니느웨의 파멸을 처절하게 묘사한다. 하나님은 앗시리아라는 당시 중근동 최초의 패권 세력에 대한 자신의 다스림과 권세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신다. 앗시리아는 열국의 패자일지라도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존재하는 나라라는 것이 선지자 요나와 나훔의 가르침이다.

   이사야 6장에서 선지자 이사야에게 계시된 하나님은 “높은 보좌 위에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대왕국의 정치 지도자를 청취자로 삼고, 앗시리아의 패권에 대한 대응 방법을 조언하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가 국내정치에만 머무르지 않는 것은, 구약 교회의 생존이 하나님의 국제정치적 통치와 섭리에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교회를 위하여 열방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은 교회의 통치권과 함께 우주적 통치권을 가진다. 북조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멸망한 후, 남은 구약의 교회인 유대왕국의 안녕은 당시의 패권 국가인 앗시리아와 직결되어있다. 당시의 “팍스 앗시리아카”(Pax Assyriaca) , 즉 앗시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평화 체제를 추구하는 국제환경 속에서, 이사야는 유대 왕 아하스를 위하여 국제정치적 조언을 하고 있다. 당시 유대의 아하스왕은 앗시리아 제국과 이에 반대하는 주변 국가의 저항 가운데 둘러싸여 있었다. 유다를 중심으로 남쪽에는 이집트, 북쪽에는 아람과 이스라엘이 있었고 수많은 도시 국가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앗시리아를 능가하기는 어려웠다.

   웃시야의 손자이며 요담의 아들인 아하스(BC 732-716년) 는 20세에 유다의 12대 왕으로 즉위하여 예루살렘에서 16년 동안을 다스렸다. 아하스는 치세의 후반기인 기원전 722년에 앗시리아의 살만에셀 5세에 의하여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을 보았다. 아하스는 국내외적으로 친애굽파, 친앗시리아파, 반앗시리아파 등으로 갈라져 갈등하는 가운데서 친 앗시리아 정책을 택하였다. 반 앗시리아파 세력인 북조 이스라엘과 아람은 유다의 아하스를 자신들의 진영에 포함시키지 못하자, 곧 예루살렘을 공격하였다. 아하스왕은 이스라엘에 의하여 유다의 정병 12만 명이 죽고 20만이 포로로 끌려가는 수치를 당하였다(대하 28장). 포로로 잡혀간 사람은 선지자 오뎃의 예언을 통하여 다시 돌아왔지만, 아하스는 아람왕 르신과 블레셋, 에돔에 의해 막대한 타격을 다시 입었고, 그들도 유다를 공략하여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갔다. 이때 예루살렘의 아하스는 성전과 궁궐의 금은으로 예물을 제공하며, 앗시리아 왕 디글랏빌레셀 3세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왕하 16장, 대하 28장).

   2. 이사야의 아하스를 향한 국제정치적 조언.

   유대왕국이 당한 국제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사야의 예언은 구체적으로 주어진다. 아람의 르신 왕과 이스라엘의 르말리야의 아들 베가 왕이 앗시리아 편에 선 유다를 재차 포위 공격하려고 할 때, 이사야는 아하스 왕에게 위로를 전하며 안심시킨다. 아하스는 아들들을 몰렉에게 바치고 각종 우상을 섬김으로 백성을 “소돔의 관원과 고모라의 백성”(사 1:10)으로 전락시킨 자이다. 이 아하스와 유다를 향하여, 이사야는 이사야 7장에서 12장에 걸쳐 예언한다. 이사야는 반 앗시리아 연대의 선봉에 선 이스라엘과 아람이 유대왕국을 이기지 못할 것을 계시하며, 이사야 자신의 어린 아들들의 이름을 통한 계시로 아하스를 안심시킨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대왕국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계시한다. 북조 이스라엘과 아람의 연합된 공격으로 두려움에 빠진 왕과 백성의 마음이 마치 “숲이 바람에 흔들리듯 할 때”(사 7: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65년 안에 멸망시킴으로 나라로서의 운명이 다하게 될 것을 예언한다(사 7:8, 7:1-9). 이사야는 예언 중에 유대왕국을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라고 하나, 아하스는 징조를 구하지 않는 불신으로 대응한다. 유다의 종주권자인 여호와께서 징조를 구하지 않는 아하스에게 친히 징조를 주신다. 그것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게 되는데 그 이름이 임마누엘”(7:14-16)이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이 예언은 신약 기자에 의하여 메시야의 처녀 잉태로 재해석된다. 그러나 역사적 정황에서는 그 아들이 누구의 아들인지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선지자나 왕이 알고 있는 그 아이가 장성하기 전에 아람-이스라엘 동맹은 곧 파멸에 이른다는 현실적 예언이다.

