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30년, 이민교회 교회 개척 및 22년 담임목회, 시인, 미 전도 종족 선교, 교회협의회 임원 등 베다니감리교회 남궁전 목사를 설명하는 수식어가 적지 않다. 늘 잘 웃고 누구의 말이든 일단 들어주고, 받아주는 마음 좋은 목사로 정평이 나있지만, 20년 넘는 세월 한 교회를 개척하고 섬겨온 것에서 그의 끈기와 저력을 엿볼 수 있다. 지역사회에서는 선배 목사를 존경하고 잘 배우며, 후배 목사들을 이끌어 주는 중간다리 역할을 부지런히 해 온 ‘작은 아버지’ 같은 목회자로 인정받고 있다.Sep 03, 2019 11:21 PM PDT
2010년 샘터교회 진웅희 목사를 교회탐방 인터뷰 ‘애틀랜타 교회를 가다’ 코너를 통해 만났다. 은혜로운 간증과 애틀랜타 땅에 두신 샘터교회의 비전을 나누며 2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이후 그는 꾸준히 성장하던 사역을 내려놓고 한국에서의 부르심을 받아 떠났고, 몇년 뒤 돌아와 조용히 뒤에서 돕던 중 후임 목사님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떠날 수 밖에 없던 교회를 다시 맡았다. 지난 10년의 시간은 교회도 진웅희 목사도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위로 아래로 내달리며 때론 심하게 흔들리는 탓에 손잡이를 꼭 잡을 수 밖에 없는 조금은 위험한 여정이었을 것이다. 한 바퀴를 돌고 다시 출발선에 선 듯한 교회와 진웅희 목사는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운행하는 롤러 코스터를 다시 한번 타보려고 한다.Aug 07, 2019 09:26 AM PDT
콜럼버스에 위치한 반석장로교회가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반석같은 믿음으로 내부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민족을 품고 베푸는 교회’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1985년 박성만 목사 가정을 중심으로 개척된 반석교회는 두 번의 성전 건축을 진행했고, 두번째 건축을 진행하던 중 ‘동성애 안수’에 동의한 기존 교단으로 부터 탈퇴를 감행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 모든 성도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도하며 은혜를 구할 때, 홍해를 가르고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출애굽과 가나안 입성의 역사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몇 번의 인터뷰 요청 끝에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한결 편안해진 모습으로 만날 수 있었던 박성만 목사는 “한가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교회가 특별히 잘나서라던가 의로워서 탈퇴를 결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서두를 뗐다.Jul 16, 2019 02:47 AM PDT
스와니 성전으로 옮긴 예수소망교회(담임 박대웅 목사)가 신앙의 뿌리가 깊어지고 다음 세대가 자라나는 기쁨을 경험하고 있다. 수목으로 둘러싸인 경관에 자리한 교회 옆에는 작지만 알찬 놀이터, 든든한 실내 체육관 그리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잔디밭까지 고루 갖추고 있다. “10년 넘게 셋방살이하다 3년 전, 작더라도 ‘우리 집’ 한켠 마련하고, 우리 땅을 갖게 되면서 ‘드디어 뿌리를 내리는 구나’라는 감사와 감격이 컸어요. 아이들이 교회 안팎에서 마음껏 뛰놀고, 청소년들도 체육관에서 마음껏 농구도 하고 게임도 하면서 지내는 걸 보는게 가장 행복합니다. 교회가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 가운데 위치해서 그런지 성도님들도 다들 기뻐하시고 편안해 하세요. ‘3세대가 함께하는 교회’를 늘 꿈꿔왔는데 이제야 그 기초석을 조금 놓은 것 같습니다.” 2006년, 박대웅 목사와 몇 가정이 함께 개척한 예수소망교회는 한 동안 급격한 양적 성장을 겪으며 몇 년에 한번씩 원든 원치 않든 이사를 다녀야 했다. 비지니스 건물 교회를 마련하면 접근성은 좋았지만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이 ‘아이들’이었다. 교회 공간이 좁아 부대껴야 할 때도 많았고, 교회 바로 앞Apr 30, 2019 09:56 AM PDT
교회를 찾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품은 비전과 꿈, 그걸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모임이 시작돼 자체적으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화요일 헵시바 기도모임은 임광빈 전도사가, 목요일 예수전도단 모임은 전웅제 목사가, 토요일 부침개 사역은 교회 성도들 중심으로 자발적 헌신으로 이뤄지고 있다. 금요일에는 연합성령집회를 갖고 있으며, 월요일에도 공식적인 모임은 아니지만 다양한 사역을 섬기는 이들이 함께 모여 자연스러운 배움과 나눔의 시간을 만들고 있다. "앞으로도 세계로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역이 생겨날 것입니다. 교회 한 켠을 사용하고 있는 비영리단체 '도와(Dowa)' 담당자들과 함께 성인 장애인을 위한 그룹홈 비전을 갖고 기도하고 있고, 한 성도님은 혼자 생활하기 어렵지만 가족의 도움을 받기 힘Jul 15, 2014 05:06 AM PDT
