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켄한인장로교회 이기범 목사
스포켄한인장로교회 이기범 목사

여러분이 만약 이번 한 주간 동안에 다섯 명으로부터 부탁을 받았다면, 그런데 그 모든 부탁을 다 들어줄 수는 없는 상황이라면 어떤 선별 기준을 가지고 그 부탁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부탁이라면 들어주겠다는 분도 계실 것이고, 아무리 사랑해도 상대방에게 유익한 결과를 예상할 수 없다면 거절하겠다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성경에는 수 많은 기도의 사례가 등장하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기도들과 거절하신 기도들이 다양하게 소개됩니다. 그 가운데 엘리야는 상당히 많은 기도를 하나님께로부터 응답 받았습니다. 

그는 디셉 출신이었는데, 한 마디로 촌사람이었습니다. 평범했던 그를 비범하게 만들어 준 것은 바로 그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도대체 어떻게 기도를 드렸길래 하나님께서 그토록 놀라운 응답을 해주신 걸까?' 우리는 이런 의문을 갖고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그는 기도함으로 얻게 될 결과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기도했습니다. 사람은 인격적인 존재라 친밀한 관계가 아니면 무엇을 부탁할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과 친하지 않으면 부탁한다 해도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그 자체가 목적이지 수단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놀라운 모험이고 행복입니다.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사실 사람도 잘 모릅니다. 사람을 잘 아는 것은 대단한 지혜이고 능력입니다. 또한 나 자신을 아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폴 투르니에는 <삶에는 뜻이 있다>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실제로 사람은 누구도 자기 혼자서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과 만남으로써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나 자신을 바르게 알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둘째, 자신의 감정을 호소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시대에 가장 큰 어려움은 3년 6개월 동안 계속된 가뭄이었습니다. 국민들은 여호와 하나님보다는 우상에게 마음이 기울었고, 하나님은 이런 잘못에 대하여 가뭄으로 고통을 허락하셨습니다. "많은 날이 흘러서, 삼 년이 되던 해에,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아합을 만나거라. 내가 땅 위에 비를 내리겠다."(왕상18:1) 엘리야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는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을 바라보며 몸을 굽히고,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종에게 바다 쪽을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일곱 번을 더 그렇게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너희는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찾아주시지 않으시고, 모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눅18:6-7)

셋째, 인내하며 기도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관심이 우리 기도에 대한 응답보다는, 우리들 자신이 오랜 시간 기도하면서 경건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일지 모릅니다. 문제 해결보다는 사람됨, 하나님은 이것을 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인내할 때 믿음이 성장합니다. 인내하면서 사랑도 깊어집니다. 기도는 인내심을 길러주고, 인내하며 기도했던 사람이 맛보는 기쁨은 세상 그 무엇보다 달콤합니다.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모든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아버지가 계셔서 우리는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