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음한 여인을 용서하는 예수.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시자 주변에 모여 있던 제사장들과 그 무리들이 하나 둘 들고 있던 돌을 놓는 장면이 이어진다. 카메라는 내려놓는 돌을 하나 하나 클로즈업하며 종교지도자들이 죄인을 향해 품고 있던 무자비함을 드러낸다.
(Photo : sharesonofgod.com)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는 예수.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시자 주변에 모여 있던 제사장들과 그 무리들이 하나 둘 들고 있던 돌을 놓는 장면이 이어진다. 카메라는 내려놓는 돌을 하나 하나 클로즈업하며 종교지도자들이 죄인을 향해 품고 있던 무자비함을 드러낸다.

2월 10일 LA CGV에서 시사회 열려, 28일 美 전역 3000개 극장서 개봉

영화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이 2월 28일 20세기 폭스사를 통해 미전역 3000개 극장에서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영화의 제작을 맡은 로마 다우니와 마크 버넷 부부는 지난해 3월 미국 케이블 채널 히스토리를 통해 방영돼 화제를 모았던 더 바이블(The Bible)의 제작자이기도 하다. 천지창조로부터 사도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내용을 10부로 제작해 방영했던 더 바이블은 매회 1000만명이 넘는 시청자가 시청하는 기록을 남겼다. 이 영화의 감독인 크리스토퍼 스펜서와 예수 역을 맡은 포르투갈 출신의 배우 디오고 모가도(Diogo Morgado) 역시 더 바이블에서 감독과 배우로 활약한 바 있다.

미주 한인 커뮤니티의 봉사단체인 한인기독교개발협회(KCCD)의 협력으로 10일 오전 10시 30분 LA CGV에서 LA 지역 한인 목회자 및 지도자를 대상으로 시사회가 열렸다. 자리를 가득 매운 관객들은 숨소리조차 줄인 채 2시간 30분으로 압축된 예수님의 발자취에 눈과 귀를 모았다.

영화의 첫 장면은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은 모두 순교를 당한 뒤, 밧모섬에 유배된 사도 요한의 모습이다. 요한복음 1장의 말씀이 내레이션으로 깔리며 아담, 아브라함, 노아, 모세, 다윗 등 이스라엘 구약의 역사를 빠른 화면전환으로 보여주며 "하나님이 함께 계셨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어서 예수 탄생(nativity) 장면이 등장한다. "유대의 왕으로 오신 자"라는 동방박사의 말에 마리아의 얼굴에는 기쁨과 경이감이 스민다.

이어서 로마의 식민통치 아래 혼란스러운 유대사회의 모습, 극악무도한 유대총독 빌라도의 모습을 비추며 로마와 유대의 첨예화된 갈등이 부각된다. 카메라는 먼저 수십 개의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 황량한 벌판을 먼저 영상화하며 로마의 폭정 아래 십자가형으로 처형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어 빌라도가 유대 총독으로 부임하자마자 그의 잔악함으로 인해 한 가족이 비극에 처하게 된다. 로마 군사로 인해 자식을 잃고도 어머니가 아무 항의도 하지 못한 채 울부짖는 모습은 로마가 상징하는 세상적인 권력과 힘 앞에 무력했던 이스라엘의 영적, 정치적 상황, 죄의 권세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비참한 인간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이스라엘이 로마의 종 되었듯, 예수가 오시기까지 인간은 죄의 그늘 아래 신음하고 있었다.

영화는 이 상황을 전제한 후 갈릴리로 배경을 옮긴다. 갈릴리 광야와 호수를 비춘 후 예수가 베드로를 부르는 장면이 이어진다. 예수 배역을 맡은 디오고 모가도(Diogo Morgado)는 자애롭고 인자한 표정으로 예수를 연기한다. 그는 친근하고 다정다감하게 베드로를 제자로 부른다. 마치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먼저 "물을 달라"하시는 장면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15:16), 즉 “인간이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을 찾아왔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듯 그가 먼저 베드로에게 도움을 청한다.