"개척교회이기 때문에 숫자에 대한 조바심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동행교회를, 그리고 저를 '한 달란트'로 지으셨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충실해야죠. 열 다섯 명 밖에 안 되는 교회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사역들을 찾아서 하고 있습니다. 미술교실이나 실버사역 등 여러 가지 사역을 해나가는 것을 보면서 주변에서 막상 사람이 늘지 않으니 과연 계속 해야 하는지에 대해 걱정이 많으세요. 그런데 저는 재미 없으면 못하는 성격이에요(웃음). '재미'라는 것이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사역을 하나 만들 때, 그것이 잘 될까 안 될까 두려움, 기대, 긴장을 뜻합니다. 지금은 즐겁게 재미있게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Jun 06, 2014 09:02 AM PDT
말씀이 고프고, 사랑이 고프고, 엄마 밥이 그리운 청년들이 함께 예배 드리고, 사랑을 나누고, 밥을 나눈다. 50-60명의 청년들이 모여드는 이곳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훈훈하고 끈끈한 가족들의 사랑이 가득한 '큰 집'이다. 도라빌 말씀의샘교회(담임 김용호 목사)가 청년교회로 성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청년들이 모이는 비결이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일부러 청년들을 모으려고 한 것은 아닌데 청년들이 많아지니 어른들은 오히려 부담스럽고 어색해서 잘 정착을 못하세요(웃음). 1974년 교육 전도사로 목회를 시작해 2006년 은퇴할 때까지는 교회 성장시키고 건축하고, 부지런히 성경공부하고, 심방하고, 성도들간 갈등이 있으면 다독이고...그런 게 목회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좇아 다녔어요. 그런데 지금은 사람을 잘 키우고 섬기고 예배를 잘 드리고, 아이들과 잘 먹고 잘 지내는 것이 진짜 목회 아닐까 싶어요."Apr 17, 2014 03:09 PM PDT
2010년, 박익준 목사 가정에 의해 개척된 새빛교회가 오는 주일(9일) 창립 4주년을 맞는다. 한인들이 많지 않은 조지아 남부 샵스버그에 조금은 늦은 40대 후반에 개척을 시작해, 교회가 막 자리를 잡으려던 2012년 여름, 불의의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겼던 박익준 목사와 사모. 개척을 시작한 지 일년이 됐을 때 개척의 기쁨을 나눈바 있던 그에게 꼭 한번은 다시 안정돼 가는 교회 이야기, 사고의 아픔과 이후 간증과 은혜를 들어보고 싶던 차에 노회 일로 둘루스 한인타운을 찾아 인터뷰를 가졌다. 흐릿한 날씨에 때 이른 봄비가 내리는 가 싶더니 옷깃을 여밀 만큼 쌀쌀했던 2월의 어느 날. 따끈한 라떼 한잔을 놓고 만난 박익준 목사는 모두다 '안 된다'고 하는 개척의 파도에 인생 후반부를 걸었고, 험난한 파고를 넘어 이제 막 그 파도 위에 올라타 항해의 키를 단단히 붙잡은 선장과 같았다. 조심스럽게 꺼낸 사고 이야기에도 "다시 한번 '내가 너의 하나님이다'라는 것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우리 부부 모두 깊이 체험할 수 있었다"며 감사와 평안을 주셨다고 담담히 밝혔다.Feb 05, 2014 02:14 PM PST
"가장 기본적인 것을 하려고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을 변화 시키는 것은 '말씀'과 '그리스도의 사랑'뿐입니다. 지금 '거룩한그루터기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많은 프로그램보다 예배를 잘 드려서 우리의 내면이 그리스도의 제자로 온전히 세워지는 것입니다." 거룩한그루터기교회 서정일 담임목사를 만났다. 지난 6월 부임한 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지만 꾸준하게 교회 안팎을 정리하고 성도들을 돌보는 일에 힘써왔다는 그는 인터뷰 요청에 몇 번이나 '별로 할 것이 없는데...'라는 말로 완곡히 거절의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 '이사야 6장 13절' 말씀처럼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라는 말씀을 붙들고 '기본에 충실한 교회'가 되겠다는 다짐을 내비쳤다.Dec 16, 2013 10:52 AM PST
기아 자동차 공장과 함께 모여드는 한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소망으로 2010년 라그랜지 지역에서 첫 예배를 드렸던 참사랑한인교회(담임 문창옥 목사)가 창립 3주년을 앞두고 '기적과 같은 은혜'로 조지아주와 경계한 알라바마주 밸리에 새 예배당과 교육관을 마련했다. 이제 막 한인사회가 성장하고 있는 라그랜지 일대 교회들 중 자체성전을 갖고 있는 곳은 두, 세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흔치 않다. 그 중에서도 참사랑한인교회 새 성전은 아름답게 정비된 예배당과 친교실, 교육관, 사택 그리고 넓은 대지까지 품고 있어 이를 기반으로 지역 한인들에게 꼭 필요한 '어린이 축구교실'과 '한글학교' 등 다양한 사역을 계획하고 있어 주목된다.Aug 07, 2013 06:02 AM PDT
