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이 재현되어 있는 팀나 국립공원
법괘를 만든 씻딤 나무가 있는 아라바 광야길

거친들, 사막, 광야, 황무지, 황야가 주는 느낌은 쓸쓸하다 못해 삭막하기만 하다. 보통 순례객들이 새벽 1시쯤 일어나 시내산을 오른다. 밤새 걸어 오르는 길은 힘들기만 하지만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언약을 생각하며 힘든 줄 모르고 올라간다. 요즘은 낙타가 빈번하게 왕래하며 순례객들을 태우고 정상에 오르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해발 2,285m(7,496Ft)의 시내산은 젊은이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산이다.

사실 시내산 등정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말씀을 상기하고, 하나님 백성으로의 삶에 대한 반성과 다짐이 목적이지만, 사실은 시내산 일출의 장엄함을 경험하기 위한 측면도 크다.

필자가 시내산에 처음 오른 것은 1993년 2월이다. 얼마나 애쓰며 올라갔는지 모른다. 해가 뜨기 전 잠깐 기도회를 같게 되었는데 일행 중 기도 순서자가 너무 은혜에 취해 길게 기도하는 바람에 일출의 장관을 놓친 경험이 있다.

지금은 일출 보지 않았다고 하는 아쉬움은 없다. 오히려 시내산 밑에 있는 백성들이 모세를 기다리다 금송아지를 앞세워 춤추고 난리낸 곳이 더 인상 깊게 남아있다. 어쨌든 그 시내산 등정 때문에 사람들이 파김치가 되어 이스라엘에 들어오는 것은 사실이다. 거기에다 삼엄한 이스라엘 국경 통과가 몸과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대다수의 팀들이 에일랏에서 숙박하지 않고 일정 관계상 광야에 있는 아라드(Arad)나 사해(Dead sea)까지 올라온다. 그러니 숙소까지 도착하는 동안 줄곳 잠이 들어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광야의 향기를 맞아볼 여유가 없는 것이다. 하긴 이집트 쪽에서 시내산을 횡단하면서 신물나게 광야를 본 것도 있었을 것이니 광야에 관심이 가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본다. 그러나 땅을 통하여 하나님이 얼마나 역사하셨는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광야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왜 광야가 축복인가.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을 훈련받았고, 광대하고 위험한 땅에서 견디어낸 결과(신8:15/렘2:6)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광야에서 인격이 변화되었으며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신33:1).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3대 족장의 주거지도 광야였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시작 전에 유대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하심으로 사역을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듯이(마4:1) 광야는 훈련장으로 쓰임받았다. 광야(구약)를 통과하지 않고는 갈릴리(신약)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가 없는 것이다.

광야를 히브리어로는 "바미드바르“라 한다. 바미는 어디서라는 뜻이고 ”드바르”는 ”다바르” 곳 말씀이라는 뜻이다. 광야를 10분만이라도 걸어 보라 무엇을 볼 수 있는가. 바람과 돌, 그리고 뜨거운 태양밖에 없다. 인간은 광야에서 무엇을 볼 수 있나? 광야에서도 소망이 있나? 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다. 곧 광야는 어디서부터 말씀이 왔냐는 뜻을 가지고 있는 바, 말씀은 오직 하늘로서 하나님 그분에게서 온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교, 기독교 모슬렘교 등 세계 3대 종교라고 부르는 종교들이 광야에서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이 100년 간 광야에서 살면서 우물 파는 일로 전 생애를 걸었다. 이것은 곧 생명을 유지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을 훈련시키고 양성하기 위한 길이기도 하다, 아브라함 당시에도 지중해 해안 지역이나 갈릴리 지역 세펠라(지중해 해안에서 유대산악 지역사이) 지역 등은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었고, 유대산악지역도 사람이 살만한 곳이었음에도 굳이 아브라함은 브엘사바(Beersheba) 광야를 고집했던 것은 광야를 통과해야 메시야 되신 구주를 영접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아라바 광야 길 씻딤 나무, 팀나 국립공원안의 기묘한 바위들
아라바 광야 길 씻딤 나무, 팀나 국립공원안의 기묘한 바위들

에일랏에서사해까지 약 220km(136마일)가까이 길게 누어있는 아라바(Arava) 광야는 고대로부터 대상들이 통과하던 길이 기도하다. 구약시대의 아라바는 갈릴리 호수 남단부터 홍해까지였지만 지금은 홍해에서 사해까지의 구간을 아라바 광야(Arava desert) 라고 한다.