예수의 첫 등장 장면. 예수는 그를 제자로 삼기 위해 먼저 그의 도움을 청한다. 영화는 이 장면을 목가적이고 서정적으로 표현해 베드로와 예수 사이에 흐르던 따뜻한 정서를 전달한다.
(Photo : sharesonofgod.com) 예수의 첫 등장 장면. 예수는 그를 제자로 삼기 위해 먼저 그의 도움을 청한다. 영화는 이 장면을 목가적이고 서정적으로 표현해 베드로와 예수 사이에 흐르던 따뜻한 정서를 전달한다.

이후 영화는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의 사역을 영상에 담는다. 회당에서 천국비유를 가르치시고, 중풍병자를 고치시며, 마태를 부르시고, 오병이어 사건을 일으키신다. 물위를 걸으시고, 나사로를 일으키시고,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신다. 당시의 시대상을 꼼꼼하게 고증하듯 재현해 놓은 배경과 함께 빌라도로 대표되는 로마 권력, 로마와 결탁해 기득권을 누리던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 예수 공동체의 갈등 관계에 초점이 맞춰진다.

예수와 서기관 및 종교지도자들 사이의 갈등은 중풍병자를 고치신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다.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가 그에게 "죄사함을 받았느니라"하자 서기관이 이를 신성모독이라 비방하며 군중을 선동하려 한다.

세관에서 자기 백성들을 착취해 로마에 세를 바치던 "세리 마태"를 부르시는 장면에 이르러, 유대종교지도자들과 예수공동체 사이의 갈등, 로마의 권력을 향한 유대인의 적대감이 표현된다. 죄인을 향해 손길을 내미시는 예수의 새 법, 용서와 사랑의 법은 유대종교자들의 정체성의 핵심을 이루고 있던 율법을 위협하는, 달갑지 않은 것으로 그려진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해 예수의 새 가르침에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대제사장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과 예수께서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낭독하는 장면을 교차 편집했다.'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연상시키는,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대제사장의 기도를 통해 그의 위선과 거짓을 폭로한다.
(Photo : sharesonofgod.com) 대제사장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과 예수께서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낭독하는 장면을 교차 편집했다.'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연상시키는,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대제사장의 기도를 통해 그의 위선과 거짓을 폭로한다.

이와 유사한 갈등관계를 보이는 장면은 바리새인이 예수를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 "세금을 누구에게 바쳐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다. 여기서는 유대종교지도자와 예수의 갈등뿐 아니라 바라바로 대표되는 정치적 열광주의자와 예수 사이의 대립이 가시화된다. 또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사건 이후 "메시야"를 외치는 군중들의 함성과 흥분한 모습과 예수의 수심에 찬 얼굴을 대비하며, 예수님과 백성들 사이의 간극을 형상화한다.

이 갈등의 한복판에서 빌라도는 매우 중요한 선택을 하는 인물로 설정된다. 카메라는 범죄자 심문이라도 하듯 매우 차분하면서도 치밀하게 그 뒤를 쫓는다. 그는 유대 총독으로 매우 막강한 권력을 지닌 자이지만 그 역시 그 보다 더 큰 권력을 지닌 가이사 황제의 하수인이기에, 유월절에 소동이 일어날 경우 자신의 지위가 불안해 질 것을 염려한다. 카메라는 그의 얼굴을 여러차례 클로즈업하며 그의 갈등과 번민 불안을 포착한다. 예수에 대해 아내 클라우디가 “죄 없는 자”라며 그에게 손을 대지 말기를 청하나 “이 자를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다”라는 유대종교지도자들의 말에 그를 그들의 손에 넘겨준다.

갈등은 공동체 외부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유다와 예수, 다른 제자들과의 갈등을 보여주기 위해 미묘한 심리변화를 포착해낸다. 십자가형을 앞둔 예수의 얼굴에는 자애로움 대신 불안, 초조감, 혼돈이 감돌기 시작하고, 채찍형을 받는 장면에선 고통에 떨며 신음하는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대제사장을 찾아 간 유다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혼돈이 망설임이 깃든다.

