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험블리(Walking Humbly) 리더십은 미가서 6:8절의 말씀을 토대로 한 리더십으로 우리의 인생 가운데서 인생 최고의 리더와 동행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성경 속의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성경에는 순종하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시대를 초월하여 하나님과 동행한 대표적인 인물은 에녹이다. 65세에 무드셀라를 낳은 후 그는 자신의 것을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을 앞세우고 나갔다. 노아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No"라고 할 때, 혼자만 하나님의 음성에 "Yes"라고 하며 그의 부름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 과연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동행이라는 의미는 삶 가운데서 실재하는 하나님을 만나 그를 따라 걷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매 순간마다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며 매일의 삶 속에서 그를 경험해야 한다. 인생에는 굴곡이 있기에 넘어질 때도 있고 쓰러질 때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그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이끌어 주시는 손을 붙잡고 뒤쳐지지도 혹은 앞서가지도도 않으면서 따라 걸어가면 되는 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동행 없이는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입성할 수 없었을 것이며, 요셉이 형통한 위치에 오를 수도 없었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죄의 자유함 또한 없었을 것이다.

1900년 서구권 국가의 크리스천 수는 전 세계 기독교 인구의 약 70% 정도였다. 그리고 2010년에 들어서는 그 인구의 수는 35% 정도로 급감하게 되었다. 또한 지금의 영국 젊은이들 중에 카톨릭 인구를 포함한 기독교인의 숫자는 약 15% 정도이고, 무슬림이 약 7% 가까이 차지한다고 한다. 물론 그 동안에 남미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일부 지역에서 크리스천의 수는 몰라보게 증가하고 있기는 하지만, 최근 포스트 모더니즘의 여파는 한국의 교회들마저도 여러 가지 이유로 힘없이 무너트리고 있으며, 서구 교회를 한 없이 후퇴시켜 버리고 있으니, 이제 그 영향력으로부터 안전지대는 없는 듯 보인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화고 있어서 이제 더 이상은 기독교 문화가 세상의 문화를 아우르지도 혹은 뒤쫓아 가지도 못하는 수렁에 빠져있다.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상황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매우 탄력적인 리더십 유형이 요구된다. 변화하는 시대에 이전과 똑같은 리더십만을 고집한다는 것은 어쩌면 미련스럽게 보일 것이다. 지금은 소통의 리더십과 섬김의 리더십이 이상적인 모델로 선호되고 있으니, 리더십의 유형도 문화의 변천에 따라 옷을 갈아 입고 있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원칙들도 있다. 그것은 바로 진정한 영적리더는 반드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영적리더라면 신학과 학문 혹은 교리의 상자에 갇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고, 실재하는 삶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친히 만나야 하는 것이다. 나의 뜻과 감정과 생각마저 주관하시는 그리고 온종일 대화 할 수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그렇게 때문에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동행하는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영적리더라 불릴 수 있다. 

좀 더 이야기 하자면,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적극적인 복종과 수동적인 묵인 모두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리더들이 인생 최고의 리더와 마주했을 때에는 두려움으로 그분의 발 앞에 넘어져야 할 것이며, 아주 겸손한 마음으로 영원한 존재와의 대화를 즐길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그분의 은혜가 요구될 때는 주신 계명을 지키면서 그 은혜를 향해 달려가야 할 것이며, 자신을 징계하실 때에는 그분의 약속을 믿고 인내심을 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성령님이 허락하시는 통회하는 심령을 가지고 주님 앞에서 항상 자신을 낮게 지키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