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뉴욕지사는 2013년 새해를 맞아 한 해의 방향을 뉴욕교계 지도자들로부터 들어보는 인터뷰를 릴레이로 진행해 왔다. 첫 번째 순서로 에벤에셀선교교회 최창섭 목사, 두 번째 순서로 신광교회 한재홍 목사, 세 번째 순서로 베데스다교회 김원기 목사와 인터뷰를 가졌다. 특별히 마지막 순서는 평신도의 입장에서 교계를 전망하기 위해 김동욱 집사(생명나무교회)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동욱 집사는 91년부터 뉴욕에 거주하면서 평신도로서 교계에 직간접적인 일을 도맡으며 그 변화상을 지켜봐 왔다. 김동욱 집사는 인터뷰에서 한인교회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목회자들의 내려놓음이 가장 절실하다고 강조했고, 아울러 성도들의 신앙 자세도 크게 변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뉴욕교협에 대해서는 유명무실하게 자리만 있는 직책들은 과감히 정리할 것을 제안했고, 특히 대형교회 목회자들에게는 큰 금액의 ‘사례비’ 개념을 폐지하고 실제 생활에 사용되는 ‘생활비’로 대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편집자 주

-이민교회가 과거에 비해 성장이 둔화되고 오히려 정체되고 있다고 한다. 2013년 한인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을 기울여야 하는가.

교회성장이라고 할 때 출석하는 교인들이 늘어나는 것을 교회성장이라는 것에 대해서 저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차피 교회 안에는 양과 염소, 알곡과 쭉정이가 같이 있는 것이다. 정말 교회성장이라는 것은 양의 비율이 얼마나 늘어났나, 알곡이 얼마나 늘어났느냐 그 숫자를 봐야 하는 것이다. 흔히 왔다 갔다 하는 교인들, 좋은 표현으로 주일성수만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도 교회 입장에서는 헌금이 늘어 좋을 수는 있지만 예수님의 입장에서 과연 그것이 좋을지 생각해봤으면 한다.

저는 복음전파에 대한 기본개념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복음전파나 교회부흥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외향적이고 또 엄밀히 말해서 복음전파가 아니라 교인수를 늘이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 그것이 하나님의 복음을 확장하기 위한 노력인지 봐야 한다.

-한국교회의 계속돼 온 화두가 위상회복이었다. 이민교회의 위상도 과거와 같지 않다는 말들을 하는데 평신도로서 뉴욕에 오래 거주하면서 위상의 변화라는 것이 느껴지는가.

제가 뉴욕에 온지 21년째인데 처음에 왔을 때는 교회분쟁이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다.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교회분쟁이 생겨나는 것을 지켜봐 왔다. 많은 경우가 담임 목회자의 전횡이나 재정적인 불투명함이 원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교회에서 제직회나 공동의회를 할 때 대부분의 교회가 재정보고서를 밖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한다. 문서가 밖으로 나가서 문제가 되는 것을 막는다는 것인데 그런 문제가 있는 재정이라면 집행이 잘못된 것이다. 누가 본다고 해도 재정이 문제가 없다면 그런 보고서는 누구에게나 공개돼도 괜찮은 것이다. 제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어떤 교회는 파워포인트로 재정보고를 보여주고 만다고 한다. 이런 것은 잘못된 모습이라고 본다. 교회 재정이 투명하게 집행이 되면 교회 분쟁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저의 아버지는 교회를 다니지 않으셨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적에 아버지는 간판을 제작하셨는데 당시 봉천동 인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교회가 많이 생겼다. 그래서 교회 간판을 거의 아버지가 제작하셨다. 목회자들이 교회 간판을 맡기고 찾으러 오면 아버지는 나이가 훨씬 어려보이는 목회자임에도 그 앞에서 담배를 끄셨다. 그리고 저에게는 목회자 앞에서 담배는 안 피는 법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말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기억이 난다. 지금은 과연 목회자 앞에서 담배 끄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이 든다. 이민사회는 한국보다 더욱 좁은 바닥이다. 목회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일반성도들이 보고 있다. 훌륭한 목회자들도 있지만 일반 성도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렇게 해서 또 증거를 받는 목회자들이 더욱 많아 진다면 목회자들의 위상은 다시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재정이 공개돼야 한다는 주장이 흥미롭다.

