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약 1:19)

목수의 일은 모든 목사들이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이 아닐까? 우리 주님이 아버지 요셉의 목공소에서 잔뼈가 굵은 목수이셨기에 그를 따르는 목사들은 가끔 목수가 되어 예수님의 마음을 느끼고 싶어진다. <21세기를 위한 평신도 신학>을 쓴 리젠트 신학교의 교수 폴 스티븐스도 자비량사역을 실천하기 위해 목공일을 자신의 생계를 위한 직업으로 선택했을 정도이다. 물론 여느 일처럼 목수의 일이 다른 일보다 더 쉽거나 녹녹할 리 없다. 예수님도 그 목공소에서 삶에서 겪는 낭패와 실수를 경험하는 한편 한 번 실수한 것을 무마하고 바로 잡기란 두 배로 힘들다는 것을 몸소 배우셨을 것이다.

몇 주 전에는 교회의 방송실에서 쓸 이동식 음향기기 상자를 손수 제작하기로 했다. 딱히 우리가 가진 기계들과 용도에 맞는 상자를 만드는 곳도 찾기 힘들었을 뿐더러, 목수 예수님의 제자인 목사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장인정신을 시험해 보려는 마음도 있었다. 이왕이면 우리가 사용하기에 효율적인 도구가 되도록 거듭해서 재고, 고안하고 도면을 고쳐 그리기를 여러 번 반복한 끝에 제법 맘에 드는 설계도를 얻을 수 있었다. 문제는 작업이 끝나갈 무렵 문짝을 이룰 나무를 자를 때, 손가락 마디만큼 짧게 톱질해 버리면서 발생했다. 한 번 잘려나간 나무를 붙들고 울어야 소용이 없었다. 그것을 고치는데 두 배의 시간이 들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목수의 세계에는 “두 번 자로 재고, 한번 톱으로 자르라”는 격언이 있다. 자르기 전에 다시 한 번 확인하여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방지하라는 뜻이다. 나의 실수도 바로 이 격언을 잠깐 무시한 탓에 벌어진 일이다.

어리석은 내게 야고보서는 여러 번 정확히 자로 재는 일은 ‘귀로 듣기’이며, 톱으로 단번에 잘라내는 일은 ‘말하고 성내는 일’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한번 톱질한 것은 돌이키기 어렵다. 두 배의 시간이 들어서야 복구가 될 터이지만 여전히 남아있을 톱질 자국은 일을 저지른 사람이 안고가야 할 짐이다. 함께 목수된 형제들에게 언급한 까닭은 이 교훈이야말로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목수의 철칙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