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성공회(Church of England)가 대서양 노예 무역과의 역사적인 연관성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10억 파운드(한화 1조 7000억) 규모의 기금 조성을 요구한 최근 보고서의 내용을 수용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에 따르면, 독립 자문가로 구성된 감독 그룹은 지난 4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영국성공회가 ‘치유, 복구 및 정의 기금’에 대한 1억 파운드(1700억 원) 규모의 약정이 “위원들의 기부금 규모나 도덕적인 죄와 범죄의 규모에 비해 충분하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영국성공회가 다른 기관들과 협력하여 막대한 규모의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는 전 세계적으로 토지 보조금을 제공하고 교육, 경제적 역량 강화, 건강 개선을 중점으로 둔 흑인 소유 기업에 투자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영국성공회에 기금 조성을 앞당겨 올해 말에 사용 가능하도록 요구했는데, 이는 처음 계획된 기간보다 9년 더 빠른 것이다.

또한 보고서는 “흑인 아프리카인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음을 역사적으로 부정한 행위, 다양한 아프리카의 종교 신념 체계를 파괴하고, 아프리카와 아프리카 이주민들이 복음과 아프리카 선조들의 다양한 영적 실천과의 영적 연결을 촉진하는 데 일조한 고의적 행위에 대해 완전히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

이 보고서는 지난해 시작된 조사의 결과로, 영국성공회가 약 3만 4000명의 노예를 30년 동안 열악한 환경에서 운송한 것으로 알려진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에 40만 6492파운드(현재 가치로 약 7억 2400만 파운드)를 투자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성공회 대변인은 보고서에서 요구된 10억 파운드가 아닌 1억 파운드로 배상 기금을 조정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감독 그룹의 의장인 로즈메리 말렛 주교는 보고서가 “다른 기관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조사하고, 피해를 입은 공동체에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하도록 격려하는 촉매제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세계성공회 수장 격인 영국성공회의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2022년에 성공회와 차텔 노예제(chattel slavery)와의 연관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그는 노예제에 연루된 성공회의 과오를 “끔찍한 악”이라고 규탄하며, 이 보고서의 내용을 “세대를 초월한 대응의 시작”이라며 환영했다.

2020년 흑인 조지 플로이드(46)가 미국 미니애폴리스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후,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시위는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당시 성공회는 노예 무역과의 연관성을 조사했고, 이 과정에서 웰비 대주교는 노예 무역과 관련된 교회와 대성당의 모든 동상과 조각상을 철거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 결정은 일부 성공회 성직자들로부터 반발을 샀는데, 그들은 모든 사람은 죄인임을 전제하는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는 조치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