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과학문명의 발달과 함께 ‘종교의 몰락’을 예견했지만, 그 예견은 엇나가고 세계는 새로운 영성(靈性)의 시대를 갈망하고 있다. 과학과 지성만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이들에게는 종교는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사설(邪說)에 불과하겠지만, 과학문명의 발달과 함께 정서적 공허감은 깊어가고 영적인 것을 지향하는 이들은 늘어가고 있다. 진정한 ‘깨침’을 통해 참된 나를 발견하고 이웃과 사회를 위해 생각하고 실천하는 신앙인을 시대는 찾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성과 영성을 겸비한 지도자를 배출해야 하는 한인 신학교의 사명과 역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인 신학교는 열악한 환경에서 운영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형편이다. 그나마 다행스런 현상은 몇몇 한인 신학교는 미국 내 여러 인가기관(예를 들면, ABHE, WASC, TRACS, ATS 등)의 공식적인 회원학교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대로라면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간직한 미국 신학교와 경쟁해도 손색없는 그런 한인 신학교가 머지않아 일어나리라 생각한다.

필자가 늘 애석하게 생각하는 것은 미주지역 한인 이민역사가 올해로 108년을 맞이하지만 미국 내 ‘제대로 된’ 명문 한인 신학교가 없다는 점이다. 필자가 논하는 ‘제대로 된’ 신학교란 명망(名望)있는 전임교수(專任敎授)를 포함한 인적 자원과 도서관과 같은 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미국 신학교와 경쟁할 수 있는 그런 한인 신학교를 일컫는다. 미주 지역 한인 이민역사는 한인 이민교회의 발자취와 함께 해 왔다. 한인 교회는 독립운동과 민족교육의 센터가 되어 한인 사회의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그동안 한인 교회는 이민문화와 정서뿐만 아니라 미국의 역사와 문화에 정통한 목회자를 양성하는 민족 신학교를 설립하고 후원하는 일에는 그리 큰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고 조심스레 진단한다. 세대를 이어 한인 이민교회를 이끌 제대로 교육받은 목회자의 양성은 한인 사회와 교회의 미래와도 직결된다. 미국식 양질의 신학교육과 한국의 독특한 영적인 맥(脈)을 통합한 신학교육을 받은 이중언어 구사가 가능한 코리언-아메리칸 목회자들을 양성하는 신학교의 설립과 육성은 건강한 한인 이민교회와 사회의 존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신학교의 난립은 본국뿐만 아니라 이곳도 문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신학교다운 한인 신학교 설립과 육성을 포기해야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혹자는 한인 신학교의 무용론(無用論)을 논하기도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은 제대로 된 많은 미국 신학교가 있는데 굳이 한인 신학교를 설립해야 하는가 하고 오히려 반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인 교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미국 내 명문신학교를 졸업한 1.5세나 2세 코리언-아메리칸 목회자가 1세대가 주축을 이루는 교회에서 성공적으로 목회를 한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은가? 물론 차세대를 이끌 영적 지도자로 그들을 키우지 못한 1세 교회의 문제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1.5세와 2세 목회자가 가지고 있는 문화와 신학의 차이에서 기인한 한계는 분명히 있다. 특히 1세대 코리언-아메리칸 교회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영성과 정서를 미국 신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기에 1.5세와 2세 목회자는 1세대와의 영적 소통과 코드의 차이를 목회현장에서 직면하게 된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정식 신학교육을 받고 목회를 하다가 이곳에 온 1세 목회자들은 한인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 물론 성공적으로 목회를 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다. 한인 이민사회와 교회가 간직한 정서나 문화를 모른 채 한국식 목회를 하기에 실패할 확률은 높은 편이다. 한인 이민교인들은 이곳의 정서와 문화로 재단(裁斷)한 옷을 입은 목회자를 찾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지금까지는 제법 큰 한인 이민교회에서 훈련받은 1세 목회자가 다른 한인교회에 파송 받아 목회를 하고 있다.

필자는 목회지에서 이런 훈련을 받는 것보다는 신학교에서부터 이민사회와 교회를 책임질 지도자로 훈련받게 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양질의 신학과 1세 교회가 가지고 있는 전통적 영성을 가르치고, 이민사회와 교회의 문화와 정서를 인식하며 언어적(영어) 소통이 가능한 목회자를 양성하는 한인 신학교의 육성이 시급하다 하겠다. 이런 효과적인 신학교육을 위해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재정적 후원이다. 언제까지 우리의 영성과 신학을 미국 신학교에 의존할 것인가? 우리의 독특한 영성과 한국 고유의 문화와 미국의 양질의 복음적 노선의 신학을 접목한 한인 신학교의 설립과 육성이 필요한 때이다. 이를 위한 재정적 후원을 한인 신학교는 목말라 한다. 한국 유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미국 신학교를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것도 뜻깊은 일이지만 이제는 한인 신학교를 육성하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일 때다. 재정적 후원 없이는 뛰어난 신학 교수의 영입도 도서관을 포함한 좋은 시설의 마련도 이루어질 수 없다.

미국의 기부 문화는 미국 내 수많은 학교를 역사와 전통 있는 학교로 일으켜 세웠다. 한인 사회의 뜻있는 독지가의 기부가 세대를 잇는 명문 신학교의 탄생을 가져오고, 오고 오는 세대를 이끌 영적 지도자들의 양성과 교회 부흥에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영성이 고갈될 때, 이민사회 또한 삭막한 사막과도 같이 될 것이다. 이제 108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이민 역사를 간직한 한인 사회에 미국 신학교보다 뛰어난 한인 신학교 하나 없는 현실을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인 사회의 기부문화가 한인의 고유한 정서와 문화를 간직한 신학교 육성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명문 한인 신학교의 설립과 육성은 한인 사회의 영적 토양을 바르게 일구는 첩경임을 필자는 고하면서 글을 마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