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된 음식에 간이 잘되지 않아 싱거운 것을 닝닝하다 라고 말하는데 실은 밍밍하다가 바른 표기법이다. 음식에 소금간이 잘 배여있을때 최고의 요리가 되듯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소금이 될 때 비로소 교회는 밍밍하지 않고 교회로서의 참다운 표지(標識)를 드러낸다.
그러나 현대 교회는 너무도 많은 밍밍한 그리스도인으로 넘쳐흐른다. 제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길가에 버려져 밟히울 것 밖에 없는데도, 음식도 아닌 것이 식탁에 버젓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과 같이 교회안에서 밍밍한체로 그리스도인 행세를 주저하지않는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회색신앙을 단연코 거부한다. 일테면 차든지 덥든지 하라! 고 한다. 계시록의 라오디게아는 히에라볼리 온천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을 수로를 통해 끌어다 썼다. 뿐아니라 히에라볼리에는 찬물도 나와서 일급 식수로도 손색이없는 천혜지(天惠地)였다. 그런데 이 온 냉수가 약 6.5 km 정도의 라오디게아까지 장거리를 오다 보면 미지근한 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뜨겁던지 차갑든지 하라는 말씀이 기록된 것이다. 라오디게아인의 신앙은 그들이 사용하는 미지근한 물과 같이 밍밍하였던 것이다. 성경은 미지근하게 살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현대는 적당주의 그리스도인이 대세인 까닭에 감히 이들에게 예수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미지근한 것, 밍밍한 것이라고 일갈 할 수 없는 형편에 이르렀다. 이들은 십자가와 상관없이, 부활과 내세에 대한 소망없이, 장차 있을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도 시계추처럼 교회출입을 잘도한다. 그들은 구원의 확신은 커녕, 구원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아랑곳도 없다. 그러니 이들에게 케리그마의 설교는 완전 뒷전이다. 디다케에 이르러도 약간 움찔하거나 아예 So What! 그리고는 또다시 밍밍함으로 침전한다.
오늘 교회는 이런 밍밍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속수무책이다. 오죽하면 우리교회는 앞문도 활짝 열려있지만 뒷문도 활짝 열려있다고 자조적인 배려를 하고 있을까 보냐! 마치 심해 고기들의쏠림현상과 같이 수평이동이 너무도 심해 ‘네 교인 내 교인이 어디있나? 오늘은 내 교인이어도 내일은 네 교인이 될수도 있다’고 한긋 여유를 부리는 것은 결국 밍밍함을 맛갈진 그리스도인화 하지 못하는 무능한 지도력 때문이다.
예전에 어른들은 책망과 질책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직업으로 삼지않고 소명으로 지도력을 발휘하였기 때문이다. 감히 슬리퍼를 신고 예배당에 들어 올 수도 없었고, 한때는 퍼머머리도 금기시 되었으니 매니큐어는 말할 것도 없었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런 것은 용납될 수 없지만- 이런 호랑이같은 목자들이 밍밍함을 좌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뒷자리에서 눈치나 보다 축도에 앞서 줄행랑치는 그리스도인은 좀체 찾을 길이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영권(靈權)을 엉뚱한데서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분명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립시킴에 올인한다면 영권(靈權)은 자동 회복 될 것이다. 밍밍 그리스도인들을 찰지게, 맛갈난 그리스도인화 하는 운동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이다.
[정인량 칼럼]밍밍 그리스도인
워싱턴영광장로교회 정인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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