황폐한 곳이라는 의미에 걸맞게 에일랏에서 사해까지 2시간 30분 정도 가면서도 볼 것이 없다. 하지만 앞서 말한 광야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광야를 통과하는 것도 좋다. 광야의 사람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열두 아들들의 광야생활과 다윗과 그의 동료들 세례요한의 외침, 이샤야 ,예레미야, 에스겔 선지자의 외침, 예수님의 광야의 시험을 다시 생각해보자.

아라바 광야를 지날 때 구름기둥 불기둥만 생각하지 말자. 만나와 메추라기만 생각하지 말자. 신발이 헤어지지 않음만 생각하지 말자. 광야의 향기를 느낄 수 있고 광야의 깊이를 이해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다(사35:1~2). 또한 갈릴리의 푸름을 이해하며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땅의 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2시간 30분의 짧은 광야 여행에서 배우는 겸손과 인내, 순종과 믿음을 알게 된다면 성지순례는 이미 다한 것이나 다름없다. 차장 밖으로 스쳐지나는 광야의 모습들이 나와는 무관한 특이한 지형이라는 생각뿐이라면 이미 성지순례의 절반은 실패로 봐도 무리되지 않는 다. 그만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라.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조용히 들어보자.

팀나 국립공원에 있는 재현된 성막, 아라바 광야에 있는 팀나 국립공원 입구
팀나 국립공원에 있는 재현된 성막, 아라바 광야에 있는 팀나 국립공원 입구

에일랏에서 37km쯤 북상하면 왼쪽으로 검붉은 산들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이 팀나 국립공원(Timna park)이다. 고대에서 지금까지 구리 광산이 있었고 이곳에서 그 유명한 구리뱀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구리뱀 사건은 모두가 기억하는 광야 40년 역사에서 말씀의 불순종으로 일어난 혹독한 형벌이었고 이 사건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시고 구속하실 것을 예표로 보여준 사건임을 안다.

팀나에는 고대의 성막을 재현한 것이 있는데 성막의 설명을 예수 믿은 유대인이 하는 아이러니도 있다. 팀나에 있는 성막 재현장을 둘러보니 성막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제한된 지면 사정상 성막에 대해 다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 성막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오늘날 교회의 원형이 되는 성막에 대한 관심이 이스라엘 순례여행 중 더 많아지길 바라고 시간이 된다면 꼭 팀나에 들려 성막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졌으면 한다.

그 외 텔 하이(Tel hi) 라는 동물원이 있다. 광야의 동물들을 모아놓은 소규모 동물원으로 팀나를 지나서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에일랏에서 사해까지 오는 동안 4개의 휴게소를 지나는데 그중에 에일랏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요바타(Yovata) 휴게소는 요바타 키부츠(Yotvata kibbutz)에서 운영하는 휴게소로서 꽤 괜찮은 시설로 먹거리와 쇼핑거리가 있다.

필자가 잘 아는 어느 후배 목사가 성지순례 와서 광야를 지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자신이 재학하던 신학교 구약학 교수가 한 번은 설교 중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법괘를 만드실 때 백양목도 소나무도 전나무도 아닌 씻딤 나무(아카시아 나무)를 사용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전나무, 소나무, 백양목도 못되고 가시나무밖에 안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사용 하시면 법괘로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 후배는 이 말씀을 듣고 은혜받아 목회하기로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에 와 보니 전나무도 없고 소나무, 백양목도 없고 씻딤 나무만 있어서 "속았구나" 하는 생각까지 하며 실망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새로운 은혜를 주셨단다. "너 있는 곳에서 잘 하라"라고.

하나님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시는 분이지만 있는 것을 사용하셔서 일하신다는 것을 느끼고 은혜 받았다고 한다. 성지순례를 오지 않았다면 평생 소나무, 전나무, 백양목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사용하지 않고 씻딤 나무를 사용하여 법괘를 만드셨다고 믿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성지순례의 묘미는 이런 데 있지 않나 싶다. 성경에 나오는 사건, 지리, 인물, 풍물 그 어느 하나도 놓치지 말고 깊이 관찰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