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무오 도전과 응전

노르만 가이슬러 외 | 권성수 역 | 엠마오 |  530쪽 | 9,800원

교회와 성경 무오성
헤롤드 린셀 | 김덕연 역 | 엠마오 | 262쪽 | 4,000원

성경 무오성 논쟁
알버트 몰러 외 | 방정열 역 | 새물결플러스 | 456쪽 | 20,000원

오랜만에 날씨가 좋다. 한 3일 동안 계속 맑음이다. 덕분에 기온이 조금 떨어졌다. 하지만 벌써 3월이 코앞이라 그런지 이전처럼 차지 않다. 작년 겨울에 비하면 올 겨울은 따뜻했다.

잠깐 머물 거라 여겼던 시골 생활이 벌써 16개월째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일어났다. 이렇게 시간은 흐르고 일상은 과거 속으로 물러나 추억이 된다. 그 동안 정신없이 살아온 탓인지 집이 많이 어수선해졌다. 설을 보낸 후 조금씩 몸을 추스르고 있지만 잘 되지는 않는다. 이틀 전 서재 창고에 들어가 성경 무오성에 관한 책을 두 권 찾아내 가져왔다.

노르만 가이슬러 등이 지은 <성경무오 도전과 응전(엠마오)>과 해롤드 린셀의 <교회와 성경 무오성(CLC)>이다. 이 두 권은 철저한 보수신학 관점에서 성경 무오를 옹호하는 입장에 서 있는 책들이다.

새물결플러스에서 온 <성경 무오성 논쟁>은 다양한 입장을 가진 학자들이 공동 저술한 책이다. 아직 읽지 않아 저자들이 각자의 입장을 설명할 수 없지만, 성경 무오성을 다른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준다.

성경의 무오성이란 뭘 말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내가 배워온 무오성은 문자까지 포함한다. 이것을 '축자영감설'이라고 한다. 또한 일부가 아닌 전체 무오이어야 한다. 무오는 단 하나라도 오류가 있다면 전체가 오류가 있게 된다는 논리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 신학자들의 성경 무오성은 딱딱하고 치밀하며 타협이 여지가 없다. 문제는 그러한 논리가 성경이 가진 서사성을 해친다는 것이고, 극단적 성경 해석으로 치닫는다는 점이다. 최근에 비판이 일어나는 젊은 지구론을 의도하게 된다. 즉 문자적 성경 해석은 하나님의 완전성이란 빌미로 모든 이성적 판단 가능성을 닫아 버린다. 해롤드 린셀이 말하는 영감을 들어보자.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영감에 의하여 성경에는 오류가 없는 것이다. 즉, 그것은 우리를 기만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감은 기록된 하나님 말씀의 모든 부분에까지 미치며 성경의 단어 선택에 있어서조차 성령의 인도하심 미친다. ... 하나님의 영감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류가 있을 수 없다. 성령 하나님은 본성적으로 거짓말을 하실 수 없으시며 비진리의 저자가 되실 수 없다(31쪽)."
  
린셀의 주장은 치밀하고 논리적이다. 문제는 그 무오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린셀은 8장까지 성경 무오성과 탈선에 관한 역사적 과정을 다룬다.

9장에서는 무오하지 않다는 반대편 주장에서 열거한 성경 본문을 살펴 나간다. 예를 들어 신약이 '다윗의 자손'에 대한 호칭 문제와 역대하 4장 2절의 '놋 바다'에 대한 것들이다. '누락된 천 명'이란 주제로, 민수기 25장 9절을 언급한 바울의 23,000명을 비교하기도 한다. 린셀은 '둘 다 대략적인 수들을 적고 있다(196쪽)'고 해결한다.

가이슬러 등이 쓴 <성경 무오 도전과 응전>은 상당히 학문적이며 치밀하다. 목차에서 볼 수 있듯 철학 사조와 관련된 성경 해석이 변화를 다루고, 진보주의 신학자들로 구분되는 니버, 칼 바르트, 베르카우어 등도 종종 언급하며 반격한다. 마지막 12장에서는 핫지와 워필드, 메이첸의 공헌을 열거한다.

어쩌면 이 책의 주요한 논쟁의 핵심은 베르카우어를 중심으로 한 '기능주의 성경 해석'에 대한 반격에 모두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기능주의는 '하나님은 자기 계시에서 자신을 겸허하게 낮추사 인간의 제한되고 죄악된 수용력에 맞추셨다(391쪽)'는 것이다. 이것을 '원용 원리'라 칭한다. 원용 원리는 클레멘트, 오리겐, 크리소스톰, 어거스틴, 루터, 칼빈, 마터, 카이퍼, 바빙크 등에게서도 자주 발견된다.

