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북뉴스 추천도서] 아담의 역사성 논쟁

아담의 역사성 논쟁

데니스 O. 라무뤼 외 | 새물결플러스 | 434쪽

우리나라에서는 서로 의견이나 관점이 다를 때, 곧 아군 아니면 적군으로 간주해 버리는 듯한 모습들이 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는, 견해가 다른 이들끼리 정상적인 토론이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해 보이는 경우마저 있다. 서로의 의견을 차분히 듣고 이해하며 행하는 토론이 아니라, 선입견으로 상대를 공격하고 적대시하여 심한 경우에는 인신공격과 비난이 난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우리의 토론 문화 속에서, 이 책과 같은 다양한 견해를 담은 책과 반론을 담아내는 나라들의 모습을 대하면 부럽고 신기하다. 

책 소개에서 나오듯, 이 책은 '아담의 역사성'에 대한 복음주의의 4가지 견해인 진화적 창조론, 원형적 창조론, 오래된 지구 창조론, 젊은 지구 창조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주장을 각 챕터에 싣고 있다. 그리고 그 주장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학자들의 반론, 그에 대한 발제자의 재반론을 담는다. 

아담의 역사성을 주제로 하지만 그 기저에는 창조와 진화의 문제가 담겨 있고, 그 속에서 아담의 역사성을 부인하거나 원형으로 하는 비역사성을 담아내는 이들과, 아담의 역사적 존재를 주장하는 이들로 나뉜다. '아담의 비역사성' 부류에 속하는 이들은 진화를 주장하거나 허용한다. 또 아담의 역사성을 이야기하는 이들은 창조를 이야기하지만, 문자 그대로의 창조와 간격 이론을 바탕으로 한 오래된 지구 창조론으로 구분된다.

◈진화적 창조론 

이 주장을 소개하는 라무뤼는 진화에 대한 주장을 하면서, 역사적 아담은 부인하지만 아담으로 묘사될 수 있는 무리들에게서 인간이 기원한다고 주장한다. 라무뤼는 성경과 과학을 일치시키는 것을 반대한다. 고대의 잘못된 과학적 사실이 성경에 반영되어 있기에, 그것을 과학과 일치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훼손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한다.

◈원형적 창조론 

월튼은 라무뤼와 달리 아담을 역사적 인물로 본다. 그러나 이것이 생물학적 아담의 기원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역사적 아담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보지만, 그것보다는 원형으로서의 아담을 이야기한다. 즉 아담이 최초의 인물이나 그 조상은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래된 지구 창조론

콜린스는 젊은 지구 창조론을 이야기하는 배릭과 더불어 창조를 이야기하지만, 문자적 6일의 창조를 인정하기보다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주장한다. 

◈젊은 지구 창조론

배릭은 창세기에 나온 대로, 6일 동안 세상이 창조됐고 아담이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믿는다. 이 책의 학자들은 이러한 견해를 과학적 사실을 무시하는 맹목적 창조과학적 견해로 규정하고 배릭에 대해서도 그런 면을 이야기하지만, 배릭은 사실 과학적 주장 자체를 하지 않는다. 자신의 논리를 신학적으로만 이야기한다는 측면에서, 그를 과학일치주의자로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반론한다. 

이 책은 제목만 보면 그저 진화와 창조에 대한 과학자와 보수 신학자 간의 논쟁이라고 피상적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다른 점에 대해 논리적으로 비판한다.

아담의 역사성에 대해 이 네 명의 학자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 네 명은 한 믿음을 가진 '아군'임을 알 수 있다. 이 학자들 중 라무뤼만 하더라도 진화를 이야기하고 아담의 역사성을 부정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인 신앙고백을 분명히 한다. 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성경에 대한 어느 정도의 무오성도 믿는 듯하다. 단지 성경에 대한 무오성의 정의와 그 범위, 세밀성이 다른 듯하다. 

그러기에 이런 한계성은 본질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하는 듯하면서도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또 성경과 과학의 관계 또는 우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상당한 의견 차이가 발생한다.

이런 상당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복음주의라는 테두리가 중요한 것은, 무신론적 진화론자나 신앙과 과학을 이원화하는 학자들과 차별성을 가지며, 적군이라기보다 근원적으로 아군의 테두리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이 네 학자는 서로에 대한 의견 충돌과 견해 차이는 갖고 있지만, 자신의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그 중 진화적 창조론을 주장하는 라무뤼는 젊은 지구 창조론자로서, 연구하고 학문과 신학을 풀어가는 과정 속에서 진화적 창조론이 더 타당하다는 결론을 갖게 된 자신의 신앙 여정을 고백하는 진솔성을 보여 준다. 그것은 이원론적 신앙이나 포기와는 다르다. 

사실 한국 교계에서는 젊은 지구 창조론이나 조금 폭넓으면 오래된 지구 창조론까지만 복음주의로 규정하는 성향이 있다. 오래된 지구 창조론에 대해서도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로 규정하는 듯한 분위기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한국 교계만의 독특성을 담고 있는 것이지만, 이것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맹목적으로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것도 건강한 토론 문화는 아닐 듯싶다. 어느 쪽을 주장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대속에 대한 부인이나 왜곡이 아니라면 상대적 또는 절대적으로 비본질적이라 말할 수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이야기하면 복음에 대해 타협적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듯싶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주장들에서 어느 하나를 절대화시키는 위험을 피해야 한다. 종종 과학적 관점으로만 보는 시각은 성경의 기적성을 무조건 부인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고, 신앙적 관점을 무조건 문자적으로만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섭리보다 나의 독선이 앞설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즉 신앙과 과학을 일치시키거나 무조건 한쪽으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이슈에 대해서는 강렬한 논쟁을 행한다는 점에서 논쟁의 모범을 보여 준다. 이 책은 결코 만만한 책은 아니며 굳이 모든 사람이 다 읽을 만한 책도 아닐지 모르지만, 본인이 영적 지도자의 위치에 있거나 과학과 신앙에 대해 고민한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꼭 읽어 보아야 한다.

/문양호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함께만들어가는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