지금 제가 섬기는 교회도 그렇고 재정을 성도들에게 공개하는 교회들이 있는데 이런 곳에서는 재정을 두고 분란이 일어났다고 들어본 적이 없다. 제가 섬기는 생명나무교회 홈페이지를 통해서 재정상태가 그대로 공개된다. 재정보고 게시판은 일반인에게는 공개가 되지 않지만 우리 교인이면 아무나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게 돼 있다. 투명하게 하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것을 굳이 감춰야 할 필요가 없다. 가령 교회에서 어떤 물건을 구입하는데 1만 불이 예산으로 잡혀 있을 때 재정 열람이 가능할 경우 그 분야에 전문가인 다른 교인이 더 적은 금액으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정보를 줄 수 있는 것이다. 폐쇄적으로 교회 재정이 운영되면 오히려 낭비되는 경우가 있다.

-헌금을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에 그 이상 성도가 관여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헌금은 물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보통 헌금의 사용처를 알고자 할 때 하나님께 드린 것인데 왜 헌금의 사용처에 대해서 간섭을 하느냐고 한다. 그러나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드렸지만, 그 드려진 돈도 하나님의 돈이다. 그러니 그 하나님의 돈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당연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재정을 공개하면 잡음이 있을 수가 없다. 제가 섬기는 교회가 작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사역의 크기와 상관없이 그것이 기본이 된다면 재정을 두고 분란이 일어날 소지가 없는 것이다.

-한인교회 위상의 문제도 있지만 목회자들의 위상도 과거와 같이 않다는 말도 있다. 평신도로서 목회자들에게 바라는 모습이 있다면.

목회자들이 절제된 모습을 보였으면 하고,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지 않을 윤리의식을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보통 목회자들이 평신도들을 만나면 밥값을 안낸다고 한다. 이것이 자기 권위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고 한다. 물론 과장된 말이겠지만 목회자들이 모이면 밥 값을 내는 사람이 없어서 모임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일반 평신도들의 입에서 나온다면 심각한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 일반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상식적인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어떤 연세가 많은 목회자는 상식을 훨씬 초월한 초상식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한다. 이런 험담이 평신도들의 입에서 전해지는 한

-이민교회 강단에서 전해지는 메시지는 그간 어떻게 변했나.

다들 이야기하지만 이민사회는 참 척박하고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목회자들이 너무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다. 복음의 근본은 십자가다. 그것이 중요한데 그 근본을 뺀 메시지를 많이 전하는 것 같다. 부활은 십자가 없이는 생길수가 없는 것이다. 십자가가 있었기에 부활이 있는 것이고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셨기에 우리가 나음을 입은 것이다. 그런데 어느새 십자가는 사라지고 부활만 있고 승천만 있게 됐다. 교인들이 듣기 좋아하는 설교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설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설교자는 때로는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마음에 찔림을 받을 정도로 죄성을 지적해야 하고 고난을 강조해야 한다. 아픔을 주는 설교를 매일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성도들의 입맛에 맞는 설교를 하다보니까 요즘 성도들 중에 희생하겠다고 하는 의지가 굉장히 낮아지는 것 같다.

-목회자 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반성해야할 문제가 많다는 것인가.