"학생부 수련회에서 '너도 아버지처럼 목사가 되라'는 음성을 듣고, 비전을 갖게 됐어요. 열세 살에 이민 와서 학교에 둘 뿐인 동양사람인데다 영어도 잘 못하니 지나가다 툭툭 치기도 하고, 인종차별도 당하고, 특히 체육시간에 옷 갈아입고 나가는 길목에서 많이 맞았죠. 하지만 비전을 갖게 되니 그런 문제들은 웃어넘길 수 있을 정도로 작아졌습니다. 지금 청소년들도 비전이 필요합니다. 목표가 없으면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가면 행복할 거라고 '착각'합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그런 비전이 아니라 어떻게 남을 돕고 살 것인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이룰 것인가 라는 진지한 고민과 비전이 아이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주님과동행하는교회 유에녹 목사를 만났다. 기대했던 대로 30대 젊은 목사답게 패기와 열정이 넘쳤다. 동시에 대대로 이어진 목회자 집안의 녹록하지 않은 저력과 목회자가 되겠다는 비전을 품고 오직 한 길만 달려가고자 하는 '붙들린 자'의 아름다운 헌신이 느껴졌다.Jun 25, 2013 12:07 PM PDT
"요셉은 부모도 형제도 없는 이방 땅에 노예로 잡혀가 최악의 환경에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비전을 붙들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어요. 청소년들이 방황할 때 누구 한 명이라도 잡아주는 교사나 어른이 있다면 그 아이는 다시 설 수 있어요. 나눔교회에 오는 자녀들은 단 한 번을 오더라도 하나님을 만나고 비전을 품을 수 있도록 '교육'에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주인 된 교회'를 표어로 지난달 창립 및 임직감사예배를 드린 나눔교회 김성진 목사. 마흔 살에 첫 개척을 하게 된 김 목사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이뤄가실 '꿈'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May 22, 2013 09:19 AM PDT
뷰포드시 아름답고 고즈넉한 언덕 위에 자리잡은 염광장로교회가 지난 해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으며 갈급한 심령으로 목자를 기다리다, 12월 마지막 날 부임한 김경판 목사와 함께 회복의 길을 걷고 있다. '목회할 수 있어 이것 하나만으로 행복하고 족하다'고 고백하는 한 사람, 김경판 목사를 만났다. 부임한지 5개월째 접어든 김경판 목사는 연신 '감사'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강조했다. 풀타임 부목사 사역이 3년이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군데에서 담임목사 청빙 제안이 왔지만 마치 '중간에 낚아 채이듯' 염광장로교회로 오게 됐다고 한다. 그는 어떻게 보면 평범하게 살던 자신을 목회자로 부르시고, 미국행 비행기에 타게 된 것도, 이민생활의 밑바닥까지 내려가게 하셨던 것도 모두 바로 이 때를 위함이라고 확신했다.May 15, 2013 03:46 PM PDT
"오랫동안 고민하던 끝에 어렵게 결심한 목회의 길이었어요. 신학공부를 마치고 개척교회로 파송됐을 때 제가 동경하던 목회와 현실은 정말 달랐죠. 이전에는 누군가의 수고로 맺어진 열매만 즐겼다면, 3년 넘게 개척의 현장에서 부딪히면서 흙도 갈아 엎고 씨도 심고 풀도 뽑고 때론 진흙탕에서 구르는 것 같이 힘들었지만...'개척할 수 있어 참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슈가힐한인교회 남성원 목사는 개척교회 3년의 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백조가 유유히 호수 위를 거닐려면 호수 아래서는 부지런히 발을 차야 하듯, 그는 개척목회를 통해 이민자의 삶을 '제대로' 체험하고 있었다. Apr 26, 2013 11:57 AM PDT
지금까지 멈춤 없이 왔어요. 학위도 목사안수도 기간을 당겼으면 당겼지 늦춰본 적이 없어요. 4대째 목회자 집안의 아들로 목회자로 서원하고 낳은 아들이셨기 때문에 저 역시 목사가 된다는 생각 이외에 해 본적도 없었죠. 사실 애틀랜타로 청빙받아 오면서 마음이 많이 불편했어요. 제가 먼저 내려오고 가족들이 오기까지 한달 정도를 교회에서 매일 철야기도하고 숙식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삶'을 놓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얼마 전에는 심하게 아프면서 강단에 서기 힘들 정도가 돼버리니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설 수 있는 것이구나. 그 자리가 너무 큰 축복이구나!'알게 되면서 분주함과 조급함을 버리고 당신만 바라보게 하셨어요Mar 26, 2013 10:46 PM PD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