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환 목사.
(Photo :기독일보) 최윤환 목사.

1818년에 착공해서, 40년 만에 완성을 이뤘다는 대 사원
<그로토> 작품인118톤 자주 원석 대리석 기둥이 어찌 저리 세워졌는지,
수수께끼 같은 공사로 건축되어
약 20,000명이 돌 공사 중에 너무 무거웠던 가, 흩쳐져 시신으로 들려도 나가고,
시체로, 이 사원 아래 지금까지도 묻히어 있을 거라는데

층계 돌계단을 밟고, 그림 철문을 들어선다.
어마 어마한 채색의 홀이 훤히 펼쳐지고
록 색 대리석 굵은 기둥 네 닷 이, 찬연함으로 마음을 사로잡다.

<몽펠랑> 불란서 설계가에 의하여 축조 되었다 하는 사원
원형 돔이 솟아오르듯, 솟구친 모형 조형 함께
돔 천장에는 원형 그림으로 예수 12제자가 각양 모습으로 둘려 있고
정면으론 예수 승천 대형 후레스코 그림이 어리둥절케 원색으로 새겨 져..

사원 안의 손꼽을 하이라이트
2중 유리, 빨간 색 통옷자락 날리 우는, 건물 한층 높이 크기
예수의 모자이크.
눈부시도록 화려하게, 저 유리그림.. 또 어디에서 찾아 볼 것 가!

사원의 크기, 아름다움, 그 색채 감, 그 거대함.
선지자들 본 뜬 조형, 그리고 예수 이야기들 삽화들이
건물 안에 두루 가득 채워져 선, 寺院

붉은 광장 철권 크레믈린 정권에서 까지도
성경적 축조물들을 허물어버릴 수가 없었을 것 아닐 가

지울 레야 지워지지 않을 성서적 역사가
온 몸으로 휘둘려, 세계 위에 줄기차도록 점진(漸進)하여 내려왔다면
세대를 아직도 넘나드는 그 자국들 흩쳐 놓음이
인간 마지막의 그 날까지
정해 진 그 날까지, 흘러 흘러갈_
흔적 흔적들.

黑赤色 대리석 기둥에서 먼저, 거대한 사원 건축구조에 壓倒당하는 인간 손자국을 만나 봅니다. 또 축조 과정에서 20,000명이나 숨져 갔다는 사례도 가슴을 흔들어 놓습니다. 하면서 다듬어진 대형 사원. 그 안에 가득 그려져 있는 인물화만으로도 벌써 사원의 무게는 가득 들어 찬 사원의 중후감입니다. 온통 벽에도, 온통 천정에도 그림사람으로 가득 넘쳐 차 있습니다. 아무래도 뚜렷하게, <아이삭 사원>하면, 무어니 해도 마음에 드리워지는 작품은 아름다운 빨간 통옷자락을 휘날리는, 힘찬 그리스도의 2중 유리 모자이크 화판입니다. 그리고 綠靑色의 너덧 개 대리석 기둥입니다. 엘리야 선지자의 대형 모자이크 화폭, 천장에 예수 중심으로 둘러 있는 제자들 화풍들도 여간 마음에 내려 닿아 오는 인상적 작품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2차 대전 독일군 포탄 총격전에서도 이 사원의 바깥 철문 기둥까지야 포탄 알이 흠집 내기는 하였다 하더라도, 이 성화들 둘러 있는 사원 안까지야 이 위풍(威風)으로 하여서라도, 뿐 아니라 도시 안 進軍마져도, 시민의 저항력으로 이루지 못하게 하는 위력을 내 품고 있는 듯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사람의 창조주 손길로 다듬어지고, 호흡을 받아 진 개개인 인간 품위라는 것도, 나는 그 어떤 밀어 처지는 세찬 바람, 세파 앞에서도, 또 지상의 어떤 인간적 자해력(刺害力)이라는 것 가지고서도, 건드릴 수 없는, 흔들려지지 못하게 하는 品德을 그 누구나 지니고 있다고 나는 진지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진실한 인간 교육이라고 한다면, 어렸을 때부터도 가정에서, 더더구나 중.고등학교 때부터 이 인덕교육을 분위기를 통해서 개개인으로 다듬어 주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 한 사람이 서 있는 분위기로 둘러서 주어야 한다고 좀 더 강력하게 호소해 내고 싶습니다. 때로는 혼자서라도 이 品德이 한 인간 속에 파고들게 하는 요소도 있기는 합니다. 나의 작은 경험을 통해서라도 찾아보면, 스스로 品德을 지니려 하는 자의 世波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또 이 세파로, 스스로 다듬어지는 예술혼이라는 자기훈련도 있긴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바탕으로서의 더더욱 중요한 요건은, 그 어느 것 보다도, 神이신 그리스도의 품덕이 바탕에 창조주로의 교육현장으로 드리워져 있게 하여야 한다는 외침을 소리쳐 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