기능주의는 성경의 신적 목적의 핵심에서는 오류가 없지만, 비목적에서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전체 성경 무오성을 헤치는 것으로, 축자영감설뿐 아니라 구원에 이르는 온전한 지식도 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원용 개념을 '혼돈된 것이고 결정적이 못 되며, 자폐적(393쪽)'이라고 선언한다. 린셀은 '무오성에 대한 믿음을 포기할 때 무슨 일이 발생하는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성경의 무오성이 한번 포기되고 나면 필연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들이 따른다는 것이 나의 논점이다. 그것은 마침내 배교로 종식될 것이다(164쪽)."
  
린셀이나 가이슬러의 염려 속에는 만약 단 하나의 오류를 인정하게 되면, 나머지 진리들도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논리적 필연성이 담겨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단 하나의 오류도 없다는 것이다. 보수 신학자들의 견해는 다분히 관념적이고 논리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 아쉽다. 그렇다면 피터 엔즈 외가 저술한 <성경 무오성 논쟁>에서는 어떻게 논쟁을 진행하는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피터 엔즈의 '어떻게 정의되든지, 무오성은 성경이 행하는 바를 설명하지 않는다'에 주목해 보자. 참고로 피터 엔즈는 성서학자로 미국 이스턴대학교에서 교수로 제직하고 있으며, NIV 적용 주석을 썼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 자체가 '하나님을 경시(116쪽)' 하는 것이며, '18세기와 19세기의 성경적 고등비평의 도전에 대한 대응(117쪽)'이었다고 한다. 즉 무오성은 교리가 아닌 변증의 부산물인 셈이라는 것이다. 엔즈의 이러한 평가는 가이슬러나 린셀, 핫지나 워필드, 메이첸 등의 보수적 학자들이 언급하는 저술 방식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린셀과 가이슬러는 성경 무오성을 논하기 앞서, 시대적 고찰을 통해 성경의 잘못된 해석을 역사적 흐름 속에서 관찰한다.

그는 여리고 멸망 연대와 다메섹 도상에서 일어났던 바울이 들었던 예수의 목소리를 논하면서, 무오성이 갖는 오류를 지적한다. 그는 이렇게 결론내린다.

"간단히 말해, 무오성은 제 아무리 잘 정의되고 미묘한 뉘앙스를 드러낸다고 해도, 성경을 역사적 현상으로 설득력있게 다루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있다(157쪽)."

엔즈의 고민은 성경을 역사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수많은 오류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한 예로 여리고의 멸망은 고고학적으로 보수적 성경학자들이 지지하는 시대와 많은 간극이 있다. 문자주의 성경은 출애굽 연대를 B.C. 1446년으로 잡는다. 그렇다면 여리고 멸망은 40년 이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캐서린 캐년의 결론에 의하면 1550년으로 주장한다. 성경 무오라는 대의명분으로 고고학 등의 다양한 학문적이고 과학적인 증거들에 대해 눈감아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이 어떻게 자기 백성을 있는 그대로 만나 주시고, 그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맥락을 깊이 반영하는 방식들로 이야기해도 좋다는 점을 반영하는 다른 모델이 등장해야 한다(151쪽)"고 주장한다.

엔즈의 주장을 논평한 알버트 몰러는 "피터 엔즈가 제안하는 것은 무오성을 잘라내기 위해 복음주의의 DNA를 바꿈으로써 복음주의가 사망에 이르도록 하는 일(170쪽)"이라고 일갈(一喝)한다. 케빈 밴후저는 "성경을 정당하게 다루고 있지 않다(180쪽)"는 점에 대해선 동의하지만, "무오성의 정의와 해석자들이 무오성의 이름으로 행하는 바를 혼동하면서, 무오성의 본질을 그것의 용법 전승으로 추락시킨다(183쪽)"고 비판한다.

결론적으로 성경 무오성 논쟁의 핵심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즉 '문자적으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명백한 증거들이 가득 찬 고고학과 과학적 증명들을 해석학에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를 해결해야 한다. 성경 무오성 논쟁은 성경 무오가 가지는 교리적 특성과 문화·역사적 배경들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알버트 몰러가 언급한 것처럼 "무오성은 성경 자체의 증언에 기초해서 교회가 믿어왔던 교리"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대체할 인간적인 권위에 의존하게(59쪽)"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 보면, 성경 무오성을 주장하는 보수 학자들은 대체로 성경 자체보다는 교회의 필요에 따른 관념적 논리에 근거하고 있고, 무오성을 부정하려는 이들은 성경 자체가 내포한 문자적 오류와 고고학과 과학적 근거들에 의존하고 있다. 마치 평행선을 달리는 기차와 같다. '성경 무오'란 주제로 글을 쓰거나 책을 펴낸 이들은 과학자들이 아니면 근본주의 신학에 정통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성경 무오 논쟁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요청에 걸맞게 신학적 교조주의에 함몰된 일방적 주장이나, 과학적 증거들에 근거하여 성경을 불필요하게 비판 일관조의 논쟁은 없기를 바란다. 성경 해석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수많은 관점으로 풍성하게 해석될 필요도 있다. 부디 앞으로의 논쟁은 드러난 증거를 포괄하면서도 성경의 진리를 담아낼 수 있는 해석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정현욱 목사(서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