강단의 위기이기도 하고, 성도의 삶의 위기이기도 하다. 교회생활을 아주 편하게 한다. 하나님의 교회를 같이 세워나가고 같이 만들어 간다면 고난을 짊어질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이것이 참 그리스도인의 자세다. 그러나 큰 교회, 그러니까 양적으로 잘 갖춰진 교회에서 특별히 사역에 부담을 안지 않고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려 한다. 교인들이 개척교회 가기를 꺼려하는 큰 이유가 가서 여러 가지 일을 도맡아 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이라고 한다. 귀찮다는 것이다. 강단의 위기가 있다고 해도 성도들이 바로 서있다면 문제가 오지 않는다. 교회를 창립하고 1년 반을 지나면서 느끼는 것은 교회를 지켜가는 것은 목회자와 성도에게 있어 철저하게 공동책임이라는 것이다. 목회자가 리더이기 때문에 물론 그 책임이 크다. 그런데 예전에는 목회자들에게만 거의 그 짐이 맡겨졌지만 이제는 평신도들도 공동으로 져야 할 책임이 있다고 본다. 1년 반 개척교회 섬기면서 배운 것이 그런 것이다. 나를 내던져서 희생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그렇게 희생하고 목회자들의 희생도 바래야지우리는 하지 않으면서 목회자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평신도로서 뉴욕의 교회들을 오랫동안 지켜 봤을텐데 ‘이것이 이민교회의 표본’이라고 할만한 교회가 있는가.

롤모델이라고들 많이 이야기하는데 저는 롤모델이라는 말 자체를 싫어한다. 모델이 없는 교회를 만들자는 것이 제 신념이다. 그것이 무슨 이야기인가하면 교회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이 다르다는 것이다. 저에게 주신 사명이 있고, 다른 이에게 주신 사명이 있다. 모두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모든 교회들이 똑같아 지려고 하는데 절대 똑같이 질 수 없는데 지나치게 획일화를 원하는 것이다. 교회마다 인적 자원, 상황, 장소가 다 다른데 그것을 똑같이 하겠다고 발버둥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제가 섬기고 있는 개척교회의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교회는 목회자에게 사례비를 최저임금 수준도 드리지 못하고 있다. 작년 한 해동안 집행한 예산이 2만2천불 정도다. 그런데 그 중 구제와 선교에 사용된 금액이 9천8백 불 가량이다. 거의 44프로를 구제와 선교에 사용한 것이다. 연간 선교비 9천8백 불은 뉴욕 뉴저지 일원에 대형교회 제외하고는 상당한 수준이다. 이런 것이 가능했던 것은 획일화한 교회를 쫓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에는 아이들이 없다. 다른 교회들처럼 유년부를 만들면 아이들을 데려올 수는 있지만 그렇게 획일화된 모습을 꼭 따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쳐줄 수 있는 교역자를 초빙하면 또 큰 비용이 발생하는데 다른 교회 따라하려다 그 유지비에 재정이 다 사용되고 결국 선교와 구제를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하나님은 지금 있는 그 모습이 좋다고 하실 수도 있는데 우리가 굳이 하겠다고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다른 교회의 모습을 따라갈 여건이 전혀 안되는데 엄청나게 힘든 것을 따라하겠다고 할 때 교회 재정이 선교나 구제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 운영 즉 인건비에 모두 사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굴곡이 많았던 뉴욕교계가 다시 화합의 장을 열어 나가고 있다. 올 한해 뉴욕교계의 온전한 화합을 위해 바라는 점이 있는가.

목회자들이 먼저 놓으면 화합이 될 것이라고 본다. 붙들고 있으면 무겁고 힘들다. 우리가 보통 비운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비우지 못해서 늘 문제가 된다. 내 편 챙기기 내 사람 찾기와 같은 관행은 이제 다 버려야 한다. 정말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면 내 파에서 꼭 회장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의 사람이 서기를 기도해야지 내 사람 세우고 네 사람을 세우는 것이 된다면 하나님의 공의와 거리가 먼 것이다.