   언약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는 아이들을 몰렉에게 바친 아하스에게 아들의 징조로 말씀하심으로 그의 악한 행위를 상기시킨다. 하나님은 오히려 아들을 주신다는 것이다. 이사야 또한 자신의 두 아들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향한 신실하심을 드러낸다.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의미의 “스알야숩”과 “노략이 속히 이루어진다”는 의미의 “마헬살랄하스바스”였다. 이는 하나님의 신실함으로 백성들이 재난에서 돌아오게 되고, 대적을 향한 노략이 급속하여 결국 그들을 멸하신다는 의미이다. 이 모든 일에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이 세 번이나 거론됨(7:16, 8:8, 8:10)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임재가 유다와 아람과 이스라엘과 앗시리아 위에 덥힌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신정적 임재는 열방의 운명, 곧 국가의 존립과 멸망을 결정하는데, 어떤 나라를 강하게 하시어 구원하시며, 어떤 나라를 도구로 사용하며, 심판과 구원을 각국에 보낸다는 것이다. 이사야를 통해 기원전 734년에 선포된 하나님의 예언은 2년 후 732년에는 아람의 멸망으로, 그로부터 10년 뒤인 722년에는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성취되고, 65년이 되는 669년에는 앗시리아의 왕 아수르바니팔(669-626)이 북조의 영토 내에 대규모 이민을 들여오므로 이스라엘은 혼혈이 되어 민족적 정체성을 거의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유다왕국은 생존에 이르게 된다.

   3. 이사야의 예언이 가진 국제관계적 함의.

   하나님은 유다의 국내정치 상황을 넘어 열방의 운명에 지속적으로 관여하시며, 그 관계 속에서 유대왕국을 섭리적으로 인도하신다. 따라서 첫째로,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 활동을 볼 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국제관계를 하나님의 섭리적 영역에서 결코 제외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왕 되심은 열방까지 미치므로, 외교와 전쟁과 평화의 문제까지도 하나님께 종속되어있다. 만국의 만국에 대한 투쟁상태에서나,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이 펼쳐지는 국제관계의 치열한 현장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인정하여야 한다. 이사야 13장으로부터 35장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전해주는 예언의 대상은 바벨론, 이집트와 주변의 열방으로 확장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열방의 왕이시며, 광대한 영역의 통치자이다.

   둘째로 앗시리아의 우월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유다가 굴욕외교를 해서는 아니 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유대왕국이 종주권자인 여호와를 신뢰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은 여호와를 종주권자로 인정하는 결단이므로, 앗시리아를 유다의 전폭적인 신뢰와 숭배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아니 된다. 당시의 고대국가는 국가가 섬기는 우상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앗시리아와 같은 나라와 맺은 종주 언약은 종종 신들의 이름으로 재가 되는 것이므로, 여호와를 섬기는 유대왕국이 영적 정체성을 잃으며 국제관계에 몰입하는 것은 금기에 속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사야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호와와 유다의 언약 관계를 회복시키려고 예언한다.

   셋째, 이사야가 아하스를 향하여 제공하는 조언은 패권국 앗시리아와 만드는 평화 체제에 속지 말고, 여호와의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필요하다는 점에 대한 강조이다. 하나님의 평화는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고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고 전쟁을 연습하지 않는” 완벽한 평화이다(사 2:1-4, 미 4:1-5, 욜 4:9-10). 그러므로 진정한 평화는 외교적으로 팍스 앗시리아카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 참된 평화는 유대민족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그 언약에 대한 성실성을 지키는 하나님에 의하여 확보되는데, 이것이 곧 “하나님의 평화”(Pax Dei) 이다.

   국제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평화 속에서 언약적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또한 국내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언약적 정체성은 도덕법, 시민법과 제사법과 관련된 내용을 가진다. 고대 종교가 일상생활에 대한 구체적 율법을 가지지 못한 경우가 많은 데 반하여, 광야 생활 중에 연속적으로 주어진 유대왕국의 모세오경은 그 구체적인 언약의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국내적인 차원에서의 정의와 사랑의 구현은 국제정치적인 차원에서의 평안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제국의 발흥과 국제관계의 악화와 전쟁은 종종 하나님의 언약을 떠난 백성을 향한 심판과 맞물려 있었다. 이러한 차원에서 언약의 수행, 정의와 사랑의 국내적 실천은 장기적으로 국제관계의 딜렘마 가운데서 국가의 정체성과 평안을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아하스는 실패하였다. 아하스가 국제정치 속의 내린 나름의 지혜로운 선택은 국내적 정의를 기초로 한 “견실한 평화”(stable peace)나 “견딜만한 평화”(sustainable peace)가 아니다. “견실한 평화”는 반드시 국제관계적 안정과 함께하는 국내정치에서의 정의의 실현이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샬롬(shalom)의 실현으로, 번영과 안정을 포함한다(시 122:5-7). 샬롬에서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견딜 만한 평화” 또한 우리가 말하는 “좋은 다스림”으로, 그 구체적 요소는 정치적 책임과 인권의 보호, 공적 안전과 민간인의 보호를 포함한다. 그러나 이 점에서 아하스는 견실한 평화나 견딜만한 평화를 유지하지 못했다. 그는 성경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국내적 정의를 상실한 불안한 평화, 하나님의 도우심을 거절하고 우상에 의존하는 ‘견딜 수 없는 평화’를 유지했다. 우상숭배란 종교적인 행위일 뿐 아니라 정치, 경제, 그리고 국제정치적인 함의까지 내포한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