최후의 만찬. 예수는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빵과 포도주를 나눠주며 자신이 받는 고난에 담긴 의미를 제자들에게 가르친다. 이미 예수를 팔기로 결의한 유다는 매우 불안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다 예수로 부터 빵을 받은 후 그 자리를 뜬다. 부활 이후 베드로는 이 가르침을 기억하고 빵과 포도주를 나누고, 이후 부활한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
(Photo : sharesonofgod.com) 최후의 만찬. 예수는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빵과 포도주를 나눠주며 자신이 받는 고난에 담긴 의미를 제자들에게 가르친다. 이미 예수를 팔기로 결의한 유다는 매우 불안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다 예수로 부터 빵을 받은 후 그 자리를 뜬다. 부활 이후 베드로는 이 가르침을 기억하고 빵과 포도주를 나누고, 이후 부활한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

영화는 십자가형의 잔혹함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 선혈이 낭자한, 채찍과 가시면류관에 찔리고 긁힌 상처투성이의 얼굴과 몸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예수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다룬 영화나 다른 재현 매체를 접할 때 마다 이 잔인한 장면을 넣음으로써 거두게 되는 기독교적인 효과는 무엇인지에 대해 자문하게 된다. 그 육체적 고난에 대한 표현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예수의 수난에 담긴 의미가 더 깊이 전달되는 것일까? 혹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한 카타르시스 즉 감정의 정화를 위한, 즉 미학적인 완성 혹은 상업적 성공을 위한 의도적인 배치일까? 그렇지만 잔인하다는 이유로 갑자기 영화가 갑자기 장르를 바꿔 초현실주의적이거나 상징적인 방식으로 이 고난을 표현한다면 분명 우스꽝스럽게 보일 것이다.

이 문제를 논하며 10년전 개봉됐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Passion of Christ)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두 영화 모두 예수의 생애에 관한, 헐리우드에서 제작한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멜 깁슨의 영화가 “그리스도의 수난을 매우 사실적으로 재현했다”는 평과 “육체적인 고통에 대한 묘사에 집중한 나머지 더 중요한 성경의 메시지를 놓쳤다”는 엇갈린 평가를 받듯, 크리스토퍼 스펜서의 이번 영화 역시 이러한 엇갈리는 평가로 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멜 깁슨의 영화와 좀 더 비교를 한다면, Son of God의 메시지는 영화의 첫 장면에 반복해서 나온 “함께 하셨다”에 압축되어 있다. 영화는 첫 화면에 “함께 하셨다”는 말씀을 삽입하고 예수를 인자하고 따뜻한 이미지로 영상화함으로써 “우리와 함께 하셨던 인간적이고도 따뜻한 예수”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선오브갓
(Photo : sharesonofgod.com ) 영화는 예수를 따르는 무리가 많았으며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고 묘사한다.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따뜻하게 받아준다.영화는 이런 군중 장면에서 예수를 항상 온화한 모습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성경이 예수에 대해 증언하고 있는 바는 그것이 전부일까? 자애롭고 인자함과 사랑이 넘치며 따라서 아이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예수. 단순히 기득권을 쥔 자들로부터 모함과 시기를 받은 존재. 예수를 따르던 이들에겐 예수에 대한 어떤 거리낌도 없었을까? 우리가 바라는 예수의 모습만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 속 예수의 이미지는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의 모습보다 어딘가 두리뭉실해져 있다. (영화에서 성전정화 사건 등을 통해 예수의 다른 면이 표현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11:24-25),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10:38),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마20:22) 같은 날선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영화는 헐리우드가 대중의 구미에 맞게 슈퍼히어로를 빚어내듯, 성경이 보여주는 예수의 이미지 중에서 군중들이 바라는 사탕발림한 모습만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유월절 어린양을 먹는 규례에 의하면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어야 한다”(출12:9) 예수의 삶과 말씀 중 자기가 받아들이기 쉽고, 자기 구미에 맞는 것만 취사선택해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온전한 복음일 수 없을 것이다.

