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형제교회(담임 권준 목사)는 지난 3일, 공동체 30일을 시작하면서 제임스 린튼(James Linton) 선교사를 초청해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디아스포라의 부르심을 재확인했다. 

"디아스포라의 선물"(다니엘 1:1-6)이란 제목으로 설교한 린튼 선교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며 디아스포라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축복을 소개했다. 그는 또 이스라엘의 역사적 배경을 소개하면서 유대인 디아스포라들과 한인 디아스포라의 유사성을 전했다. 

린튼 선교사는 애굽과 바벨론에서 언어와 문화 등 다양한 교육을 받았던 모세와 다니엘과 같이, 미주 한인들도 이민의 나라에서 다양한 교육을 받으며 하나님의 일꾼으로 성장해 감을 전했다. 

그는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들이 어려움과 위기 가운데서도 디아스포라의 삶 속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음을 기억하라"며 "희망과 인내로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갈 때,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발견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라도 순천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성장하다가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신학적인 배경도 없고, 건축가 출신임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준비시키셨음을 간증하면서,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가 당면한 어려움은 기회로 변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 세상은 안식을 누리는 천국이 아니라, 어려움 가운데서도 다양한 학문을 배울 수 있는 학교"라며 "디아스포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나아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시애틀 형제교회에서 설교하는 제임스 린튼 선교사
(Photo : 시애틀형제교회) 시애틀 형제교회에서 설교하는 제임스 린튼 선교사

한편 제임스 린튼(James Linton) 선교사 가문은 4대째 한국 선교에 이바지했는데 그의 증조할아버지이자 1대 선교사인 유진 벨은 1900년대 초 가난한 조선에 교육과 의료 사역을 하며 복음을 전했다. 

제임스 린튼의 할아버지 이자 2대 선교사인 윌리엄 린튼은 유진벨 선교사의 딸 살럿 벨과 결혼한 뒤 교육 선교사로 전주·이리·군산 등지에서 활동했다.

윌리엄 린튼 선교사는 1912년 명문 조지아 공대를 수석 졸업하고, 당시 제너럴 일렉트릭(GE) 입사를 마다하고 21세에 미국남장로교 최연소 선교사로 조선에 파송됐다. 

윌리엄 린튼 선교사는 군산 영명학교에서 성경과 영어를 가르쳤고, 전주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 교장을 역임했으며, 1956년 대전대학(현 한남대학교)을 설립하고 초대 학장으로 교육선교에 힘썼다. 

윌리엄 린튼 선교사는 외국인이면서도 1919년 군산의 만세운동을 지도했고, 3·1 운동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리며 지지를 호소하는 등 항일 독립운동을 했다. 

그는 1940년 일제에 의해 추방됐다가 광복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선교에 힘썼다. 6.25 전쟁 와중에도 전주에 남아 성경학교를 운영했고, 전쟁 막바지에는 부산에서 피난민 구호활동 등 선교를 계속하면서 한국 땅을 지켰다. 

제임스 린튼 선교사의 모친 베티 린튼 선교사는 1953년 한국에 들어와 순천에서 결핵 재활원을 운영하며 30년 이상 결핵퇴치사업에 기여한 공로로 1996년에 국민훈장과 호암상을 받았다.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제임스 린튼 선교사는 1971년 도미해 학업을 마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대전에서 선교했다. 1995년부터 북한의 지하수 개발을 하고 있으며 온 가족이 북한 선교를 하고 있다. 

제임스 선교사의 맏형은 북한에 의료 지원을 하는 유진벨 재단의 대표인 스티븐 린튼 박사이고, 동생은 서울 세브란스병원 외국인 진료소 소장인 인요한 박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