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길

     성 알폰소

주님은
저를 지극히 사랑하셨기에
죽음의 길마저 가셨나이다

저도 이제는
주님과 더불어
주님을 위하여
저도 죽고자 하나이다.

   이 시는 천주교 신부인 알폰소의 <십자가>의 길이라는 시입니다. 알폰소 신부는 평생 경건한 삶을 추구했던 사람으로 전해집니다. 이 시 <십자가의 길>은 십자가라는 단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이 시에서 주님의 십자가 길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시는 아주 짧습니다. 총 2연으로 구성된 짧은 이 시를 묵상하면 십자가의 길이 보입니다.

1연은 “주님은/ 저를 지극히 사랑하셨기에/ 죽음의 길마저 가셨나이다”라고 합니다. 이 시구에서 시인은 십자가의 길 정의합니다. 십자가의 길은 사랑의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가신 길입니다, 또 십자가의 길은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2연은 주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의 의미를 아는 시인의 반응이 고백 되고 있습니다. 2연에서 시인은 “저도 이제는/ 주님과 더불어/ 주님을 위하여/ 저도 죽고자 하나이다.”라고 합니다. 2연의 실마리는 “이제는”입니다.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의 의미를 아는 자신의 상태입니다. 아울러 십자가를 질 준비가 된 상태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십자가를 져야 할 때입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십자가의 길을 아는 시인이 “이제는” 십자가를 집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를 홀로 지지 않습니다. “주님과 더불어” 십자가를 집니다. “이제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 “주님을 위하여” 행하는 일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지고 죽는 것이 주님 앞에서 가치 있는 일임을 알았습니다.

이시는 십자가를 멀리서 감상하는 것이 압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은 성도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신앙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알고 십자가를 지는 실천적 신앙의 최고봉은 주님을 위해 죽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사랑하고 십자가를 지는 신앙을 사모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위해 죽겠다는 신앙 고백은 자존심만 상해도 견디지 못하고, 작은 비난과 비판에 흥분하는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이 시를 쓴 알폰소는 일반 성직자로 출발했으나 스스로 수도회를 만들어 수도에 힘썼으며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자로 알려집니다. 그는 가난한 자와 젊은 청소년을 섬긴 사랑의 사목활동을 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또 평생 연구하는 성직자였습니다. 즉 지성을 갖춘 구도자였습니다. 천주교를 그를 윤리신학의 수호자로 선언했습니다.

알폰소의 본명은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Sant’ Alfonso Maria de’ Liguori Saint Alphonsus Liguori)입니다. 알폰소(1696-1787년)는 이탈리아의 나폴리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학문에 탁월함을 보인 알폰소는 불과 16세의 나이로 교회법과 민법의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유능한 학자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학자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중요한 사건에서 깨달은 바 있어 사제가 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특히, 한 재판에서 패소한 다음 법률계를 떠나 사제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부친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하여 신학을 공부하였고, 1726년 12월 21일 30살에 사제가 되었습니다. 사제가 되자마자 그는 1년간 떠돌아다니며 소외 청소년을 돌보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알폰소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기도, 교육, 강론 그리고 봉사활동 실천하는 기도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이 기도 모임이 성장해 알폰소가 사망할 때쯤 72개의 기도 모임에 1만여 명이 봉사했습니다. 많은 청소년을 돌본 기관이 되었습니다.

알폰소는 행동하는 양심이요, 실천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가 입회했고 활동했던 오라토리오회는 수도회가 아닙니다. 수도회의 성격을 가진 공동체였습니다. 일반 성직자들이 수도회처럼 모여서 공동생활을 하며 서로를 돌아보며 함께 경건에 힘썼던 공동체였습니다.

알폰소는 인근 지역을 다니며 순회 설교 사도직을 수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알폰소는 글을 쓰기를 원했습니다. 신자들의 참된 그리스도인 생활을 증진하기 위하여 설교와 저술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여러 분야의 저술을 남겼는데 특히 윤리신학의 대가로 존경받습니다.

알폰소는 1762년에는 산타 아가타 데이 고티의 주교로 임명되었나 주교직을 버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활동에 전념했습니다. 1732년 11월 9일 알폰소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라(눅 4:18).”라는 성경 말씀을 따라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려고 “구속회”를 설립했습니다.

“구속회”의 주목적은 도시의 슬럼가 및 빈민가 등지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것이었습니다. 알폰소 리구오리는 자신의 생을 사랑하는데 모두 쏟아부었습니다. 그리고 고해소에서 신자들을 배려하여 항상 부드러운 태도를 유지하며 그들을 위로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창설했던 ‘구속회’를 지키고 바른 수도생활에 힘쓰다 노체라에서 운명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알폰소는 윤리신학에 관한 놀라운 저서를 남겼습니다. 특히 그의 윤리신학은 얀세니즘과 반 성직주의를 극복하면서 올바른 윤리관을 정립한 저서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가 저술한 ‘마리아의 영광’은 마리아의 신앙을 소개하는 저서로 꼽히며, 교황 비오 10세로부터 교회박사로 선정되었고, 1950년 요한 바오로 12세는 알폰소를 고해 사제와 윤리신학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습니다. 그의 경건과 저술은 지금까지도 널리 인정받고 있습니다.

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 대표, 시인 수필가)
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 대표, 시인 수필가)