기술적, 내용적인 면에서 흠잡을 것이 없어 보이는 이 영화를 본 후 이같은 의문이 드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성경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사실적으로 재현해 예수공동체 및 그 시대의 공동체의 관계와 인과관계를 잘 묘사하고, 상처 받고 힘없는 억눌린 이들을 보듬고 그들과 함께 한 예수의 모습을 잘 드러내려 했다는 점, 공생애의 많은 일화들을 담으려 했다는 점 등 크리스천 영화로서 여러 훌륭한 면모마저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십자가 사건이 지닌 이면적 의미를 배제하고 이 영화를 볼 경우 예수의 죽음은 시대적 불운으로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한 한 의인의 죽음에 불과하다. 영화에 묘사된 예수처럼 자애롭고 인자한 모습을 띤 성자는 역사상 간혹 존재해 왔으며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비참한 죽음을 맞았던 시대의 희생양이다. 십자가 사건에 대한 해석이 좀 더 추가되었다면, 십자가와 고난의 의미에 대해 예수, 제자들의 언급이 더해졌더라면, 어떤 상징적인 방식으로 십자가의 고난에 담긴 의미가 전달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십자가형을 받는 예수를 연기하는 디오고 모가도는 이사야 53장에 묘사된 고난의 종의 모습,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의 “잠잠한” 모습을 훌륭하게 표현해낸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이 수난의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이 십자가 장면을 통해 전달하려 했던 복음의 메시지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또 ‘예수는 잘 보이는데 하나님은 어디 계시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십자가는 예수의 삶의 정점,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이자 그리스도교 교리의 핵심이다. 시청각적 이미지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상 십자가의 의미,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이라는 형상화될 수 없는 가치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다.

예수를 연기한 디오고 모르가도는 십자가형이 매우 감당하기 힘든 형벌이었으며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묵묵히 그 고난을 받아들였음을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Photo : sharesonofgod.com) 예수를 연기한 디오고 모르가도는 십자가형이 매우 감당하기 힘든 형벌이었으며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묵묵히 그 고난을 받아들였음을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사도행전 8장에서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가 조우한다. 그 내시는 이사야서에 기록된 고난의 종에 관한 예언을 읽지만 그 속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가 비기독교인들에게 구원의 도구로써 사용될 수 있다면 이 에디오피아 내시가 그러했듯, 그 십자가의 의미에 대한 그 깊은 질문을 던져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크리스천들에게는 예수가 사역했던 시대를 그려보고, 그 시대 공동체적 갈등을 이해하고, 십자가와 그 삶의 의미를 다시 새겨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어줄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영화가 끝나고도 예수의 삶이라는 무거운 주제 앞에 관객들은 쉽게 입을 떼지 않았다. 환태평양 영화제(Pan Pacific Film Festival·이하PPFF) 켄 안 대표는 시사회 후 먹먹한 마음을 추스린 후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의 소감을 전했다. “10년 만에 좋은 예수 영화를 만든 것에 대해 감사드리고 한인커뮤니티를 위해 특별히 한글자막까지 넣어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21세기는 미디어의 시대라고 합니다. 좋은 크리스천 영화가 선교현장에서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는지 선교 현장에 계신 분들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이후 미주 한인 커뮤니티의 대표적 봉사단체인 한인기독교개발협회(KCCD) 임혜빈 회장은 “한인 커뮤니티와 한인 교회에 이런 자리와 기회가 없었지만앞으로 이런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KCCD가 다리역할 할 것”이라며 “이 영화의 제작자인 마크 버넷이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특별히 한글 자막을 제작해 주었다”며 “한인 기독교 커뮤니티가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입증되었다”고 전했다. KCCD 박종대 이사장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영화가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글자막이 들어간 영화 개봉은 3개 지역- 가디나, 오렌지카운티, LA에 추진 중에 있다. 그룹티켓팅도 가능하며 영화에 관한 자료는 www.sharesonofgod.com을 통해 얻을 수 있으며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 영화를 적극적으로 알리길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