그리고 교협이 감투를 쓰기 위한 단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회장의 임기를 1년으로 했던 이유가 그렇게 해야 사이클이 빨리 돌아가기 때문이기도 했다. 1년 임기는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다. 정말 교협이 바르게 가려면 회장의 임기는 최소한 2년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군더더기 사업도 개선돼야 한다고 본다. 할렐루야대회가 이제 명목상의 복음전도 대회일 뿐 믿는 자들을 위한 집회가 된 만큼 꼭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신자들을 위한 전도대회가 아니라면 그 취지 자체를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성도들의 영성 훈련이라고 할 때 교인들이 잘 안 찾으니까 사람들을 동원하려고 대형교회 목회자들에게 순서를 맡기고 하는데 그런 이벤트성 겉보이기를 위한 행사로 취지가 변질되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더 나은 교협으로 가기 위한 제언을 한다면.

교협의 전직 회장들은 현직 회장의 뒤에 서서 묵묵히 회장과 교협을 지원하면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야 한다. 그러나 전면에 나서서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것에는 반대한다. 위원회는 회장의 산하 조직이라고 볼 수 있다. 회장을 지내 증경회장이 됐다면 회장 위에 있는 어르신인데 산하의 위원회를 맡아서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본다. 그런 것들이 개선돼야 한다.

그리고 교협 안에는 기구가 너무 많다. 언젠가 교협에서 우편이 와서 봤는데 각 직책과 분과위원회의 수를 보니 거의 70명에 달했다. 그런데 보통 회의 때 모이는 것을 보면 그것의 반도 안 되는 모습도 본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이다. 이런 행정구조는 개선이 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협의 분담금은 UN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UN회원국들의 경제력이 다 다른데 차등을 두고 분담금이 주어지지만 표결권은 각 국가당 1표다. 교협도 우리가 교회의 재정규모에 따라 차등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인 50명 이하, 혹은 100명 이하의 교회들, 그리고 중형교회, 그리고 대형교회 이렇게 나누어 분담금을 낸다면 각 교회별로 부담도 없고 그 재정으로 교협이 더 좋은 일들을 많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이 정말 많은데 큰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들이 위상에 걸 맞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신앙도 좋고 감동도 빨리 온다. 교계의 어떤 좋은 선행이 이어지면 교계 위상은 말할 것도 없고 불신자들의 전도도 빨리 이뤄질 것이다. 그런 역할을 하는 교협이 되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이민교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교협과 교회들에 바라기는 시야를 안쪽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옆집에 사는 이웃이 지금 밥을 굶고 있는데 옆에 밥 굶는 이웃을 놔두고 다른 먼 나라의 친구를 돕는다는 것도 뭔가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다. 우리 한인사회의 어려움에 교협이 손을 내밀고 돕고 해서 전반적으로 교회에 대한 오해나 선입견을 희석시키고 좋은 평가를 받을 필요가 있다. 성경에는 구제에 대해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는 개인적인 선행이면 당연히 철저하게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나 교회 유관단체는 홍보 할 때는 홍보를 해야 한다. 그것은 개인인 내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나 교협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대형교회 목회자들에게 바라는 점들이 몇 가지 있다. 교회에서 목회자에게 드리는 사례비의 용어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이것은 사례가 아니라 생활비 개념으로 바꿨으면 한다. 지금 큰 교회 담임 목회자들은 사실 생활비는 얼마 안 든다. 아이들이 다 졸업한 경우가 많다. 생활을 위해서는 일반 가정보다 더 적은 금액으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대형교회 담임목사라는 그 이유로 하나로 너무 많은 금액을 사례비로 드린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왜 이름 자체를 생활비로 하자고 하는가 하면 사례비라고 할 경우 목회를 20년 한 분의 사례비와 5년 정도 목회를 한 분과 차등이 있어야 된다고 은연 중에 생각이 된다. 그리고 그 사례비가 줄면 뭔가 빼앗긴 것 같이 생각되기도 한다. 그런데 생활비는 균등할 수 있다. 현재 아이들이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면 그 정도 수준에서만 드리는 것이다. 사례비를 받아서 다 좋은데 쓴다고 하시는데 투명한 재정을 확립하고 일반 동포로부터 존경받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용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